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安秋望(하늘엔 지는 별빛 몇 개)/ 趙嘏
雲物淒清拂曙流 [운물처청불서류] 새벽 운무 처량하게 흐르며 덮혀가는데
漢家宮闕動高秋 [한가궁궐동고추] 높은 가을 하늘 밑 한나라 궁궐들 아련히 잠겨드는구나.
殘星幾點雁橫塞 [잔성기점안횡새] 하늘엔 지는 별빛 몇 개, 기러기는 성곽 가로질러 날아가는데
長笛一聲人倚樓 [장적일성인기루] 한 줄기 피리 소리 들으며 누각에 기대어 선 사람......
紫艷半開籬菊靜 [자염반개리국정] 울타리 곁에는 소리 없이 반쯤 핀 보라빛 고운 국화
紅衣落盡渚蓮愁 [홍의낙진저연수] 꽃잎 져버린 물가의 홍연(紅蓮)은 시름에 겨운 듯하네.
鱸魚正美不歸去 [노어정미불귀거] (고향엔) 농어가 맛있는 철인데도 돌아가지 못하고
空戴南冠學楚囚 [공대남관학초인] 부질없이 남관을 쓰고 초나라 포로(鐘儀)처럼 살아가네.
조하는 초주(楚州) 산양현(山陽縣), 즉 오늘날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시(淮安市) 출신으로 장안에 와서 여러 번의 과거에 응시했지만 계속 낙방하였고, 여러 인맥을 만들며 관직을 구하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나이는 30대 중반을 넘고있었고, 오랜 객지 생활에 지쳤지만 여러가지 형편으로 다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하는 이러한 가운데 고향을 그리는 곤궁한 나그네인 자신의 상황과 정서를 이 시를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시간적 흐름을 기준으로 둘로 나뉘어 전반부(1-4연)에서는 장안의 새벽 풍경에서 느껴지는 비감한 이미지들을 통하여 애수를 묘사하고, 후반부(5-8연)에서는 동이 튼 후의 풍경과 전고(典故, 옛 고사를 인용하는 기법)들을 동원하여 시인의 애환과 향수를 그리고 있다.
1연의 불서(拂曙)는 해가 뜨기 직전 동틀 무렵의 새벽을 지칭하는 시어로 3연의 잔성(殘星)과 연계하여 아직도 새벽별이 드문드문 보이는 어둠이 가시기 전임을 묘사하고 있다. 대체로 고독과 향수를 묘사하고 있는 시는 가을 저녁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러기가 등장한다면 노을을 배경으로 하여 날아가는 것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새벽으로 기러기가 새벽 하늘을 날아 남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3연) 점이 특이하다.
새벽은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지만, 가을은 한 해가 저물어 가기 시작하는 철이다. 시에서는 이 모순된 시작과 끝의 조합으로 시인이 처한 상황을 부각시켜서 묘사하고 있다. 새벽이란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한 해가 다 끝나가는 계절인 가을의 새벽은 더이상 새로운 것을 기대하거나 추구할 수 없이, 정리와 마감을 서둘러야 하는 하루의 시작일 뿐이다. 이룬 것 없이 청춘의 시간을 보내버린 시인의 일생의 계절은 가을로 접어드는데 새로 무엇인가를 꿈꾸며 기대해야 하는 아침을 맞는 시안의 처지가 애처롭다.
객지에서 허송세월하다가 인생이 끝나가는 느낌 속에 혼재된 막연한 기대와 불안을, 높은 가을 새벽 하늘(高秋) 아래 운무에 휩싸이며 낮게 침몰하는 듯 보이는 궁궐을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1,2연). 차갑고 맑은(淒清) 가을 새벽 공기의 청량함은 '정신을 은화(銀貨)처럼 맑게' 하여 고독과 외로움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한다. 시인은 모두가 잠든 이 고요한 시간에 잠 못 들고 홀로 일어나, 세상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채 자신의 내면의 고독과 대면하고 있다.
2연의 '한나라 궁궐(漢家宮闕)'은 말기적 시대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 시어이다. 당나라는 한나라의 계승자임을 자처했기에 '한가궁궐'이란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였지만, 여기서는 멸망한 옛 왕조를 연상시키며 말기적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3연의 '지는 별빛(殘星)'은 맑은 가을 밤하늘에 밤새 펼쳐졌던 별들의 향연이 끝나고 모두가 떠나버린 파장된 잔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시어이다. 이런 하늘을 배경 삼아 기러기는 장안의 성벽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雁橫塞). 계절을 따라 남으로 자유롭게 성벽을 넘어서 날아가는 자들(기러기)과 여러 가지 여건상 성 안에 갖힌 것처럼 떠날 수 없는 자(시인, 누각에 기대어 서 있는 사람)의 대비가 떠날 수 없는 자의 슬픔을 도드라지게 한다.
4연의 여명 속에서 들려와서 '남의 애를 끊는' 한 줄기 피리 소리는 타향에 남은 나그네의 애수를 더욱 고조시킨다. 여기에서의 피리 소리(長笛一聲)는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한나라 군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 어둠을 뚫고 들려와서 초나라 군사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마음을 흔들어 놓던 초나라의 구슬픈 곡조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8연의 초나라 포로(楚囚)와도 연계된 시어처럼 느껴진다.
1연에서 4연까지 묘사적으로 새벽 애상을 펼쳐 보여준 시인은 화룡점정처럼 4연의 마지막에, 누각에 기대어 서서 기러기 날아가는 새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고독한 남자(人倚樓)를 그려넣어서 그림을 완성한다. 당시에 이 대목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유명해져서 동시대의 유명시인 두목(杜牧)은 유명한 '누각에 기대어 선 남자(人倚樓)가 나오는 시'를 쓴 사람이라고 조하에게 조의루(趙倚樓)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5, 6연은 동이 튼 후에 보이는 꽃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시인의 상황과 정서를 보여준다. 5연의 울타리 곁에 반쯤 핀 국화에서는 시인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국화 꽃의 아름답고 농염한 보랏빛(紫艷)은 여러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스러지지 않고 여전한 시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쯤만 피어(半開) 마음껏 만개하지 못했다는 것은 관직을 구하여 오래 노력했지만 아직 달성하지 못한 시인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6연의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 홍연은 시인이 느끼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시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문학에서 붉은 꽃은 번영, 열정, 생산, 꽃다운 여인 등을 상징하는 것이다. 붉은 꽃잎이 다 져버린 홍연은 이룬 것 없이 흘러간 청춘의 시간들로 인해서 이제는 희박해져 가는 입신의 가능성을 한탄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더불어 시인이 사는 시대인 전성기를 지나 퇴락해 가는 당나라의 말기적 시대 분위기를 묘사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국화(5연)와 홍연(6연)의 배열 순서로 보면 이 시에서는 비관적인 정서를 더 강조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7연의 고향에는 농어가 맛있는 철(鱸魚正美)이란 구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매우 유명한 전고(典故)로, 서진(西晉) 시대의 장한(張翰)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장한은 서진시대의 관료이자 문인이었다. 낙양에서 관료로 지내던 어느날, 일에 지치고 고향의 음식들 특히 지방 특산물로 유명한 농어회(鱸魚膾)가 그리워져서, '인생은 뜻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귀중한 것이지, 어찌 객지에서 벼슬하며 명예와 관직을 구하며 지내는 게 옳은 것인가!'하고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인 오군(吳郡, 지금의 쑤저우蘇州 일대)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고향의 농어 맛'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벼슬을 버린다는 상징으로 정착되어 여러 문학 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고(典故)가 되었다. 시인의 고향인 초주(楚州) 산양현(山陽縣)도 수로가 발달하여 수산물이 풍부하고 농어로 유명한 고장에 인접해 있었기에, 여기에서 장한의 전고 (典故)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도 돌아가지 못하는(不歸去) 처지를 한탄하듯 그리고 있다.
8연의 남관 쓰고 초나라 포로처럼 살아간다(戴南冠學楚囚)는 표현도 전고(典故)가 있는 것이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음악가 종의(鐘儀)가 전쟁 중에 정(鄭)나라에 포로로 잡혔지만, 전리품처럼 강대국 진(晉)나라에 선물로 바쳐졌다. 종의는 감옥에 갖혀서 고국의 옷을 입고 고국의 관(南冠)을 쓰고, 고국 초나라의 음악을 늘 연주하며 고국을 사랑하는 우국충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진나라 경공(景公)이 감동하여 그를 고국인 초나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문학에서 '초나라 포로(楚囚)' 또는 남관(南冠)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 우국충정, 또는 절개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초나라 포로의 전고를 사용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가슴 가득 안은 채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조하의 고향, 초주(楚州) 산양현(山陽縣)이 옛 초나라 땅이고, 농어가 맛있는 고장이라 7연과 8연에 사용된 전고들이 모두 시인의 고향 초 땅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 전고가 더욱 적절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4연의 사면초가를 떠올리게 하는 '한 가락 피리 소리(長笛一聲)'와도 연관된 것들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고독한 나그네의 슬픔을 아름다운 가을 새벽 풍경으로 승화시킨 당나라 후기의 대표작이다. 당시 한시는 오늘날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처럼 자신을 표현하고 알리는 소통의 창구이기도 했다. 조하의 이 시는 당대 최고의 시인 두목의 극찬을 받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를 장안의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그 덕분인지 조하는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마침내 염원하던 관직(위남현위)에 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