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至(손님맞이)/ 杜甫

by 최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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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至(손님맞이)/ 杜甫


舍南舍北皆春水 [사남사북개춘수] 집 남쪽과 북쪽은 온통 봄물이라

但見群鷗日日來 [단견군구일일래] 보이는 건 날마다 떼 지어 오는 갈매기들뿐이라오.

花徑不曾緣客掃 [화경부증연객소] 꽃잎 떨어진 길은 찾아오는 이 없어 쓸지 않고 그냥 두고 보았는데

蓬門今始爲君開 [봉문금시위군개] 오늘은 비로소 봉문 열어 그대를 맞네.

盤飧市遠無兼味 [반손시원무겸미] 시장이 멀어 차린 건 변변찮고

樽酒家貧只舊醅 [준주가빈지구배] 형편이 이렇다 보니 술은 묵은 탁주뿐이네.

肯與鄰翁相對飮 [긍여린옹상대음] 이웃집 노인과 같이 마셔도 좋다면

隔籬呼取盡餘杯 [격리호취진여배] 울타리 너머로 불러서 남은 술 마저 마십시다.


이 시는 두보가 내란 중에 유랑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쓰촨 성 청두시(成都市)에 이르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완화초당(浣花草堂)을 짓고 정착하여 1년이 흐른 무렵인 당 숙종 2년(761년)에 지은 것이다. 아직 내란이 진행 중이었지만 두보와 가족들은 청두(成都)에서, 급류에 떠내려 가다가 겨우 물 밖으로 나온 것처럼 숨을 고르고 비로소 안정적이고 평안한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예로부터 촉(쓰촨) 지방은 역사에서 피신처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항우와 천하를 놓고 겨루다가 밀리게 된 유방이 권토중래를 위하여 찾아든 곳이 촉 지방이었고, 조조의 기세에 제갈량이 형주를 버리고 유비와 함께 새롭게 자리 잡은 터전이 촉 지방이었다. 또한 신뢰하던 안녹산이 내란을 일으켜 쳐내려 오자 당 현종이 몽진길을 잡은 것도 촉 지방이었다. 촉으로 가는 길은 지세가 험하여 접근하기 힘들지만 그 안에는 안락하고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가 자리 잡아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이 좋은 곳이었다.


이 시(客至)에 부제로 喜崔明府相過 [최명부(崔明府)의 방문을 기뻐하며]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보면 손님은 明府(현령)의 직위를 가지고 관직에 있었던 최(崔)씨 성을 가진 사람인 것으로 보이는데, 두보의 어머니가 최(崔)씨였으므로 어머니 쪽 친척의 한 사람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두보의 시 <빈지(賓至)>가 뜻밖에 찾아온 낯선 손님을 맞아 소박한 밥상을 내놓는 데 그쳤다면, 이 시는 이웃 노인까지 불러 함께 술을 권할 만큼 훨씬 더 친밀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두보의 시를 보면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에서도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 1연에서 '집의 남쪽과 북쪽은 모두 봄물(舍南舍北皆春水)'이라고 적었는데 실제로 완화초당의 남쪽으로는 완화계(浣花溪)가 S자로 굽이쳐 흐르고 있고 북쪽으로는 집에 인접해서 연못이 여럿 있어서 실제로 집의 남쪽과 북쪽이 모두 온통 물인 것이다. 지금의 완화계(浣花溪)는 강폭이 몇 미터 안 되는 작은 강이지만 당시에는 수량이 제법 많은 편이었는지 두보는 자신이 사는 동네를 묘사한 강촌(江村)이라는 시에서 갈매기가 정겹게 서로 어울리며 날고, 강이 굽이쳐 흐르는 강마을에서 어린 아들은 낚시 바늘을 만드느라 부산을 떤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2연에서 '보이는 것은 갈매기들 뿐'이라는 대목과 3연의 꽃비가 내려서 길을 덮어도 찾아오는 이가 없어서 '꽃잎을 쓸지도 않고 두고 보았다'는 대목에서, 객지에 새로 정착한 지 일 년 남짓한지라 찾아오는 발길이 거의 없어서 적적함을 알 수 있다. 한 편으로 쓸지 않은 '꽃으로 덮인 길(花徑)'이란 시어는 단순히 손님 없는 적적함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초라한 초당의 풍경을 낭만적으로 아름답게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꽃잎이 자연스럽게 쌓인 길은 마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대지가 깔아놓은 화사한 카펫처럼 느껴져, 소박한 환대의 분위기를 한층 밝고 따뜻하게 한다. 또한 쓸지 않은 '꽃으로 덮인 길(花徑)'은 이 시에서는 손님이 올 일이 없어 쓸지 않고 그냥 지켜보았다고 적고 있지만, 떨어진 꽃잎이 가련하여 차마 비질을 하지 못하고 바람이 거두어 갈 때까지 밟을까 봐 조심스레 피해 다녔을 시인의 낭만적이고도 결 고운 심성을 엿보게 한다.


4연에서는 '오늘에야 비로소(始) 쑥대로 대충 엮어서 만든 봉문(蓬門)을 열고 그대를 맞는다'라고 적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적적한 중에 방문한 손님이 무척 반가운 가까운 손님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초당을 짓고 정착한 후 1년이 되도록 두보를 방문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 시에서 두보를 찾아온 손님은, 자주 올 수 있는 청두 인근에 있는 손님은 아니고, 비교적 멀리서 두보를 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으로 생각된다.


빈한한 처지에 급작스럽게 반가운 손님이 왔으니 대접할 것이 변변치 않지만 술상을 차려서 마시는 도중에, 7, 8 연을 보면 옆집 노인을 불러다 함께 마시자고 두보가 제안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8연의 울타리 너머로 부르자(隔籬呼取)는 표현은 이웃 노인(鄰翁)이 매우 가까이 사는, 격식 없이 부를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란 것을 의미한다. 이 이웃은 두보가 일구었던 밭농사를 가르쳐 주고 농촌 생활에 도움을 주던 농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대목은 잠시였지만 황제의 측근에서 간관으로 근무하던 관료였고, 당대의 최고의 시인이자 최상급 지식인이었던 두보가 완화초당에 살면서 스스럼없이 농민들과 어울려 가깝게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하여 그가 민초들의 고난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적었던 많은 시들의 진실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시에서 현감 직에 있던 손님과의 술자리에 '뽕나무 키우고 삼나무 키우는 일(但道桑麻長)' 밖에 모르는 촌부를 초대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은, 당시 자신의 시들이 지인들을 통하여 지식인 층에 널리 읽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두보가 이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두보의 일생을 살펴보면 실로 되는 일 없이 늘 좌절할 상황에 빠져 사는 세월이 많았고, 정처 없이 표박하는 삶이 오래 이어졌다. 아픔과 눈물의 세월을 살면서도 그의 시에서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웃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배려와 환대를 읽을 수 있다. 쓰촨의 청두에 있는 완화초당(또는 두보초당)을 찾는 발길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그의 시가 널리 읽히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각박하고 우리 마음에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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