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꽃은 불타는 듯 하구나

by 최자현


絶句二首·其二(어느 날에나 돌아갈 수 있을까?) / 杜甫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강물 푸르니 그 위를 나는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燃 [산청화욕연] 산이 푸르니 꽃은 불타는 듯 하구나.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올봄도 또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어느 날에나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시는 두보의 성도(成都) 시절의 마지막 시기(764년~765년경)에 쓴 시이다. 절구란 제목의 두 수의 시 중에 둘째 시이다. 전란과 기근을 피하여 촉 지방으로 피난 온 두보는 성도에서 든든한 후원자였던 절도사 엄무(嚴武)와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비교적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엄무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신변이 불안해졌다. 게다가 검남서천절도사 서지후(徐知道)의 반란 등으로 두보 가족은 성도의 완화초당에 더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 되었다. 이 시는 이러한 가운데 봄을 맞아, 갈 곳 없는 나그네의 애닯픈 마음을 담아서 쓴 시이다.


<눈부신 풍경 속의 고독>


1연은 완화초당 앞의 완화계에서 날고 있는 갈매기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보의 시 <객지>에서는 '보이는 건 날마다 떼 지어 오는 갈매기들뿐이라오(但見群鷗日日來)'라고 적고 있고, <강촌>에서는 '물 위의 갈매기는 서로 어울려 나네(相親相近水中鷗)'라고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


2연에서는 완화초당 근처에서 봄꽃이 만발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불타는 듯 붉게 핀 꽃(花欲燃)은 완화초당 주변에 심은 해당화로 추정된다. 중국 해당화는 장미 속인 우리 해당화와 달리 사과나무 속의 화초로 들꽃이라기 보다는 정원수처럼 심고 가꾸는 꽃이다. 이 구절은 푸른 산에 붉은 꽃이 만발한 것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푸른산을 뒷배경으로 집 주위의 붉은 꽃이 만개하는 모습을 보고 적은 구절로 보인다. 불타는 듯 피어난 붉은 꽃은 봄의 절정을 묘사한 구절이다.


옥빛 강물(江碧)과 그 위를 나는 눈이 시리도록 흰 새, 푸른빛(靑) 먼산을 배경으로 불타는 듯 피어나는 붉은 꽃의 대비가 뚜렷하여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움은 두보에게 비감함을 느끼게 하고 한탄을 자아낸다(3, 4연). 이렇듯 아름다운 풍경을 통하여 비감한 정서를 묘사하는(以樂景寫哀情) 것은 중국 한시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으로 슬픈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화창한 봄날, 꽃들은 다투어 흐드러지게 피고 흰 새는 자유롭고 한가하게 물 위를 나는데 이러한 봄 풍경 속에서 어우러져 봄을 마음껏 즐길 수 없고 떠나야만 하는 불안정한 신세의 떠돌이 나그네의 슬픔이 애처롭다. 성대한 봄의 잔치에 참여하여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문 밖에서 지나치듯 구경만 할 수 밖에 없는 국외자의 서러운 심정이 느껴진다. 풍경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 풍경 속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이 더 짙어진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 갈 곳 없는 나그네>


3연의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는 '이번 봄도 이렇게 또 지나가네'라는 한탄의 구절이다. 봄의 절정(1, 2연)이 지나고 봄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덧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상이 엿보인다. 두보는 시 <曲江二首> 중 제1수에서


"꽃잎 하나 떨어져도 가는 봄 안타까운데 (一片花飛減卻春),

바람에 무수히 날리는 꽃잎들 가슴 저미네 (風飄萬點正愁人)"


라고 노래한 바 있다. 3연의 가는 봄을 보면서 한 해가 다 가고만 것 같은 허무함을 느끼는 정서는 김영랑의 싯구 중에서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는 싯구와 정서적으로 닮아 있다. 봄의 끝자락, 특히 꽃이 지는 모습은 한 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사라짐과 동시에 인생의 짧음과 청춘의 소멸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시적 소재이다. 타향에서 임시로 살면서 한 해 한 해 덧없이 흘러간 세월에 대한 한탄임과 동시에 이룬 것 없이 흘려보낸 청춘의 날들에 대한 애상이 느껴진다. 화려한 봄의 정점에서 느끼는 이 허무는, 타향에서 늙어가는 시인의 쇠락한 처지와 대비되어 더욱 시리고 아프게 다가온다.


4연은 결구로서 체념의 정서를 엿보게 한다. 두보는 이 당시 이미 쉰을 넘긴 나이에 건강이 몹시 나빠지고 관절염으로 걷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마음 속에서 늘 고향인 낙양과 젊은 날 꿈을 키우던 장안을 그리워 하고 있지만 돌아갈 경제적 여유도 없고, 신체적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누가 잡는 것도 아닌데 떠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떠날 수도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적는 마음에서 짙은 절망과 비애가 느껴진다.



<장강의 물결 따라 흘러내려간 유랑의 길>


결국 두보는 765년 상반기에 배를 구하여 정들었던 청두를 떠났다. 관절염으로 도보 여행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배를 구해 길을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두보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존경받는 시인이자 요즘으로 치면 인플루언서였기에 후원자로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초청하는 곳을 우선적인 목적지로 삼고 출발한 것 같다. 장강의 물결을 타고 떠내려 가다가 기주(夔州, 지금의 충칭 인근)에 도착하여 약 2년 정도 머무르며 비교적 안정된 시간을 보내며 성도에서처럼 많은 시를 썼다. 기주 시절의 시들은 예술적 완성도가 절정에 달해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시기에 쓴 많은 시에서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何日問家依)”라는 한탄을 쏟아내는 구절이 반복된다. 만년으로 갈수록 고향 낙양과 젊은 날 지내던 장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졌던 것 같다. 이러한 회귀본능에서 나오는 향수는 단지 고향이란 장소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보냈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년간의 안정된 기주 생활을 뒤로하고 두보가 탄 배는 삼협을 지나 장강의 물결을 따라 떠내려 갔다. 삼협은 지금은 산샤댐이 완공되며 물이 차서 강폭이 넓어지고 험하지 않게 변했지만 당시만해도 삼협은 물살이 급하고 수십 길에 달하는 계곡 사이를 흐르는 험한 물길이었다. 강에는 진흙빛 물이 때로는 소용돌이 치며 배를 뒤집을 듯 흔들어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지만, 위를 올려다 보면 쪽빛 강물이 흐르고 그 위로 구름이 몇 점 떠가기도 했을 것이다. 밤이면 어느 인적없는 강기슭에 배를 매고 잠드는 밤에는 좁다란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하늘가로 이따금 별똥별이 떨어졌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선 길은 아닌, 그저 강을 따라 정청없이 흘러내려 가는 서글픈 유랑의 시간은 약 5년간 이어졌다. 두보가 탄 배는 770년 겨울 후난성 악양의 동정호 부근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歸年)을 애타게 그리던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상들이 돌아간 곳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5년간의 유랑 생활 동안 거의 배안에서 지내다 배 안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향년 5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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