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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21.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5

그리운 금강산과 그곳을 향한 모험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목요일 합창단은 즐거움 반 긴장 반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직장인들의 취미 생활을 돕겠다는 회사의 복지 정책이 만들어 준 시간이라서 그런지 어떤 사람은 지친 자신을 참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풀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회사 쪽에서 보면 비록 아마추어에 특출 난 실력은 아니어도 송년회에나 신입사원 연수 또는 회사의 중요한 행사에 큰돈 들이지 않고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손쉬운 재료를 하나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공연 일정이 급하지 않고 업무에 지쳐 있는 상황이다 싶으면 나도 무리하게 연습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 느슨하다 싶으면 꼭 튀어나오는 요청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운 금강산'류의 향수 젖은 레퍼토리 같은 것들이었다. 



"지휘자님, 우리 '보리밭' 한 번 부릅시다!" 또는 "옛날 노래 한 번 하게 해 줘요" 같은 말들은 갑자기 나를 노래방 반주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지만 어쩌면 합창은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의 방법일지도 모르기에 못 이기는 척 "그럼 이 부분은 이렇게 해봅시다"라며 절충안을 내세우곤 했었다. 옛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은 타임머신의 티켓 일지 모르지만 같이 부르는 사람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도 같이 그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합창은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모험과 비슷하다. 추억은 익숙하지만 모험은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곡을 연습하는 것은 항상 괴롭고 익숙한 옛 노래는 쉬운 선택이 되고 만다. '그리운 금강산'이란 명곡이 싫다거나 질린다가 아니라 그 곡을 부르고 싶은 사람이 원하는 정해진 모양의 음악이 있다는 것이 지휘자로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익숙한 방식으로 노래하기 시작해서 자기만족을 위한 절정의 질러버리는 소리는 노래하는 자신 외에 어느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듣는 사람의 귀를 막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부장님, '보리밭'을 이렇게 바꿔서 불러보는 건 어때요?" 

미리 준비한 곡들 중에 다행히 이런 사태를 대비하고 챙겨 둔 나의 편곡 버전 '보리밭'이 있다. 리듬은 보사노바. 멜로디를 조금 비틀었지만 그 부분은 파트 연습으로 메꿔주고 전체 리딩에서 분위기와 바뀐 리듬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 합창 성부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보사노바 리듬을 담당하는 것은 피아노 반주다. 초견, 악보를 보고 즉시로 연주해 내는 능력,이 약한 목요일 반주자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도전이 된다는 분위기다. 사람들도 반주만 듣고서도 고개를 즐겁게 흔든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여러 설명들이 있지만 나의 생각은 이렇다. 지금까지 들은 음악만 다시 들어도 죽을 때까지 충분하기 때문에 새로운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 거라고. 그리고 음악은 듣던 시간의 추억이 동시에 새겨지기 때문에 지금 새로운 추억을 쌓는 것보다 그때의 추억을 더 기억하고 싶은 거라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줘야 하는 지휘자는 항상 고민이다. 새로운 음악이 관객들에게 과연 어떻게 먹힐지 반응이 나쁘지 않을지 두려워한다. 하지만 새로운 음악을 하지 않는 것은 그저 살아있는 레코더와 같은 의미일 뿐이다. 같은 음악이라도 항상 새롭게 해석하고 연주해야 살아있는 음악이 된다. 하지만 아마추어 합창단에게 새로운 음악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게다가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장착하려면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움이 내 것이 되는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은 목요일 합창단을 이끌고 직장인 합창 대회에 참여했었다. 누가 봐도 우리는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준우승.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 하며 아쉬워했었는데 합창단의 윤지윤 대리(앞으로도 뒤로도 똑같아서 윤대리의 이름은 잊지 않고 있다)가 '지휘자님도 긴장하시나 봐요. 아까 대기할 때 손 등을 자꾸 긁으시더라고요.'라며 슬쩍 자극한다.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나도 '그랬나 봐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사실 그날 손등에 뭐가 나서 가려웠던 것인데 집에 와 생각해보니 윤지윤 대리가 많이 긴장했었던 거였다. 나는 사람의 재능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그 사람의 연습시간이다. 연습 시간은 무대에서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재능도 실수한다. 하지만 충분한 연습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다. 프로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압도적인 연습 시간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항상 완벽하지 않고 그럴 리도 없지만 무대 위에서 완벽으로 보이는 이유는 실수에 대비하는 연습까지도 되었기 때문이다. 목요일 합창단이 준우승한 그 연주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충분한 연습 시간으로 만든 연주는 아니었다. 직장인들이 본업을 놔두고 연습을 해 봐야 얼마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생각에 닿자마자 준우승의 의아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감사가 떠올랐다.  



그럭저럭 목요일 연습을 마친다. 총무는 다음 달 신규 임원 환영행사에 찬조 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알린다. 신규 임원은 대부분 내부 승진이어서 대부분의 단원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곡 선정부터 복장까지 안내하고 자세한 사항은 합창 게시판에 올리겠다고 하고 헤어진다. 나는 녹초가 되었지만 단원들은 힘을 얻었는지 혹은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는지 다들 개운한 표정이다. 연습의 성과와 상관없이 이런 직장인 합창단에서는 최고의 모습이다. 몇몇이 맥주 한 잔을 하자며 이후의 시간을 내달라고 했지만 거절한다. 사람이나 모임이 싫어서가 아니라 연습 후의 지휘자는 정말이지 쉬고만 싶은 것이다. 날카롭게 세웠던 감각을 죽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빚고 나면 내 몸은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재빨리 악보를 챙겨 나온다. 



 악보를 담는 가방은 밝은 갈색 서류 가방이다. 언젠가 뉴욕에 갔을 때 소호였는지 어딘지 기억에는 없지만 맨해튼의 구석 어디에서 정말 한 번에 보고 반한 가방이었다. 그 가방에 지휘봉 세 개를 넣고 악보를 담으면 그 가방이 주는 특유의 냄새가 연습 직전의 긴장을, 연주 직전의 바늘 같은 신경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것 같았다.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지만 그 가방은 일종의 익숙함이었다. 내가 존경하던 지휘자도 비슷한 가방을 가지고 다녔더랬다. 배가 불룩 나온 갈색의 가죽 가방. 여기저기 닳아 쓸린 자국이 있던 그 가방의 손잡이를 쥐고 지휘자 의자에 앉으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람들과 눈을 마추지 고는 그 가방을 열어 지휘봉을 꺼낸다. 연습용 짧은 지휘봉이다. 프랑스 출신의 그 지휘자도 나에겐 익숙함이었을지 모르겠다. 나의 가죽 가방을 다시 보니 그의 가방과 닮아 있다. 그와 했던 연습장면이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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