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가로움과 낭만의 절정

by 최자현


淡泊(작은 배 띄우고)/ 丁若鏞


淡泊爲歡一事無 [담박위환일사무] 담박함을 즐거움 삼으니, 근심할 일 없구나.
異鄕生理未全孤 [이향생리미전고] 타향살이도 아주 외롭지만은 않네.
客來花下攜詩卷 [객래화하계시권] 손님 오면 꽃 그늘 아래서 함께 시를 나누기도 하고......
僧去牀間落念珠 [승거상간낙염주] 스님 가신 자리에는 염주 한 줄 떨어져 있네.
菜莢日高蜂正沸 [채협일고봉정비] 채마밭에 해 높아 벌들은 분주히 날고
麥芒風煖雉相呼 [맥망풍난치상호] 보리 꺼끄러기에 봄바람 부니 꿩들은 서로 부르네.
偶然橋上逢隣叟 [우연교상봉린수] 우연히 다리 위에서 이웃 노인 만나
約共扁舟倒百壺 [약공편주도백호] 작은 배 띄워 놓고 취하도록 마셔보자 약속했지.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지은 시이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감싸 주던 주변인들과 봄 추수기의 강진의 자연 환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묘사하고 있는 가운데 언뜻언뜻 다산의 고뇌와 외로움이 엿보인다.


1연의 '근심할 일이 없다( 一事無)'는 표현은 다산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것이어서 근심할 일은 잊고 살자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처럼 느껴진다. 다산은 신유박해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였다. 옥에 갖혀서 참수형을 기다리다가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조선 시대에 정치범은 역모죄가 아니면 처음부터 사형에 처해지는 일은 드물고, 먼저 유배형에 처하고 정치적 여건을 보아 사후에 사약(賜藥)을 내리는 것이 보통의 순서였다. 따라서 가볍지 않은 죄로 유배형을 받은 정치범들은 살았으되 산 목숨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1연의 '담박함을 즐거움으로 삼으니 근심할 일 없구나'라고 쓴 것으로 미루어 보면 죽음의 공포에 늘 짓눌려 지내던 다산이 이 시를 지을 무렵에는 이를 어느 정도 떨쳐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연은 남도 끝자락까지 유배왔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외롭지만은 않아 지낼만하다는 표현이다. 강진에는 다산의 외가 해남 윤씨의 집성촌도 있었기에 문중에서는 유배 온 다산을 여러모로 돌보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었던 다산은 강진의 지식인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기에 다산으로서는 다른 유배지에 간 것보다는 괴롭거나 외롭지만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다산은 '전적으로 외롭지만은 않다(未全孤)'고 적고 있어서 가족과 친우들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엿보게 한다.


3연과 4연은 강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묘사하고 있다. 다산은 유배 초기부터 지역 학동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점차 젊은 선비들과 아전 등 다산을 따르던 이들을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삼아 다산학단(茶山學團)이란 학문 공동체를 결성하여 제자들과 함께 연구하며 이들의 도움으로 집필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 이 시에서는 방문객이 있으면 꽃그늘 아래서 함께 시를 나누기도 한다고 비교적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산이 강진에서 교류하던 인사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다산 초당 인근의 백련사의 혜장(惠藏) 선사이다. 혜장은 당시 유명했던 학승으로 유학과 주역(周易) 등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어, 다산과 학문적인 토론을 나누며 교류하였다. 4연의 스님께서 잊고 가신 염주는 근엄하신 스님의 인간적인 면이 보여서 빙그레 미소 짓게 하며 이 시에 따스함을 더해준다.


5연과 6연은 강진의 봄 풍경 중 일부를 묘사하는 구절들로 다산의 세밀한 관찰력을 엿보게 한다. 5연에 해가 높이 뜨는(日高) 정오 무렵에 채마밭에 벌이 여러 마리 집중적으로 몰려와 꿀과 꽃가루를 따기 위해 잉잉거리는 모습을 다산은 '끓고 있다(沸)고 묘사하고 있다. 벌이 주로 한낮에 분주하게 일을 하는 이유는 기온이 높을 때 꿀의 점도가 낮고, 꽃가루도 이슬 등에서 공급된 수분이 말라서 채취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6연에서는 '보리밭에 바람이 분다'라고 적기 보다 '보리 꺼끄러기(麥芒)에 따스한 바람이 분다'고 구체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꺼끄러기는 보리나 밀 등의 맥류의 곡물의 이삭에 달린 긴 털이다. 이는 이삭이 패기 시작하면 생겨나서 곡물이 여물며 점점 길어지고 단단해 진다. 따라서 보리 꺼끄러기(麥芒)는 구체적으로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시어이다. 보리 이삭에 꺼끄러기가 확연히 보이는 시기는 보리가 영그는 시기로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이다. 이 시기는 꿩의 교미기이라서 숫꿩이 암꿩을 유혹하느라 꿩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리는 시기이다. 다산은 보리 이삭이 패어 영그는 시기가 꿩의 교미기인 점을 염두에 두었었기에, '보리 꺼끄러기에 따스한 바람이 부니 꿩이 서로 부른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해가 높이 떠서 벌이 '끓고 있다(沸)고 묘사한 것과 함께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실학자이자 자산어보를 저술한 생물학자였던,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다.


7연과 8연의 묘사는 한가로움과 낭만의 절정이다. 이 구절들은, 노을 비끼는 다리 위에서 마주친 두 사람이 술 항아리를 가득 싣은 배를 띄우고 이전처럼 다시 한 번 바다에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면서 달이 뜰 때까지 마음껏 취해보자고 약속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들 중 하나를 소개한 것일 수도 있지만, 2연에서 엿볼 수 있었던 다산의 외로움과 상응하는 것으로, 다산의 깊은 정신적 교류에 대한 갈망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남의 장소인 다리(橋)라는 시어는 끊어진 두 지경을 연결해 주는 구조물로서 만남을 더 극적이며 반갑게 만들어 주는 요소이다. 단절되고 고립된 유배지 강진에서 다산이 갈망하던 것은 이런 "다리 위의 만남(연결과 상봉)"이 아니었을까? 이웃의 노인(隣叟)은 외롭던 다산이 마음으로 늘 그리워하던 지음(知音)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18년간의 긴 유배 생활(대부분 강진에서)을 통해, 조정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오히려 학문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남긴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은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혜의 보고가 되었으며, 우리 문화와 사상사에 지대(至大)한 공헌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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