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Jun 07. 2017

근황 보고

나는 어디로 도망칠까

T.S.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줄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나 그 구절을 되뇌면서도 나는 4월이 행복하다고 믿었는데 이번 4월은 퍽 잔인하게 나를 지나쳤다.


3월 말부터 4월이 끝나도록 회사에서 퇴근하면 학원으로 향했다. 회사 직원들끼리 다 같이 가서 배우기로 하였고, 그 필요성에 공감하였고, 배우는 내내 수업 내용에도 만족하였지만 그 스케줄만큼은 아무리 다시 돌아봐도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5주 동안 주 5일(월/수/목/금/토) 평일엔 6시 반부터 9시 반까지, 토요일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총 100시간을 채우는 과정이었다. 5주 동안 나의 저녁은 학원으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 서브웨이 또는 김밥을 입에 욱여넣는 5분이었고, 단 하루 쉬는 날인 일요일엔 밀린 잠을 자고 남자 친구 얼굴을 보면 어느새 월요일이 다시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나의 머리는 낮밤으로 작동해야 했고, 내 안에서 무언가를 뽑아내고 만들어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사진을 찍지 못했고, 글을 쓰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던 것보다는 더 이상의 생각을 진행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갈증이 나는 사람처럼 책을 읽어댔다. 학원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돌아와 잠에 들기 전까지 활자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오래 자리 잡고 읽을 수는 없었지만, 눈을 뜨고 있을 수 있었던 잉여 시간에 틈틈이 진도를 나갔다.


내 시간을 자유로이 쓰지 못한다는 강박이 나를 다른 세계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노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인지라, 원하는 만큼 놀지 못하는 것은 나를 답답하게 했다. 즐겨 읽던 에세이를 덮고 소설책을 펼쳤다.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다른 곳으로 재빨리 데려가 줄 수 있는 책들이 필요했다. 일상을 탐구하고 재해석하며 느리게 나아가는 글보다 다른 세계에서 통쾌하게 모험을 펼치고 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들에 더욱 끌렸다.


할인해서 충동적으로 구입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6권을 시작으로 정유정 작가의 <28>, <7년의 밤>, <종의 기원>을 거쳐서 요 네스뵈의 <아들>을 읽다가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아직 출간되지 않은 피터 스완슨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까지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거의 모두 사람이 죽는 소설이었다.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것보다는 살인자의 입장에서 죄책감 없이 풀어내는 소설들이 더 좋았다. 대리만족일 수도 있었다. 무언가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학원 수업이 끝나도 '글쓰기'로는 돌아올 수 없었다. 4월이 끝나자 5월이 시작되었고,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마감이 다가왔다. 나의 에너지는 남지 않았고, 생각을 키보드로 적어 내려가던 순간은 아득히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감이 끝나도 한동안 책 안에서 살았다.


방금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여행기를 다 읽고 나서야 집 컴퓨터 앞에 앉아 '글쓰기'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유정 작가가 글이 막혔던 순간 히말라야로 떠났다가 돌아온 여행기였다. 히말라야에 다녀오며 슬럼프를 극복한 이야기.



몸이 아닌 마음의 고갈이 왔을 때, 누구든 어디론가 도망쳐야 한다. 원하는 곳으로 떠나서 그곳에서 마음을 쉬게 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생산해 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원하는 만큼 쉬게 놔두면, 생각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록 도와주면 어느 순간 다시 돌아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다시금 움튼다. 그런 의미에서 도망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가.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엔 '저지르는' 류의 소설이었던 것. 그렇다면 당신이 도망치는 장소는 어디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