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夜喜雨(喜雨와 希雨)/ 杜甫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 때를 알아 내리니
當春及發生 [당춘급발생] 봄 맞아 드디어 싹을 틔우네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살포시 비 내리는 밤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가랑비 소리 없이 온 세상 적시고
野徑雲倶黒 [야경운구흑] 들길도 구름도 모두 어둠에 싸여 있는데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강가의 배에 등불만 홀로 반짝이네.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새벽에 비에 흠뻑 젖은 붉은 꽃들 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도 꽃 무겁게 드리워 있겠네
이 시는 두보가 청두의 완화초당에 살 때 쓴 시로 두보가 남긴 1,400여 편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 우리에게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그러하듯, 중국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그 첫 구절을 읊을 수 있을 만큼 친근한 국민 시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봄비를 통하여 자연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지만 두보의 나라에 대한 우려와 근심을 읽을 수 있는 시이기도 하다.
당시 두보가 정착한 촉(쓰촨) 지방은 전란이 비껴간 중국 남서부 지방이어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중국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관중과 중원은 전란이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라 이곳저곳에서도 기근과 크고 작은 민란으로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가의 도를 공부한 선비로서 정치에 참여하여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려 백성을 돌보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고 살아온 두보로서는, 천신만고 끝에 촉지방에까지 피란을 왔지만 전란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백성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두보는 흙을 일구는 농부로 살아가면서도, 가슴속에는 천하를 근심하는 유생(儒生)의 뜨거운 심장을 버리지 못했다. 이 시는 농부의 마음과 유생의 마음이 교차하여 표현되고 있는 시로 읽힌다.
1연의 好雨知時節은 '비가 고맙게도 때를 알아서 내려준다'는 의미로 비를 의인화하여 수동적으로 비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농부의 입장에서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강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두보는 청두에 살 때, 낮은 임시 지방 관직인 검교공부원 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제수받아서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주로 지인들의 도움과 손수 농사를 지어서 얻은 수확으로 생활했었다. 따라서 때맞추어 내려주는 비의 고마움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시에서는 고마운 비를 好雨라는 시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2연의 當春及發生은 이런 고마운 비로 인하여 발생하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 '봄 맞아 만물이 소생하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너무 포괄적이고 及자가 내포하고 있는 동적 이미지를 살리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관념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하룻밤 비에 싹이 눈앞에서 틀 일도 없는 것이지만 농부의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구체화하여 及發生을 조금 어색하지만 '드디어 싹을 틔우네' 정도로 생동감 있게 번역하였다.
3 연부터 6연까지는 봄비가 내리는 밤의 풍경을 실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간간이 밤바람이 살며시 불어오는 가운데 바람 타고 살며시 볼을 간지럽히며 축복처럼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두보는 넓지 않지만 자신이 공들여 갈아서 씨를 뿌린 밭에서 자라는, 어린 자식들처럼 마음이 가고 정이 가는 작물들이 흠뻑 비를 맞는 것에 감사하였을 것이다. 5연의 '들길(野徑)'이란 시어는 두보가 집 처마 밑이나 집 앞에서만 밤비가 내리는 것을 본 것이 아니고 비교적 멀리까지 오래 빗속을 걸으며 반가운 비를 온몸으로 만끽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5연에서 묘사되고 있는 하늘의 먹구름과 어둠에 싸인 들길, 칠흑 같은 밤의 강은 암담한 시국을 떠올리게 한다. 촉 땅 바깥은 아직도 혼란이 계속되고 백성들은 유리방황하며 굶주리고 있었다. 어둠 속을 걸으며 두보는 징집된 농민들이 병사가 되어 어둠 속에서도 전투를 위해 비를 맞으며 밤행군을 하거나 굶주리며 야전에서 노숙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떠올리며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의 무게를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들길을 삼킨 먹구름과 칠흑 같은 어둠은, 어쩌면 전란의 불길이 꺼지지 않은 당나라의 암담한 시국을 투사한 시인의 내면풍경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6연에 묘사한 어두운 밤, 완화계에 떠 있는 배에서 '홀로 반짝이는 불빛(火獨明)'은 두보가 마음으로 소원하고 바라는, 백성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좋은 비(好雨)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평화롭게 농사에 전념하며 살 수 있는 좋은 시절에 대한 희구(希求)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6연과 7연의 사이의 길었던 밤 동안 침상의 두보는, 때맞추어 내려준 비에 대한 감사와 어두운 밤길에서 머리를 들고일어나 가슴속을 채우던 나라의 현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복잡한 머리로 인해서 뒤척이며 잠 못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벽이 되어 창밖이 밝아오자, 밖으로 나와서 밭도 돌아보고 집 주변을 거닐며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은 들판과 꽃들을 보면서(曉看紅濕處) 풍성한 결실을 예감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 같다(7연). 여기서 紅濕處에 대한 해석에 대한 의견은 둘로 갈린다. 조선조의 두시언해를 비롯한 여러 번역들에서는 이를 '비에 흠뻑 젖어 붉어진 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紅을 꽃으로 보고 紅濕處를 '붉은 꽃이 비에 흠뻑 젖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다. 이렇게 보는 것은 8연에서 나오는 '비를 흠뻑 맞아 무거워진 꽃(花重)'과 연계하여 더 설득력을 갖는다.
紅濕處는 밤새 내린 비로 인한 축복을 상징하는 구절이다. 중국 문학에서는 붉은 꽃은 겨울을 이겨낸 생명력과 활력, 풍요, 열정, 여성미(붉은 입술, 붉은 볼) 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붉은 꽃(紅)은 쓰촨 지방에 많이 피는 동백, 영산홍, 해당화 등으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복숭아꽃으로 보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아침에 완화초당 주변에 함빡 피어 생명력과 생산을 상징하는 붉은 꽃이 비까지 맞아 더 붉어진 모습은 자연의 축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를 보고 두보는 8연에서 '금관성에도 붉은 꽃에 밤새 흠뻑 비가 내려 더 붉어진 꽃들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을 것이다(花重錦官城)'라고 이 축복과 은총을 금관성으로까지 확대한다. 금관성(錦官城)은 청두의 옛 지명으로 여기에서는 쓰촨 지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보의 상상의 나래가 금관성에까지만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에서 두보의 슬픔을 엿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8연의 무겁게 고개 숙인 꽃(花重)은 기쁨과 교차하며 두보의 가슴을 누르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암시하는 듯하기도 하다. 고대하던 봄밤의 기쁜 비(春夜喜雨)를 접하고 마냥 행복한 농부였다면 "온 세상(天下나 萬方이나 또는 四海나 海內外)까지 이렇게 은총이 미쳤을 것 같다고 자신의 기쁨을 마음껏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보는 금관성 밖 세상의 현실의 무게 앞에서 기쁨의 나래를 오직 금관성으로 밖에 확장시키지 못하고, 새벽에 본 붉은 꽃이 흠뻑 젖은 모습에서 기쁨과 비애를 함께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두보는 밤새 내린 기쁜 비(喜雨) 앞에서 언젠가 온 세상에 내리는 축복 같은 비를 소원해(希雨) 보지 않았을까?
두보는 평생 유가의 가르침의 핵심 덕목인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닦은 후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편하게 함)을 실천하기 위해서 관직에 나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혼란한 시대는 끝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고통받는 백성의 곁으로 내려와 그들과 함께 울었고, 그들의 눈물과 고통을 시로 기록하며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데 힘썼다. 이토록 평생 백성을 향한 사랑과 눈물 어린 삶을 살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시를 쓰는 성인, 즉 시성(詩聖)이라 부르며 추앙했다. 마치 봄비가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듯, 천수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의 시는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촉촉이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며 우리 곁에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