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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19.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3

두 번째 조건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네 번째 합창단을 맡기로 했다. 일주일 중 가장 고단한 월요일 저녁에 연습하기로 했다. 상진은 나에게 특별히 요구할 것이 있냐고 다시 묻는다. 나는 여전히 왼손 지휘를 고집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건이 없다. 아참, 금요일의 반주자를 채용하기로 했다. 반주자 역시 반가워했다. 반주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연주자의 길이 아닌 음악 교육의 길을 선택하고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는 않아도 나와 음악을 할 때 사람이 살아난다. 악기 표현에 있어서 세밀한 표현을 요구할라치면 벌써 알아듣고 해내려고 한다. 나의 의도를 설명할 때도 바로 '아하!'라는 감탄사와 함께 악보에 적고 씩 웃는다. 나는 짓궂은 농담으로 우리 반주자가 나를 괴롭히던 일 년 여자 선배와 닮았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로 선배에게 이런 거 시킬 거냐고 되받아치기 일쑤다. 



화요일 합창단의 누님들은 여전하시다. 화요일 연습 후 식사를 하러 갔다. 오리백숙. 우리 나이 때는 남의 입에 문 것도 빼먹어야 한다며 오리가 그렇게 좋다고, 두꺼운 누룽지가 국물 위에 덮여있는 오리백숙을 먹으러 왔다. 제일 큰 누님은 집에서 직접 만든 묵을 꺼낸다. 세 덩어리다. 면처럼 잘게 잘라서 김이랑 섞어 먹으라고 친절하게 설명하신다. 합창단의 실질적 넘버 투인 다른 누님은 자꾸 봉투를 내민다. 마음이 고마운데 손이 부끄러워 한사코 거절하지만 집에 와보니 뒷주머니에 결국 꽂혀 있다. 내가 한 일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칭찬받아야 한다. 함께 모여 연습하고 준비해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그들이 이 사회를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그들만의 소리를 만든다. 비록 평균 연령은 60세를 훨씬 넘고 목소리는 안정되어 있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복잡한 악보는 실행 불가능에, 외워서 노래하자고, 그래야 춤도 춘다고 할라치면 너도 우리 나이 되어 봐라 어제 죽은 남편 이름도 까먹는다고 면박이다. 그래도 이 정도도 안 하면 사람들 앞에서 창피할 거라고 기왕 하는 거 멋있게 하자고 들들 볶아 외우게 하고 손이라도 한번 다리라도 한번 굽히고 펴고를 만들어본다. 그렇게 고군분투해서 뭐 하나 만들어 놓고 한번 써먹으면 그래도 뭐하나 남는 것 같다. 그렇게 치고 박고를 2년 동안 했더니 사랑해주신다. 남동생처럼, 아들처럼. 



경수 씨는 매우 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다. 프로골퍼라지만 아직 우승의 경력은 없고 준우승만 한 번인 만년 유망주라고 했다. 소리의 질이 단장인 상진과 비슷하다. 그는 운동만 하느라 음악 교육을 못 받았노라며 악보도 못 보는 음치라고 했다. 놀랍게도 그는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는데 절대음감은 언어에 높낮이를 가지고 있는 민족에는 높은 확률로 나타나기도 한다. 항상 같은 소리를 굉장히 오랜 시간 내기 때문인데, 이 경우에도 음악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른이 되고서는 음을 구분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경수 씨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인데 차분히 관찰해 보려고 한다. 



네 번째 합창단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지난 연습 이후로 몇 번의 미팅을 가졌는데 그렇게 만남을 할수록 이 사람들이 내 건 조건 중 두 번째 조건인 '보컬 트레이닝을 하지 않는다'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합창은 소리를 맞추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함께 노래 부르기라는 합창이라고 이름 붙인 게 아닐까. 물론 학창 시절의 합창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처럼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목소리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무지막지한 지휘자로부터 지시를 받으면 아름다운 노래라도 그만하고 도망가고 싶지 않았던가. 게다가 목소리 좋고 잘하는 친구 옆에서라면 더더욱 그랬다. 괜히 내가 합창단에 피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엉뚱한 소리로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주눅이 들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습에 몇 가지 장치를 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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