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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19.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2

절대음감의 음치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그날의 연습은 기존의 곡들을 반복 연습하는 것으로 끝 마쳤다. 약간의 뉘앙스를 달리하면서 작은 표현 단위인 아티큘레이션을 조정해 같은 곡이지만 다르게 부를 수 있도록 했다. 무난한 연습이었다. 반음이 안 되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지속적으로 귀를 괴롭히긴 했지만. 단장을 맡고 있는 상진에게 연습을 한 번 더하자고 먼저 제안을 했다. 물론 제안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피아노 조율을 해주세요. 되도록 표준음으로 조율해달라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상진은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했고 옆에 있던 주혁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래된 피아노예요. 총장력이 20톤이 넘으니 조율사님이 그렇게 음을 낮춰 조율하신 거 같은데요. 혹시 피아노에 무리라도 가면 어쩌지요?"

"큰 무리는 없을 거지만 피아노가 걱정되신다면 다음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말하고 상진에게는 다음 연습 후 지휘자 수락 여부를 결정하겠노라 말했다. 


일주일 후, 연습 직전에 조율을 하기로 해서 미리 연습실에 도착했다. 조율사는 얼핏 보면 60대 노년의 초입에 든 신사로 보였지만 사실 80이 다 된 노인이었다. 매우 솜씨가 좋아 유명한 대학 몇 군데와 콘서트 홀의 전속 조율사로 일했다고 주혁이 귀띔해 주었다. 이제는 근육의 힘이 좀 빠져서 마음에 드는 악기만 조율한다고 했다. 슈타인웨이 피아노는 부품을 계속 구할 수 있는 피아노로 유명하다. 미국에서는 오래된 슈타인웨이를 값싸게 구매해서 수리하고 광을 내서는 다시 파는 사업이 성업 중일 정도다. 그러니 이 악기는 조율사 그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 터다. 쉽게 만날 수 없는 현대 피아노의 명품. 그렇다 해도 이 피아노는 20톤 이상의 장력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주물로 된 틀을 사용한다. 그래서 무거운 이유도 있다. 어쩌면 아직 괜찮은데도 조율사의 마음이 악기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다시 목 풀기다. 연습 전 반주자는 매우 신기하다며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피아노 여기저기를 만진다. 처음 자동차를 샀을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는 스크래치를 발견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더랬다.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상처처럼 결국 무덤덤해졌지만. 

"우와, 지난번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피아노 건반이 진짜 상아로 된 거 같아요." 그렇다. 조명을 밝게 밝힌 탓이었는지 건반은 약간 누런 아이보리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그 소리에만 신경이 쓰인다. 지난 연습에는 그 소리를 찾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소리를 내 의지로 조정, 조종, 아니 조절할 수 있을까.


다 같이 같은 소리를 내도록 한다. 나의 왼손은 항상 그렇듯이 공중을 날고 있다. 귀는 매우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보통의 우리는 귀로 듣는 소리를 그대로 낼 수 있다. 귀로 듣는 소리를 따라 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통 음치라고 불린다. 그런데 그런 음치는 일정한 음역대 이상을 내지 못해서 귀를 막고 내 맘대로 목소리를 내는 음치가 있는 반면, 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음 구별이 되지 않아 생기는 음치가 있다. 보통 전자는 훈련으로 수정 가능하고 비교적 쉽게, 극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연습 후 일주일간 나는 다른 가설을 세워보았다. 그 소리는 어쩌면 절대음감을 가진 음치의 소리일지도 모른다고. 


"지휘자님, 그 소리 없어졌어요!"

그렇다 테너에 있던 그 하나의 소리, 작지만 분명하게 모두가 내는 소리보다 조금 높은 소리. 혼자 노래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그 소리. 그러나 우리는 함께 노래하는 합창이다. 같은 파트에서 다른 소리가 나면 청중의 귀는 '틀렸다'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 목소리는 어쩌면 낼 수 있는 음이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는지 모른다. 그것도 표준음에 가깝게. 자신의 절대음감으로 노래했지만 주변의 소리와 어울리도록 조절할 능력은 아직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는 절대음감을 가진 음치였을지 모른다. 


분명 그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다시 둘러본다. 그 소리를 내고 있던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본다. 아마추어 합창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음악의 지도라 해도 지적의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물풍선 멘털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살짝이라도 찔리게 되면 터진다. 연습 중의 지적은 날카롭고 항상 아프다. 현대 지휘자의 시초라 불리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연습에서 틀린 연주자를 지적하면서 오늘이 몇 일이냐고 묻곤 '오늘이 당신의 음악이 죽은 날이야'라는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프로의 세계는 그렇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다르다. 어떠한 실수도 어떠한 잘못도 용서받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말이다. 


상진의 눈이 반짝거린다. 눈만 반짝거리는 것이 아니라 입꼬리도 살짝 들려있다. 그와 나는 긍정의 눈빛을 교환한다. 상진은 음악적 재능이 분명히 구별되는 사람이었다. 금요일의 합창단에서도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여러 의문이 들지만 사실 상진과 나는 이제 두서너 달 정도의 시간만을 지냈을 뿐이다. 나는 다시 귀를 날카롭게 하고 대원들과 눈을 맞춘다. 합창지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 눈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합창단은 관객과 눈이 마주치고 지휘자는 합창단의 눈을 통해 관객을 본다. 어쩌다 보니, 문제의 대원과도 눈이 마주친다. 그는 매우 날렵한 몸을 가졌다. 크지 않은 키이지만 오똑한 코에 얇은 눈 그리고 예리한 각을 지닌 얼굴을 하고 있다. 나중에 주혁은 그가 프로 골프선수라고 알려줬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함께 부르는 노래를 좋아하지만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어서 매번 악보를 외워야 한다고 했다. 


연습곡으로 돌입한다. 가요 편곡이다.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이문세의 노래였던가? 신나는 노래이지만 마구 질러서는 안 된다. 나의 오른손이 신호를 준다. 줄이라고. 그리곤 이내 다른 신호를 준다. '이때닷! 모두 닻을 올리고 빠른 속도로!' 눈이 마주치고 절정으로 달린다. 달리지만 다 같이 달린다. 경수의 눈이 반짝거리는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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