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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Feb 03. 2017

영화 읽어주는 도서관

CGV 시네 라이브러리

몇 년 전부터 우리에겐 특정한 분야의 도서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세를 떨친 것은 역시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들이다. 삼청동의 디자인 라이브러리부터 시작해, 여행과 음악까지 우리에게 주옥같은 공간들을 선물해 주었다. 그 답례로, 라이브러리의 입장권 역할로 쓰기 위해 나도 현대카드를 하나 만들었을 정도니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현대카드의 다음 행보들에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아주 많다. 물론 나도 그렇고.


그와 비슷하게 CGV에서 조심스럽게 만든 영화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계시는지? 상영관 하나를 비워, 영화에 대한 서적으로 꽉 채운 공간이 서울에 하나 있다. 방문했던 것이 벌써 1년 전이니, 지금의 모습은 사진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참고해주시길.




01 상영관의 구조가 갖는 잠재력


나의 남자 친구는 항상 영화를 예매할 때 상영관의 좌석 수로 영화관의 크기를 짐작하여 선택한다. 상영관의 크기가 불확실하다면 검색도 불사한다. 영화관의 크기는 곧 스크린의 크기와 비례하는데, 같은 돈을 낸다면 조금이라도 큰 화면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오면 전국 CGV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크기의 상영관을 가지고 있는 왕십리 CGV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큰 스크린을 원하기 때문에 영화관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영화관으로 들어섰을 때 쉽게 인지를 못하지만, 영화 상영관의 높이는 우리의 짐작보다 높다. 스크린의 높이만 13m 전후. 건물로 따지면 스크린의 높이만 3 개층의 높이다. 스크린 아래위의 공간까지 포함한다면 15m 정도의 층고를 가진 공간인 셈이다. 미니빔을 가지고 베란다에서 건너편 건물로 빔을 쏘면 그 정도 높이가 나오려나 모르겠다. 높은 층고를 만나기 쉽지 않은 도시의 건축 속에서 영화 상영관은 층고 하나만으로도 많은 잠재력을 지닌 공간이다.



명동 CGV 안에 위치한 시네 라이브러리의 구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영화 상영관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양 옆으로 책을 가득 채웠다. 크게 손을 대지 않았다. 오직 공간의 기능만 영화관에서 도서관으로 바꾼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영화관의 구조는 낯설게 느껴져 새로운 공간이 된다.



자연스럽게 시네 라이브러리는 계단식 열람 공간을 가지게 됐다. 가장 높은 곳에서 입장하여 책장으로 구분된 작은 복도를 따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의도한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동선이다. 앞쪽에 입구가 있었더라면 스크린의 방향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책을 읽고 있다 하더라도, 계속 누군가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자꾸 보였을 테니까.


항상 어두웠던 영화관을 환하게 밝히고, 푹신한 관람석 소파 대신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나무 벤치를 작은 선반과 함께 일체형으로 디자인했다. 라이브러리에서 그 콘셉트가 나왔으리라 짐작된다. 작은 선반에 커피와 핸드폰을 놓고, 책을 펼치게 되니 순식간에 영화관은 도서관으로 변모한다.



양 옆의 벽을 모두 책장으로 만들어 책으로 가득 채웠지만, 스크린은 그대로 두었다. 스크린 아래에 작은 무대를 만들어 놓아, 때에 따라서 시네 라이브러리는 세미나 실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관 측에서 진행하는 여러 행사에 쓰일 수 있는 융통성이 남겨졌다. '멀티'플렉스답게.



시네 라이브러리의 좌석은 상영관처럼 빽빽하게 구획되어 있지는 않다. 앞으로 꽤나 넉넉한 자리가 있어 쾌적함에 더 중점을 뒀다. 혼자 와도, 둘이 와도 또는 셋이 와도 넉넉하게 앉을 수 있다. 좌석은 종류가 두 가지 정도로, 나무로 각진 의자와 소파가 있으니 개인의 취향에 따를 것.




02 CGV의 일관된 디자인 전략


외국에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즐거운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하기도 하고, 낯선 길목에서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나중에 지나고 나서 보면 추억이지만, 그 당시엔 매우 긴장되고 떨린다. 누군가 말이라도 걸면 마음이 울렁거리면서 요동친다. 그때, 동그란 초록색 간판을 보면 마음이 스르륵 녹으며 안심이 되곤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스타벅스의 표식이다. 언제나 같은 맛, 같은 서비스, 같은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 낯섦 투성이인 여행 중에 그렇게나 소중하게 느껴질 수 없다. 나는 그것이 브랜딩이고, 전략이며 프랜차이즈가 가져야 할 덕목이며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 CGV도 마찬가지다.


CGV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의 성격을 몇 번에 걸쳐 바꾸어 왔는데, 2011년 CGV 청담 시네시티부터는 1950, 60년대 파리나 뉴욕에서 볼 법한 복고풍 디자인 재해석하여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벽돌 타일을 이용해 내부 벽체를 마감하고, 백열전구의 형태를 띤 조명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간판이 대표적이다.



이곳, 시네 라이브러리에서도 같은 공간 디자인 콘셉트가 적용되었는데, 장식적인 구조가 곡선을 그리면서 천장을 가로지르며 지나간다. 구조적 역할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런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철골처럼 보이는 철물 보를 제작하고 같은 색의 철물로 책장을 제작했다. 같은 느낌을 계속 가져가려고 한 것. 천장에는 백열전구를 동그랗게 배치한 조명을 크게 넣어 이곳이 CGV임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철물 보와 비슷하게, 책장의 상부도 아치형으로 철물을 제작해 장식했다. 옛 느낌을 주기 위하여 아치형의 라인을 그려 넣은 것이고 그에 더해 철물로 제작하여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을 더했다. 철물 사이에 끼인 벽에는 벽돌 타일로 마감했다. 아직까지 이런 '공장' 느낌의 디자인은 한창 유행 중이다. 



도서관이 도서관이기 위해서는 책이 필수적이다. 책이 어떻게,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는 도서관의 성격을 규정하는 아주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시네 라이브러리에서는 크게 양 옆의 벽, 두 면에 책장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높이를 천장까지 닿도록 책장을 쭉 높였다. 높은 책장에 올라설 수 있도록 사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옆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레일을 달아놨다. 레일이 있으니 사다리는 옆으로 기대어 있을 필요가 없어졌고, 책장 주위는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었다.





CGV 시네 라이브러리는 명동 CGV에서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으며, 당일 표를 보여주면 입장 가능하다. 영화 시간보다 조금 일찍 찾아가 커피 한 잔과 함께 영화를 읽을 수 있는 이 공간을 즐겨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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