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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an 15. 2017

높고 푸른 대나무 숲을 걸으러

아라시야마, 교토

교토에 대해서 그저 오래된 도시라는 것밖에 모를 때, 칸사이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덜컥 끊었다. 교토에서 느린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오사카와 교토 이틀씩 있으면 어떨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교토에 다녀왔던 친구 노숀에게 교토 여행이 어땠냐고 묻자 노숀은 3박 4일 내내 교토에 있었지만, 모자란 느낌이라고 했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고. 그리고 노숀의 여행 추천지는 빽빽한 대나무 숲이 있는 이곳, 아라시야마嵐山였다.





01 아라시야마로 걷는 길


교토에 신사(神社)가 많다는 것은 아마 여행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도쿄에서 골목길 곳곳에까지 신사가 있는 것을 봤었어서, 나는 교토도 그러려니 했다. 도심 안에 콕콕 박혀있는 신사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여행 계획을 짜면서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교토는 도쿄와 전혀 다른 도시 조직을 가진 곳이었다.


교토는 간단히 말하면 동그란 도심을 두고, 주위에 산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도심에도 물론 신사는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을 가진 금각사, 은각사 등의 신사들은 모두 시 중심에서 벗어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교토는 큰 도시는 아니라서, 하루에도 두세 번은 거뜬히 교토 시를 가로질러 다닐 수 있다. 도쿄라면 전차로 1시간은 넘어야 가로지를 도시의 크기가 교토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아라시야마로 향하는 길은 텐류지(天龍寺)로 향하는 길과 동일하다. 교토에서 가장 서쪽, 한 번에 가는 전차가 없어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아주 귀여운 옛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마치 벽처럼 늘어서 있는 산 줄기의 모습이 보이고, 열차는 그를 향해 곧장 달린다. 산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산을 향해 직진한다. 텐류지와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은 산이 막 시작되는 그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아라시야마는 열차의 종착역. 가을이라 이곳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열차에서 우르르 내린다. 오래된 열차가 일본인들에게도 아마 자주 못 보는 광경인지, 사진 찍는 모습을 여럿 봤다. 낮은 가옥들을 바로 지척에 두고 달리는 작은 선로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법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열차장이 아라시야마를 두 번 연속해서 외치면, 열차는 그제야 멈춘다. 역 밖으로 나오자 80년대 서울에 있을 법한 각진 택시들이 지나다니고, 소설 속에서만 보던 인력거가 이곳저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교토의 과거로 훌쩍 넘어온 것과 같은 거리였다. 





온 김에 텐류지도 들렀다. 사실 교토가 이렇게 가을에 바글바글한 것은 대나무 때문이 아니라 단풍이 그 이유니까, 표를 끊고 정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좋은 장소가 좋은 이유는 그 공간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친다. 아라시야마가 그랬다. 분명 나의 목적지는 대나무 숲이었으나 오래된 귀여운 열차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던 철로, 그리고 충동적으로 들어간 텐류지까지 다양한 풍경들을 지나쳐 나는 비로소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02 대나무 숲을 걷는 길


물론 대나무 숲이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아라시야마가 대나무 숲으로 가장 유명한 것도 아니다. 대나무 숲은 담양에만 가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들어온 대나무 숲은 역시 좋았어서, 그 공간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공간감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야겠다. 공간(空間)에 느낌을 뜻하는 감(感)의 합성어로 공간에 있는 물체의 방향, 위치, 거리, 크기, 길이 따위에 대한 감각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고, 그것이 정의인 것은 맞다. 그러니까 건축가들이 말하는 공간감이라는 것은 바닥, 벽, 천장이 우리를 어떻게 감싸고 있는지 설명하는 단어다. 예를 들어 고시원의 방 안에 앉아 있는 것과 높은 층고를 가진 유럽의 어느 성당에 앉아 있는 것은 똑같이 앉아있는 행위를 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다른 풍경을 제공하고, 다른 공기의 흐름과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손을 뻗었을 때 다른 것이 느껴진다. 공간의 다름은 누구나 느낀다. 그것이 건축가들이 말하는 공간감이다. 무조건 넓은 공간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공간의 형태와 크기 등에 의해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느낌. 그 정도.



대나무 숲은 우리에게 도시에서 쉬이 느낄 수 없는 공간감을 제공한다. 물론 대나무 숲이 좋은 이유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가 존재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자꾸 대나무 숲을 찾고 싶은 이유를 하나 꼽자면 역시 공간감이다. 좁은 통로와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이 뻗어 지붕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는 대나무들. 사람의 키는 2m도 넘지 않지만, 대나무들은 20m에서 30m까지도 쭉쭉 자란다. 대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거리의 폭은 사람에게 맞춰져 있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하늘의 높이는 대나무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사람과 대나무의 키 차이를 스케치로 간단히 표현했다. 사진은 공간을 기록하는 좋은 도구이지만, 때로 찍을 수 없는 모습도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크기 차이가 나는 무엇인가를 찍을 때에는 조금 힘들다. 또한 단면으로 잘라서 보고 싶을 때도 사진으로는 표현이 힘들어 그럴 때에는 역시 그림이 훨씬 편하다.




아라시야마를 걷는 동안, 이곳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고,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도 봤다. 자전거를 타거나 인력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도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대나무 이파리들이 하늘을 잔뜩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대나무 숲은 보통 꽤 어둡다. 사진을 찍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 들어오는 빛이 적어 숲 안에서의 인물 사진은 나에겐 아직도 고난도다. 하지만 하늘을 찍는다면 이파리들을 뚫고 들어오는 초록빛은 꽤나 멋진 광경이 된다.





눈높이에서 바라본 대나무들의 사진들도 물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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