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는 잘 있어요
나의 친구 빔이 연휴를 맞아 일주일 간 여행을 떠나자, 빔의 고양이 애기는 일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집에 홀로 남게 되었다. 퍽 낯을 가리는 고양이인 애기는 호텔에 맡겨지면 그 기간 동안 식음을 전폐한다고 하여, 내가 이틀에 한 번씩은 빔 집을 방문해 애기 밥을 챙겨주기로 하였다.
빔 집에 들어서며 애기를 부르는데 애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는 고양이 중 가장 말이 많은 애기는 "애기~" 하고 부르면 "왜애~" 하고 꼭 대답을 해주는 수다쟁이였기 때문에 의아함을 느끼며 집에 들어가 애기를 찾자 침대 위 뭉쳐진 이불 안에서 꼬물꼬물 하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낯선 집이기 때문인지, 빔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낯을 많이 가리는 것처럼 보였다. 울음소리가 달랐다. 길게 이어지는 울음이 아니라 짧게 여러 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밥그릇에는 밥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밥도 채워주고, 물도 채워 넣자 기다렸다는 듯 얼른 밥그릇 앞으로 걸어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입이 짧은 동물이라 금방 밥을 다 비우진 않았지만, 다시 혼자가 되면 배고플 때마다 와서 조금씩 먹을 것이다.
난장판이 된 애기 화장실을 치워주려고 다가가니 밥을 먹다가 얼른 다시 방으로 들어와 청소를 하지 말라고 성화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낯선 사람이 화장실에 손을 대는 것이 싫은지 퍽 싫어하길래 그냥 두었다. 더러운 것이 아직은 좀 참을 만한 모양이다. 보통은 화장실을 치울 때 조금 떨어져서 은근히 독려한다고 하는데, 내가 치우려니까 화장실 철통 보안. 결국엔 포기했다. 내일 다시 시도해야지.
내가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애기는 뭔가 나에게 스피드 퀴즈를 내는 것처럼 바닥을 뒹굴면서 나에게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했다. 개와 달리 고양이의 언어는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하고, 어렵다. 그냥 나에게 원하는 것을 말해주면, 내가 들어줄 텐데. 아, 뭘 원하는지 몰라서 뭔가 더 해주지 못하고 애기를 두고 집을 나와야 했다. 도대체 뭘 원했던 걸까? 집사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