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은 칭찬이 아니었다. 대가였다.(1)
1970년대까지는 청와대 가구 납품까지 하던,
서울에 아파트를 두채나 가지고있던, 아버지
장미와 루피너스가 서울사립유치원을 다녔지만
어음부도로 아버지의 사업은 쫄딱 망했다.
아버지가 내려올 당시,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하반신이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셨단다.
그때 아버지는
모든 걸 잃은 사내였다.
돈도, 일도, 체력도, 자존심도.
아버지가 가구공장을 접고 고향 근처로 내려오셨을 때,
엄마는 생계를 이어야 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화장품 외판원을 하셨다.
낯선 집 문을 두드리고,
추운 아침 길을 걸어 다니며,
국수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시며
엄마는 돈을 벌었다.
그때 당시에는 다방, 단란주점이 흥했을땐데,
아가씨라 불리던 여자들의 옷을 꼬매주고, 상대하며, 화장품을 파셨단다.
치열하고, 처절하게 독하게 살아남으셨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지금도 싫어하신다.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한 남자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몸이 무너져 가는데,
가장이 일을 못 하고,
아내가 외판 가방을 들고 나가던 시절을
어떻게 웃으며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쇼파 수리점이 시작되었다.
허름했고,
빚에 쫓겼고,
돈은 안 됐지만
손끝으로 다시 인생을 붙이던 시절.
시간이 흘러,
쇼파 수리점은 가구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가구점이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