빛을 조각 내 바다 위로 흩뿌리면

루브르 아부다비

by 선아키

솔직히 말하면, 장 누벨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다. 루브르 아부다비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도 돈만 많이 들인 거북이 등껍질 같은 저 돔이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었다. (찾아보니 공사비만 1조 원이 들었다.) 매거진 속 루브르의 이미지들은 언제나 공간의 일부만 보여줬다. 돔의 복잡한 패턴, 빛의 그림자, 흰 건물과 푸른 물결.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멋졌지만 전체를 상상하긴 어려웠고,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다만 아부다비에 가게 된다면 꼭 가봐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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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요르단과 다합을 여행하며 보름이 넘는 시간을 대자연 속에서 보낸 뒤, 귀국하는 길에 아부다비에서 8시간 동안 경유를 하게 됐다.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공항 바깥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다행히 나와 함께 있던 친구들도 기꺼이 루브르에 같이 가주었다. (우리는 살짝 문명에 굶주려 있었다.)


대단해봤자 지가 얼마나 대단하겠어. 나는 마음속으로 가드를 올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실눈을 뜨고 입장했지만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내 어딘가가 깨지는 기분이었다. 이 건물은 단순히 한 장면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빛의 돔


가장 크게 인지되는 것은 금속으로 겹겹이 만들어진 지붕이다. 지름 180미터의 돔. 그 표면에는 7,850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8겹의 레이어가 서로 다른 각도로 겹쳐진 이 구조 사이로 햇빛이 떨어지고, 바닥과 흰 벽 위에 빛의 반점들이 춤을 춘다. 장 누벨은 이것을 '빛의 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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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에는 유리가 없다. 빛은 그대로 떨어지고, 바람도 통한다. 다른 도시였다면 흐린 날의 실망을 감수해야 했겠지만, 아부다비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이 도시의 연간 강수량은 서울의 4퍼센트 수준으로,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비가 가장 많은 1월조차 한 달에 이틀 정도다. 중동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구름 한 점 보지 못했다. 그러니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빛의 비는 언제나 계획대로 내린다.


아랍 전통 건축의 돔에서 출발했지만, 그대로 전통을 재현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돔은 7,500톤 무게의 구조물이지만 단 4개의 기둥으로 지지되고, 그 기둥들은 건물 안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돔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살짝 백색 매스에 얹혀 놓은 것처럼 보인다. 태양의 이동에 따라 빛의 반점이 이동하고, 공간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흰 벽 위로 동그란 빛들이 서로 다른 농도로 맺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백색의 군락


루브르 아부다비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55개의 흰 건물이 모여 이루어진 작은 도시다. 이 구성은 아랍 전통 도시의 구시가지, 메디나에서 왔다. 메디나는 좁은 골목과 광장이 미로처럼 얽힌 구조로, 바깥에서 보면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으로 닫혀있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골목과 중정이 이어지며 예상보다 넓고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강렬한 햇빛과 모래바람을 막으면서도 내부에는 그늘과 바람길을 만드는, 사막 기후가 빚어낸 도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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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개의 흰 매스들 사이에 골목과 광장이 생기고, 관람객은 그 사이를 걸으며 갤러리에서 갤러리로 넘나든다.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전시를 보는 과정은 메디나를 걷는 감각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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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안의 전시는 시대순으로 인류 문명의 흐름을 보여준다.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문명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그 흐름을 따라 관람객은 매스에서 매스로 건너간다. 전시 내용과 공간 이동이 같은 리듬을 갖는다. 처음엔 다 훔쳐온 유물 아니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어느 순간 인류의 문명을 조망하는 그 시선과 깊이에 또 굴복하고 말았다.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된 훌륭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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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사이사이, 창문으로 바다가 살짝 보인다. 돔의 일부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바깥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바다는 잠깐씩 눈에 들어왔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렇게 갤러리들을 하나씩 통과하며 상설 전시를 모두 지나쳐서야만 돔 아래에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다.



빛을 조각 내 흩뿌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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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갤러리를 빠져나오면 처음으로 돔 아래 열린 공간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창문 너머로 조금씩 보이던 그 바다가 전면으로 펼쳐진다. 파란 바다와 흰 벽 그리고 금속의 돔 천장, 그 가운데 열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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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기 위해 갤러리에서 갤러리로, 시대를 건너며 조바심이 나는 마음을 애써 참았다. 전시도 좋았기 때문에 최대한 자세히 음미하듯 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헐레벌떡 빛의 돔 아래로 뛰쳐나왔다. 오래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더욱 극적인 자리. 바다를 멀리가 아니라 코앞에 두고 빛내림을 천천히 즐길 수 있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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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은 지상으로부터 29미터 떠 있다. 지상 9층 정도의 높이라, 텅 비어서 오로지 빛만 내려오는 대공간에서 사람은 아주 작다. CG처럼, 그저 비현실적이다.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런웨이처럼 이어진 공간이 있다. 런웨이의 끝에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은 줄을 선다. 그 외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바다를 바라보거나, 다시 갤러리로 돌아가거나, 레스토랑으로 향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그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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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출구가 아니다. 전시를 한 차례 다 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머물게 되는 곳이다. 돔 아래, 빛과 바다 사이에서, 이 환상적인 자리가 시간을 보내라고 부추긴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했다. 바다 위로 보이는 하늘이 핑크색이 되고, 붉은 빛이 건물 내부로 쏟아질 때까지.





공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서야 루브르 아부다비를 나오면서 아쉬움에 뒤를 몇 번이나 돌아봤다. 금속의 돔은 여전히 비싼 거북이 등껍질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그게 내부에서 어떤 경험과 풍경을 만들어 내는지 이제는 안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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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아부다비가 문을 연 것은 2017년이라 벌써 완공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루브르 아부다비가 위치한 사디야트 문화지구는 아직 개발 중이다. 곧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노먼 포스터의 자이드 국립박물관, 메카누의 자연사 박물관이 차례로 문을 열 예정이라 공사가 한창이다. 그래도 외관이 거의 다 완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드릉드릉 시동을 거는 느낌이다. 다시 아부다비를 찾아야 할 이유는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