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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혜 Jul 04. 2022

언니를 찾아서

동화

  “또 만나?”

  유진이가 서둘러 가방을 싸는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나는 간단히 고개만 끄덕였다. 유진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강지나! 그거 사이비라니까. 너 그러다가 완전 사기당한다!”

  교실을 후다닥 빠져나올 때, 뒤에서 유진이가 소리쳤다. 사이비라니. 승연 언니를 직접 만나보면 절대 아니라는 걸 알 텐데. 나는 유진이의 말을 훌훌 잊고 언니와 만날 생각만 하기로 했다.

  학교 앞 공원에 도착했지만 승연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자에 앉아 언니를 기다렸다. 아침에 후다닥 나오느라 휴대폰을 안 챙겨 나와 딱히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곧 오겠지. 나는 두 발을 앞뒤로 번갈아 흔들며 먼 곳을 쳐다보았다. 학교 건물 중앙에 붙어있는 시곗바늘이 천천히 움직였다. 

  뮤지컬 <마틸다> 넘버를 흥얼거리고, 연기 연습을 하면서 20분을 기다렸지만 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교 시간에 맞춰 온다고 했는데. 언니는 언제나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시간 약속을 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혹시 나와의 약속을 까먹은 건 아닐까?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해볼 방법이 없었다.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확인해보았다. 10월 1일. 분명 오늘이 맞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교문 밖을 우르르 빠져나오던 애들이 제각기 집으로, 학원으로 흩어져서 공원에는 비둘기 다섯 마리와 강아지와 산책하러 나온 아저씨뿐이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공원 전체를 감쌌다. 원래 사람이 많은 공원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텅 비어 보였다. 

  내가 찾아가야 하나? 그러다 엇갈리면 어떡하지. 나는 신발을 신고 돌멩이로 만들어진 지압판 위에 올라갔다. 신발 밑창 아래로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느껴졌다. 지압판을 한 바퀴 돌았지만 여전히 공원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직접 언니를 찾으러 가야겠다.

  언니가 있을만한 공간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나는 곧장 구립도서관 어린이자료실로 향했다.

  언니를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여기였다. 그때 나는 여름방학 숙제로 읽어야 할 책을 찾고 있었다. 

  “저 혹시 인터뷰 좀 해줄 수 있을까요?”

  언니는 거의 나한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나는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았다. 언니는 가방에서 초코우유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미지근해진 초코우유는 별로 끌리지 않았다.

  “제가 사실은 동화를 써요.”

  언니는 동화작가 지망생이었다. 지금은 대학교를 쉬고 있다고 했다. 주변에 어린이들이 없어서 인터뷰를 부탁하게 되었다고 사정을 말했다. 나는 초코우유를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언니의 말을 들었다. 

  날씨가 너무 덥다는 생각뿐이었다. 밖으로 나온 지 5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뒷목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괜히 인터뷰에 응했나 싶었지만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질문은 너무 뻔하고 재미없었다. 나이를 묻고, 취미를 묻고, 장래희망을 물어보았다. 그게 다였다면 언니에게 절대 내 이름과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뮤지컬 배우를 꿈꾼다는 내 말에 언니의 눈은 반짝 빛이 났다. 노래 한 소절 불러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부탁한다고 다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언니는 갑작스럽게 부탁해서 미안하다며 태도를 바꿨다. 그러니 오히려 불러주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 실력을 알릴 기회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나는 <마틸다>의 <어른이 되면>을 불렀다. 도서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나를 흘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이런 시선 정도는 즐길 수 있어야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쑥스러움을 이겨냈다. 

  노래를 마쳤을 때, 언니는 입을 틀어막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안다. 바로 내 노래가 엄청나게 멋졌다는 것이다. 

  역시나 언니는 잘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언니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뿌듯했다. 언니의 칭찬은 그 뒤로도 꽤 오래 이어졌고, 나는 괜히 겸손한 척했다.  

  “이렇게 어린데 벌써 잘하는 걸 찾았네요.”

  그렇게 말하는 언니의 눈에는 부러움이 잔뜩 담겨있었다. 나에게 이런 눈빛을 보낸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는 매번 떨어지는걸요.”

  나는 은근슬쩍 고민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내가 떨어질 때마다 은근히 포기하기를 요구했고, 유진이는 나를 위로해주면서도 떨어질 것을 알았다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들었던 칭찬은 항상 어린것 치고는 잘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렇지만 무대에 서는 내 또래 애들은 정말 프로였다. 나는 내 나이치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가 되고 싶었다. 언니는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바로 원하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니 왜? 이렇게 잘하는데? 심사위원들이 보는 눈이 없네!”

  그동안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왜 이 말에 유진이 생각이 났을까? 유진이도 아이돌이 꿈이라 우리는 자주 함께 노래방을 갔다. 그때마다 유진이는 내 노래에 대해 아직 어려서 성량은 좀 아쉽다든지, 아마추어인데 이 정도면 잘한다든지, 하는 말을 내놓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유진이의 노래실력을 헐뜯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언제나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어쩌면 나는 유진이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이렇게 엄지를 척 들어달라고 말이다. 

  그날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언니와 이야기했다. 언니는 괴물이나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지, 신이 된다면 하고 싶은 게 뭔지, 집에서 고래를 키우면 어떨 것 같은지 등을 물어보았다. 

  어떤 질문에서였더라. 어쩌다 보니 유진이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내 실력을 무시하는 유진이도 사실 그렇게 잘하지 않는다, 친구니까 언제나 칭찬을 해주긴 하지만 진짜로 자기가 잘한다고 착각할 때는 좀 아니꼽다. 이런 이야기.

  헤어지기 전에,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다. 의심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비밀을 공유한 사이가 아닌가.

  도서관에 언니는 없었다. 그럼 어디에 있을까. 질러 코인 노래방을 가볼까? 

  우리는 첫 만남 뒤로 도서관 아니면 노래방에서 놀았다. 그러니까 노래방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가 내 약속을 어기고 혼자 노래방에 갔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제 유진이보다 언니와 더 자주 노래방을 갔는데 그건 내가 더 노래를 많이 부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노래 부르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항상 내가 더 많이 불렀지만 우리는 꼭 돈을 반반씩 냈다.

  언니와 노래방을 가는 게 좋았던 건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니는 유진이처럼 내 노래는 이렇고, 저렇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가끔 노래방 벽면에 가득 메워진 낙서를 카메라로 찍기도 하고, 신곡 차트를 살펴보며 딴짓을 하기는 했지만 무시받는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는 노래방에서 노래만 부르지 않았다. 노래방 기계 화면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노래를 하다 말고 가수 이야기를 몇 분 동안 늘어놓았다. 그러다 노래 한 곡이 반주만 흐른 채 끝나버린 때도 있었다. 벽면에 ‘지나♡승연언니’를 적어놓기도 했으며, 낙서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내가 상상을 하면 언니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나 보여줘”

  “나중에. 나중에 동화로 쓰면 보여줄게.”

  이렇게 우리는 주로 도서관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노래방에서는 동화를 썼다. 

  원래 오늘 가기로 했던 곳은 동네책방이었다. 언니가 좋아하는 책이 동네책방 에디션으로 나왔다며 엄청 좋아했다. 혹시 거기 가면 있을까? 나는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고작 ‘너나들이’라는 책방 이름밖에 몰랐다. 문득 언니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언젠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내가 뮤지컬 <마틸다>를 이야기하자 언니는 동화책만 읽어봤지만 자기도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작품 이야기를 하니 신이 났다. 연기가 어떻고, 어떤 배우를 가장 좋아하고, 얼마나 자주 연습하는지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던 언니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마법사의 삶을 살아봤어?”

  “내가?”

  진지한 언니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왜 연기해보려면 직접 경험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언니는 다 경험해보고 써?”

  “음…… 안 가본 길을 어떻게 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언니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쩐지 지금이라도 안 가본 길도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언니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하필 휴대폰이 없다는 점이 큰 장애물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언니가 서점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되짚어보았고, 높은 건물 반대편으로 가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언니가 없는 질러 코인 노래방에서 나와 왼쪽으로 꺾었다. 

  설렁탕집을 지나고, 옷 가게를 지나고, 토스트집을 지나고, 두 개의 카페를 지나고, 화장품 가게를 지났다. 발바닥이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여섯 명의 어른들에게 길을 물었고, 그중에 다섯 명은 모른다고 했다. 길을 안다고 했던 한 명은 책방이 아니라 같은 이름의 카페를 알려주었다. 

  너나들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 점점 하늘이 빨간빛으로 물들었다. 곧 해가 질 것이다. 나는 다급해졌다. 분명 동네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완전히 처음 보는 건물들과 골목들이었다. 골목은 왜 이렇게 많은지 조금만 걸어도 몇 갈래로 갈라졌다.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마주친 건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노리는 길고양이뿐이었다. 

  가로등이 깜빡거리다가 팅 소리를 내며 켜졌을 때, 나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월 초에 부는 저녁 바람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반팔 사이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골목을 빠져나가야 돼. 나는 빠르게 걸었다.

  그냥 공원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될 걸. 휴대폰은 또 왜 놓고 와서. 걸음을 더 빨리했다. 언니가 미웠다. 왜 오늘 공원에 나타나지 않은 거지. 어째서 책방 위치를 알려주지 않은 거야. 걸음을 재촉할수록 눈동자가 뜨거워졌다. 가로등 빛이 번져 보였다. 

  뒤에서 쓰레기봉투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겠지. 나는 발등에 모래를 단 듯 무거워졌다. 빨리 걸어야 하는데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때 옆으로 누군가가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순간 소리를 지르며 푹 주저앉아버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길 잃어버렸니?”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줌마가 나를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 언니를 이, 잃어…….” 

  아줌마는 나를 근처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거기에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경찰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언니!”

  내 목소리에 경찰서 안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언니는 나를 보고 빨개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에게 다가가려는 내 앞에 어떤 아줌마가 끼어들었다.

  “네가 쟤 동생이야?”

  “그건 아닌……”

  아줌마는 화가 잔뜩 나 있었고,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동생 아니야? 그럼 무슨 사이야? 너도 혹시 가장초등학교 다니니?”

  쏟아지는 아줌마 말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갑자기 아줌마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나와 언니의 거리가 확 가까워졌다. 

  “얘가 증언해줄 수 있겠네. 얘, 이 언니 초등학교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애들 잡고 이상한 거 물어보고 그러잖아. 너한테도 그랬지?”

  나는 고개를 돌려가며 언니와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경찰은 한숨을 쉬더니 얼른 대답하라는 듯 쳐다보았다. 

  “오늘 우리 애가 학교 끝나고 쟤한테 붙잡혔잖아. 내가 오늘따라 데리러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아니 다친 데가 없다고 그냥 풀어주는 게 말이 되니? 동화를 쓴다 어쩐다 하면서 애들한테 이상한 종교 같은 거로 유인하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아니면 돈 뺏으려 한 건지 어떻게 알아? 혹시 알아. 유괴라도 하려는 거였으면 어쩔 뻔했어! 우리 애가 아주 무서워하는데도 그냥 계속 붙잡고!”

  아줌마 다리를 붙잡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나보다 두 살은 더 어려 보였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경찰의 말에도 아줌마는 나에게 대답을 요구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아니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언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데. 나쁜 짓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경찰과 아줌마는 이제 나를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둘은 서로 경쟁하듯 목소리를 키웠다.

  “그게 협박은 아니잖아요!”

  “우리 애가 무서웠다잖아!”

  무서웠다는 그 아이는 정말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정말 언니가 무서웠냐고 묻고 싶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언니의 눈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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