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채희(9)-완결

안녕! 채희, 감사합니다. 채희 씨-엄마를 이해하는 나를 이해하다.

by 김수달

(에필로그입니다.)

엄마 이야기를 일곱 번째 쓰려하니,
나는 이제 엄마를 조금 더 알 것 같다.
어린 날의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가난했고,
훨씬 더 외로웠고,
훨씬 더 어른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엄마가 1000원짜리 짜장면 삼등분하던 시절,
스무 살도 안 된 몸으로
생선상자를 들고 일찍 헤어진 외할머니 대신
어린 동생들을 키우던 시절,
아버지와 손 잡고 장대비 속 시댁에 가던 날,
허리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화장품 외판 가방 들고 집 나서던 서른 중반의 시절을.
엄마는 늘 씩씩해 보였지만,
엄마의 인생은
남들이 모르는 찢김과 꿰맴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단순히 ‘엄마’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한 번도 울지 않은 척 살아온 여자,
숨죽이며 버틴 여자,
가족을 일으킨 여자.
엄마의 삶을 쓰면서
나는 나의 삶도 이해하게 된다.
내가 불안한 이유,
내가 두려움이 많은 이유,
내가 애써 살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이유가
조금은 보인다.
엄마에게 상처가 있었다면
나에게도 상처가 있다.
엄마가 버틴 만큼
나도 버티고 있다.
엄마 삶을 글로 적으며
나는 엄마를 위로하고,
동시에 나를 위로한다.
이제 남은 질문은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엄마가 한 어깨로 세운 이 가계를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어갈 것인가.
나는 엄마가 되어보지 않았지만,
엄마를 이해하는 딸이 되어간다.
엄마의 인생을 쓰며 깨닫는다.
결국 인간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로 늙어가는 존재라는 걸.
그리고
엄마가 살아온 시간들이,
아버지가 견뎌온 육신이,
언니들이 버틴 침묵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나는 오늘도 감사하다.
엄마가 채희였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내가 이 가정의 딸이라는 사실에.
끝까지 쓰고 나면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이 글이 엄마의 삶을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이토록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반문해 본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짜장면을 사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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