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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20.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4

비효율과 불균형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합창은 비효율적이다. 아니, 합창을 비롯해 모든 예술은 비효율의 모습일지 모른다. 예술의 결과는 항상 시간의 양으로 치환된다. 마찬가지로 합창도 그러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한다. 콘서트에서 한 곡은 보통 3분 내외의 시간이 걸리고 그 한 곡을 연습하는 데는 한 시간씩 다섯 번은 해야 한다. 스무 명의 단원이라면 100시간이고 지휘자와 반주자의 시간은 더 걸리기 때문에 한 곡을 만드는데 기본으로 100시간 이 훨씬 더 넘는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물론 아마추어 합창단의 경우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작업의 결과가 무대 위에서 한 순간의 실수나 찰나의 혼동으로 무너지고 엉망이 된다면 합창과 같은 무대예술의 특성상 회복은 불가능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의 과정은 항상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합창은 결과의 예술이 아닌 과정의 예술이고 과정에서 예술 경험을 하게 되며 따라서 합창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네 번째 합창단은 무슨 격투기 단체 같은 이름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네 번째 합창단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는지 '네 번째'라는 단어가 원래 이름처럼 느껴졌다. 아참, 스프린터스, 합창단의 이름은 스트린터스(sprinters)였다. 나는 합창단의 이름이 농구단이나 아님 무슨 자전거 동호회 같은 이름을 붙였는지 굳이 묻지 않는다. 궁금한 게 있다면 오히려 왜 나를 여기에 데려왔느냐가 먼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왜 이 합창단에서 노래하는지, 나에게 왜 세 가지의 조건을 걸었는지, 합창단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친목은 왜 없는지 궁금한 것이 많지만 일단 나는 음악에 집중한다. 이 합창단의 스물여섯의 대원은 꼭 스테인드 글라스 같은 모습의 소리를 낸다. 전체적으로 들어보자면 그럭저럭 좋게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소리가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다. 나는 연습에 장치를 심기로 했다. 



그 장치들 중 하나는, 소리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짝을 지어 얼굴을 마주 보게 하고 소리 내도록 했는데, 모두가 매우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경수의 경우는 오히려 신난 모습을 보였는데 경수가 마주 보는 대상이 상진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상진은 매우 안정된 소리를 냈는데 경수의 소리가 상진에게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경수에게는 이득이다. 자신이 매우 좋은 소리를 편하게 내고 있다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사실 소리 밸런스의 문제는 여성 파트가 더 심했는데,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알토, 여성의 낮은 목소리였다. 알토에는 체구가 건장한 중년의 여성분 하나가 있었는데 담배를 매우 좋아했다.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담배는 적중의 적이 분명하지만 개인의 취향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마주 보고 소리 내는 대상인 다른 한분도-체구가 크진 않지만 키가 크고 목이 긴 30대 후반의 여성이었으나 아직 서먹한 탓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도 만만치 않은 걸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의 목소리만 보자면 특색 있는 성우들의 목소리 혹은 경력이 오래된 연극배우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갑자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전설적 지휘자 유진 올만디가 떠올랐다. 헝가리의 바이올린 연주자 출신의 이 지휘자는 매우 유려한 현악 앙상블을 만드는데 탁월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는 가끔 제2바이올린의 몇몇을 비올라 파트로 혹은 반대인 제1바이올린 파트로 조정하면서 때에 따라 밸런스를 조정했더랬다. 나는 이 두 알토 대원 중 하나를 테너 파트로 내리기로 하고 협조를 구한다. 담배 때문인지 조금 더 걸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건장한 체구의 미향 씨에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유진 올만디를 따라 해 보고 싶은데 이제야 멀티 플레이어를 찾았다고 너스레를 떨고서는 한 번 해보자고 설득한다. 미향은 제법 악보도 볼 줄 아는 대원이라 낮은음 자리표로 표시되어 있는 남성 악보라도 연습만 하면 할 수 있겠다는 대답을 주었다. 


이제 소프라노는 여섯, 알토는 다섯, 테너는 아홉 그리고 베이스는 여섯이 되었다. 숫자로만 보자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숫자상으로는 더 적어야 할 테너가 늘어버렸다. 이 불균형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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