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선혜 Aug 28. 2022

바나나 식초

방구방구 탐정단_4

  용의자를 좁힌 우리는 본격적으로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우리는 평소와 똑같은 메뉴를 시켜놓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유나는 항상 그랬듯이 어묵 국물만 홀짝홀짝 마시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방귀를 뀌어보게 하자!”

  “어떻게?”

  “우리 엄마가 매일 먹는 게 있어. 바나나 식초래. 근데 그걸 먹으면 똥이 잘 나온다고 그랬어. 똥이 잘 나오게 하는 약이면 방귀도 잘 나오게 하지 않을까?”

  신기했다. 똥이 잘 나오게 하는 식초라니. 더러운 똥을 싸기 위해 식초를 먹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식초를 먹으면 똥이 깨끗하게 나오거나 예쁜 모양으로 나오는 건지도 몰랐다.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똥이 예쁘게 나오면 어떤 모양으로 나올까? 색깔은 무슨 색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명하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바나나 식초를 어떻게 먹이지?”

  “엄마가 먹는 걸 봤는데 물에 타서 먹더라고. 우유급식을 먹을 때 용의자의 우유에 몰래 타는 거야.”

  “오! 재밌겠다!”

  무엇이든 몰래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몰래 넣지? 우유를 몰래 뜯어 놓으면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만약 우유에 바나나 식초를 탄다고 하더라도 다른 친구가 마시게 되면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유나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야 간단해! 우유를 뜯어서 남들 몰래 바나나 식초를 탄 다음에 용의자한테 갖다 주면 되는 거야. 오히려 착하다고 칭찬받을지도 몰라.”

  명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수업시간마다 자거나 장난쳐서 혼나는 명하가 달라 보였다. 우리는 명하가 말한 대로 하기로 했다. 이로써 계획은 완벽했다. 

  유나는 수첩의 두 번째 장을 펼쳤다. 첫 장에 적을 때 펜을 꾹꾹 눌러서 쓰는 바람에 그다음 장의 종이가 글자대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유나는 그 위에 글씨를 썼다. 글씨가 구불구불했다.     

<게획>
우유에 바나나 식초 넣기
유나-> 담임선생님
소라-> 보경
명하-> 동수     


  전날 계획한 대로 우유급식 시간이 되자 유나는 담임선생님에게 배가 아프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항상 아이들이 우유 마시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반에서 우유를 먹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하지만 특별히 안 먹어도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날 아픈 아이는 집에 가져가는 것을 허락해주었던 것이다. 

  유나는 조회시간부터 배가 아픈 척했다. 담임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유나를 좋아했다. 가장 먼저 이름을 외운 학생이었으니까. 그건 4반 아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유나에게 우유를 집에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었다. 첫 번째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그다음에 유나는 우리가 짠 시나리오대로 말했다. 

  “여름이라 집까지 가는 동안 상할 것 같아요.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에 가야 해서…… 선생님이 대신 마셔주면 안 돼요?”

  담임선생님은 생각보다 쉽게 그러겠다고 했다. 역시 담임선생님은 유나를 좋아하나 보다. 이제 유나가 바나나 식초를 우유 속에 넣고 담임선생님에게 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유나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그때, 담임선생님이 유나의 우유를 다른 친구한테 줘 버렸다. 그 친구는 우리 속도 모르고 우유가 두 개 생겼다며 좋아했다.

  결국 이 계획은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김보경과 한동수에게 줄 우유도 선생님이 직접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방구방구 탐정단의 주머니에는 유나가 엄마 몰래 가져온 바나나 식초가 한 병씩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우리는 그날 곰돌이 분식집을 가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나가 준 바나나 식초가 담긴 병뚜껑을 열었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이 정도로 냄새가 지독하다면 용의자의 우유에 식초를 타는데 성공했어도 결국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가지고 온 바나나 식초를 물에 섞었다. 냄새는 이상해도 맛은 바나나처럼 달콤할 거야. 나는 코를 막고 한 모금 꿀꺽 삼켰다. 으엑. 찌릿한 신 맛에 혀를 내둘렀다. 컵에는 아직 식초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다 먹지 않으면 예쁜 똥이 나오지 않을 거야. 나는 눈을 꾹 감고 한 번에 들이켰다.

  이제 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똥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잠자려고 이불을 펼쳤을 때 드디어 배에서 꾸루륵거리며 소식이 들려왔다. 나도 이제 유나네 엄마처럼 예쁜 똥을 싸는 걸까? 

  변기에 앉자마자 뿌직 똥이 나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똥은 냄새가 지독했다. 모양도, 색깔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나나처럼 예쁜 노란색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매일 마셔야 예쁜 똥이 나오는 건가 보다.

이전 03화 용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