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방구 탐정단_5
금요일은 논술학원에 가는 날이라 방구방구 탐정단 회의가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나가 자신이 좋은 정보를 얻어냈다며 학원을 빠지자고 했다. 모범생인 유나가 그런 말을 하다니. 굉장한 정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엄마가 알면 혼날 텐데…….”
논술학원 선생님이 내가 빠졌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그때, 명하가 크게 웃었다.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
명하가 스마트폰을 꺼내 논술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통화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전화를 받았다. 명하가 목소리를 높게 올려 말했다.
“선생님, 저 소라 엄마인데요. 오늘 소라가 아파서 학원에 못 보낼 것 같아요.”
나는 좌절했다. 좋은 방법이 고작 우리 엄마 흉내라니! 그런데 놀랍게도 선생님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심지어는 빨리 낫길 바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명하가 성공한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학원 땡땡이를 쳤다. 하지만 명하와 유나가 문제였다. 같은 방법을 쓰면 선생님이 결국 눈치채고 말 것이었다. 다행히도 유나는 엄마에게 이미 거짓말로 아프다고 해놓은 상태였고, 명하는 전에도 땡땡이를 친 전적이 있었던 터라 괜찮다고 말했다.
우리는 학원을 땡땡이쳤다는 사실에 설레어 평소보다 더 즐겁게 곰돌이 분식집으로 향했다. 곰돌이 아줌마는 평소보다 떡볶이를 많이 주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접시 위로 넘칠 것 같았다. 우리가 범인을 잡기 위해 학원을 빠진 사실을 알았나 보다. 우리의 용기를 칭찬해주기 위해 떡볶이를 많이 준 것이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떡을 두 개씩 입에 밀어 넣으며 좋아했지만 명하는 어묵이 평소보다 없다며 입을 빼쭉 내밀었다.
유나는 떡볶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를 열어보니 파란색 성냥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와 명하는 성냥갑을 빤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성냥갑은 왜 꺼내는 걸까.
“잘 봐봐.”
유나가 왼손으로 성냥갑을 가리고는 숫자를 세었다.
“하나아… 두울…셋!”
유나가 손바닥을 치우자 상자 안의 성냥이 다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와 명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한 거야?”
“이건 너희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주말에 엄마, 아빠랑 마술을 보러 간 곳에서 팔고 있었어. 상자를 이렇게 열면 파란색이 나오고, 이렇게 열면 빨간색이 나오는 마술도구야.”
겉보기에 상자 여는 방법은 하나인 것 같았지만 유나 말대로 자세히 보니 두 가지의 방법으로 열 수 있었다.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마술도구로 어떻게 범인을 잡겠다는 건지 궁금했다.
“애들한테 이걸 마법 상자라고 뻥 치는 거야! 방귀 뀐 사람의 엉덩이에 갖다 대면 색깔이 바뀐다고 하는 거지. 방귀를 뀌는 순간 이 상자를 들이밀면 돼. 자기가 범인이라면 검사받는 걸 싫어하겠지? 끝까지 검사받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 바로 범인이야!”
역시 유나였다. 엄마가 유나의 이 말을 들으면 나에게도 마술도구를 사줄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계획이야 말로 정말 완벽했다.
유나는 탐정 수첩을 꺼내 세 번째 장을 펼쳤다. 그 종이에도 역시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에 쓴 글씨 그대로 움푹 파여 있었다. 유나는 여전히 손에 가득 힘을 주고 글씨를 썼다.
<게획2>
마술 성냥 상자
뿌우욱!
여덟 번째 방귀 소동이 벌어졌다. 방구방구 탐정단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하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범인을 찾아줄게!”
모든 아이들이 명하를 쳐다보았다. 담임선생님은 명하에게 조용히 하고 앉으라고 했다. 하지만 명하는 앉지 않고 오히려 선생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도 용의자예요! 그렇지?”
명하는 나와 유나를 순서대로 보았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하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방구방구 탐정단이에요!”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피식피식 웃다가 깔깔 웃어댔다. 방구방구 탐정단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우리가 탐정단임이 밝혀지는 순간 모두 우리를 우러러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탐정단 이름이 웃기다면서 놀려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모두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명하가 말했다.
“우리가 꼭 범인을 찾아낼 거야!”
명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명하의 당당한 모습에 나도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는 꼭 범인을 찾아낼 것이다!
그때, 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탐정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첫 장을 펼쳤다.
“용의자는 담임선생님, 김보경, 그리고 한동수. 이 세 명이에요. 이 중에 범인이 있어요!”
유나는 차례대로 담임선생님, 김보경, 한동수를 가리켰다.
“내가 왜 범인이야!”
한동수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난 진짜 아니야.”
김보경이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이제 알게 되겠지. 지금 우리가 범인을 밝혀주지!”
명하가 탐정 만화의 주인공이 된 듯이 말했다. 이제 아이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 명의 용의자만 빼고.
“누가 범인인데?”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하니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유나가 마술 도구인 성냥갑을 꺼내고는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이건 마법 성냥이야. 이 안에는 파란색 성냥이 들어있어.”
유나는 성냥갑을 열어 친구들에게 파란 성냥들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모두 유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도 수업하기를 포기했는지 더 이상 교탁을 두드리지 않았다. 얼굴이 잔뜩 새빨개진 채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이걸 방귀를 뀐 사람 엉덩이에 대면 빨간색으로 변하거든. 그러니까 지금 세 용의자 엉덩이에 대보자!”
유나는 계획대로 마술 도구를 마법의 도구로 바꾸어 설명했다. 이제 용의자들의 반응만 살펴보면 되는 거였다.
“지금은 수업시간이야. 탐정단 놀이는 수업이 끝나고 너네끼리 하든지 말든지 해! 그리고 선생님을 놀리면 못 써!”
내 예상대로 담임선생님은 검사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만 싫어한 게 아니었다. 김보경과 한동수까지 검사를 거부했다.
유나는 이 검사를 통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 명의 용의자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마법의 성냥갑이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믿겠어?”
한동수는 유나가 들고 있는 성냥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나가 머뭇거렸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명하를 쳐다보았다. 명하라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명하와 눈이 마주쳤다. 명하는 내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씨익 웃었다.
“내가 지금 방귀를 뀌고 내 엉덩이에 저걸 대보는 거야! 그럼 진짜 색깔이 바뀌는지 안 바뀌는지 확인할 수 있잖아.”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물론 세 명의 용의자만 빼고 말이다.
명하는 방귀를 뀌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쥐고는 힘을 주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으면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였다. 어느새 4반의 모든 아이들은 명하처럼 주먹을 쥐고 끄응 힘을 주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온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명하를 보았다. 그렇게 하면 우리들의 힘이 모여 명하에게 전달될 것 같았다.
부웅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이루어진 것인지 드디어 명하가 방귀를 뀌었다. 같이 힘을 주었던 아이들은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이제 유나가 마법의 성냥을 시험해볼 차례였다. 명하가 유나에게 다가갔다. 유나는 먼저 아이들에게 상자를 열어 파란색 성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명하의 엉덩이에 성냥갑을 대고 숫자를 세었다.
“하나아… 두울…셋!”
아이들은 일어나서 성냥갑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 빨간색 성냥이 나오도록 성냥갑을 열기만 하면 되었다. 성냥갑을 쥐고 있는 유나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성냥갑을 쳐다보았다. 유나가 상자를 열었다.
파란색! 파란색이었다.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한 것이었다.
“엥? 파란색인데?”
“거봐! 마법 성냥갑 아니잖아! 거짓말쟁이야!”
한동수가 흥분해서 침을 튀기며 말을 했다. 그러자 아이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런데 저게 진짜 마법 성냥갑이라면 방귀 뀔 때 대야 하는 거 아니야? 방귀 뀌고 나서 갖다 대도 되는 거야?”
“맞아! 뀐 다음에 바로 갖다 대야 하는 거 아닌가? 방귀 뀌고 한참 뒤에 갖다 대도 색깔이 변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그러게 거짓말쟁이네.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면 내 엉덩이에 대도 다 색깔 변해야겠네!”
반 아이들이 수런거리는 바람에 반이 시끄러워졌다. 유나의 얼굴은 파랗게 변해 있었다. 그때, 앞문이 벌컥 열렸다. 그곳에는 교감선생님이 서있었다. 교감선생님이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빼액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앞문이 닫히자마자 아이들은 다시 킥킥거리며 우리를 놀려댔다. 그렇게 우리는 방구방구 탐정단이 아니라 방구방구 사기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