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선혜 Aug 27. 2022

용의자

방구방구 탐정단_3

  “용의자가 뭐야?”

  용의자를 좁혀야 한다는 유나의 말에 나는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그것도 몰라? 탐정 만화도 안 봤니? 용의자는 범인인 것 같아 의심받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나는 괜히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귀가 뜨거웠다. 역시 유나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명하를 슬쩍 쳐다보았다. 명하는 어묵 꼬치를 하나 집어 입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명하도 나처럼 용의자라는 말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속으로 용의자라는 단어를 계속 말해보았다.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이라……. 그때,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담임선생님이야!”

  내가 소리쳤다.

  “그렇게 방귀 소리가 크고, 냄새가 지독한 건 범인이 어른이기 때문이야!”

  명하는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도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치 탐정처럼 오른손을 턱에 갖다 대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용의자라고 할 수 없어!”

  유나가 딱 잘라 말했다.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분명 담임선생님이 범인일 텐데……. 하지만 유나 말이 맞았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입술을 빼쭉 내밀고 생각에 잠겼다. 명하가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허리를 바짝 세웠다.

  “선생님은 항상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다니잖아. 맨 앞줄에 앉으면 향수 냄새가 독해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고. 이건 다 방귀 냄새를 가리기 위해 뿌리는 거야!”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고 말할 때 명하의 표정은 방귀 소동이 일어났을 때의 표정과 같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려 눈썹 사이로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러니까, 담임선생님은 유력한 용의자야!”

  새삼 명하가 대단해 보였다. 이번에는 유나도 인정했다. 나는 유력하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 담임선생님은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유나는 담임선생님이 용의자라면 교감선생님도 용의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교감선생님일 수도 있어. 매일 복도를 지나다니잖아. 사실 복도에서 뀌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교실 안까지 들린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삼 반이랑 오 반 애들도 이 사건을 알겠어?”

  과연 그럴듯해 보였다. 우리는 일단 담임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을 용의자로 정했다. 유나는 가방에서 알림장을 꺼내 맨 뒷장을 찌익 찢었다. 필통에서 펜을 꺼내 종이 위에 회의한 내용을 정리했다.     

<방구방구 탐정단>
용이자
1. 담임선생님
2. 교감선생님     


  빠아앙!

  여섯 번째 방귀 사건이 터졌다. 나는 재빨리 담임선생님을 보았다. 담임선생님은 교탁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방귀 소리가 나자 교실이 순식간에 웃는 소리로 시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담임선생님이 평소보다 볼이 더 빨개진 것처럼 보였다. 담임선생님이 범인인 것이 틀림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방구방구 탐정단은 바로 곰돌이 분식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떡볶이를 시키자마자 이번에 일어난 방귀 소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에 대해 말했다. 유나와 명하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분명히 그랬다고 강조했다. 담임선생님은 여전히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러면 이제 교감선생님을 확인할 차례였다. 방귀 소리가 나자마자 유나와 명하가 복도 창밖을 쳐다보았다고 했다. 유나는 그때 누군가 휙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교감선생님이야!”

  하지만 명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교감선생님이 아니야! 나도 봤는데 그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었어! 교감선생님이 모자를 썼을 리가 없잖아!”

  명하 말대로 교감선생님은 단 한 번도 모자를 쓴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한 번은 수업 중에 갑자기 앞문을 벌컥 열고 모자 쓰고 있는 애한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러면 대체 그 사람은 누굴까?”

  어쨌든 우리는 그 사람이 교감선생님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필 그 순간 누군가 복도를 지나갔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경비아저씨인가? 하지만 경비아저씨를 용의자로 넣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일 학년 때였다. 선생님이 매직펜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깜빡하고 못 가져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집에 다녀오면 지각할 게 뻔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교문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경비아저씨한테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매직펜을 빌려주셨다. 

  나는 경비아저씨가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건 경비아저씨에 대한 나의 의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비아저씨 대신 교감선생님을 용의자에 넣을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다시 용의자를 찾기 시작했다. 

  명하는 김보경이 범인이라고 했다. 김보경은 전교에서 유일하게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말해준 바로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급식을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언제 한 번은 된장국이 쏟아져서 하루 종일 교실 전체에 된장 냄새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시락을 싸오는 게 왜 범인이야?”

  내가 물었다.

  “내가 저번에 김보경 도시락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고구마가 있었어! 고구마 먹으면 방귀 냄새가 엄청 지독하다고 예전에 티비에서 본 적이 있거든.”

  나도 고구마를 먹으면 방귀 냄새가 독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었다. 명하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김보경의 방귀 냄새도 지독할 것이었다. 이렇게 김보경도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그럼 용의자는 이렇게 둘인 건가?”

  “아니, 한동수도 있어!”

  유나가 말했다. 한동수는 유나의 짝꿍이었다. 중간에 자리를 한 번 바꾸었는데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유나와 짝이 되었다. 유나는 한동수를 싫어했다. 뚱뚱해서 자신이 항상 책상 끝 쪽으로 밀려난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또 여름에는 땀 냄새가 심하다고 몰래 욕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동수를 범인으로 가리킬만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더 확실한 이유가 필요해!”

  명하도 내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수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뚱뚱하잖아. 배가 온갖 군것질거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냄새가 그렇게 지독한 거라고!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도 엄청 많이 먹는 거 너네도 다 봤잖아!”

  유나가 흥분해서 말을 했다. 듣고 보니 뱃속에 음식이 가득 들어있으면 그런 지독한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뚱뚱한 거랑 방귀 뀌는 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엄마도 뚱뚱하지만 엄마보다 아빠가 더 방귀를 자주 뀌는 걸?”

  나와 달리 명하는 여전히 의아한 듯했다. 유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걔 덩치를 봐봐. 우리 학교에서 그런 방귀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한동수뿐이야!”

  유나의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곰돌이 아줌마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명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나가 계속 적극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결국 한동수도 용의자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곤소곤 말했다.

  “그럼 한동수까지 용의자는 세 명이야!”

  유나는 가방에서 알림장 대신 수첩을 꺼냈다. 검은색의 작은 수첩이었다. 방구방구 탐정단의 첫 모임이 끝나고 문구점에서 다 같이 고른 것이었다. 노란색 꽃이 그려진 예쁜 수첩과 하얀 토끼가 그려진 귀여운 수첩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이 검은색 수첩이 제일 탐정 수첩 같았다. 흰색 펜으로 표지에 <방구방구 탐정단>이라고 써넣었다. 유나가 팔을 쭉 펴고 글씨를 보았다. 글씨가 ‘방구방구’에서 ‘탐정단’으로 가면서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나름 근사해 보였다.

  유나가 첫 장을 펴고 지금까지 말한 내용들을 적었다.     

<용이자>
1. 담임선생님
2. 김보경
3. 한동수     


  일곱 번째 방귀 소동이 일어났다. 우리는 한 사람씩 맡아서 지켜보기로 했다. 나는 담임선생님을 보았고, 명하는 김보경을, 유나는 한동수를 보았다. 

  담임선생님은 여전히 교탁을 탁탁 치며 얼굴을 붉혔다. 이 정도면 용의자가 아니라 범인이 확실했다. 하지만 아직 두 명의 용의자가 남아있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침착하게 기다려야 했다.

  명하는 김보경이 이번에도 고구마를 가져온 것을 봤다고 했다. 그렇다면 역시 김보경도 범인일 가능성이 있었다. 한동수도 마찬가지였다. 유나는 누군가 방귀를 뀌는 순간에 한동수의 엉덩이가 들렸다고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범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동수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