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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25.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6

좋은 목소리?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그런 나에게 이상한 네 번째 합창단이 나타났다!




"좋은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일까요?", 뜬금없는 질문이다. 월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두번이나 만나는 상진과 나는 조금 가까워졌다. 그는 매우 훌륭한 음악적 토양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같았다. 그런 그가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 좋은 목소리가 무엇인가. 



"내가 듣기 좋은 목소리가 좋은 목소리죠." 현문에 우답일까. 

"나는 내 목소리가 듣기 싫으니 내 목소리는 좋은 목소리가 아니겠네요." 엷은 미소를 잠깐 얼굴에 띄운 상진은 곧 바로 밝은 표정으로 "지휘자님 목소리는 참 좋아요."라고 말한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어 붙이지 않는다. 대답이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지만 목소리가 좋고 나쁘고는 음악이 있을 때만 판단이 가능하다. 나는 세상에 나쁜 목소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긁히고 찢어지는 목소리라도 음악과 어울린다면 우리는 감동하지 않는가. 



상진은 그의 뛰어난 음악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을 낮추려했다. 특별히 음악에 있어서는 남들의 칭찬을 매우 불편해 했는데 그는 오히려 상진의 소리와 비슷한 결을 가진 경수의 목소리를 칭찬하고 전혀 다른 목소리인 주혁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합창에서는 도드라진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다. 개성없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합창의 기본은 한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다른 목소리를 한 파트 안에서 서로 어울어지게 하는 것이 합창을 만드는 가장 첫 번째의 단계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각자는 자신의 소리가 아니라 남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자신의 소리에 집중하기 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한 목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단장님의 목소리는 매우 좋아요." 

"저는 특색없는 내 목소리가 싫어요. 조금 더 특별한 소리였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이를테면요?"

"아나운서들이나 성우같은 그런 목소리처럼 특징이 있는 소리였으면 좋겠어요."



나에게는 특별하게 들린다고 말하고는 그 이유가 누구와도 잘 어울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목소리도 빛나게 해주지만 동시에 당신의 목소리도 반짝거린다고 악보를 준비하면서 무심결에 말하듯이 툭 내놓았다. 

"단장님의 소리는 테너 파트 전체를 울리게 해줘요. 화학자에게 감히 이런 비유가 괜찮을지 모르지만, 다른 원자와 결합되었을 때 더 새로운 성질을 가지는 그런 원자랄까요?" 

웃는다. 그가 웃는다. 화학의 문외한인 내가 화학을 예를 들어 설명하려 애쓰는게 재밌나보다. 



모든 목소리는 아름답다. 하지만 합창에서 좋은 목소리는 옆사람과 같은 소리를 내려고 하는 노력에서 만들어진다. 기술적으로는 잘 울리는 소리가 좋다. 왜냐하면 그렇게 잘 울리는 소리가 다른 소리랑 잘 어울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울리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소리내는 공간과 씹고 삼키는 공간이 동일하다. 씹은 후 삼키려면 모든 공간은 닫히고 좁아진다. 반면에 소리를 내려면 공간은 열리고 벌어져야 한다. 생존은 닫는 행위에 집중된다. 그래서 소리를 잘 내려면 필연적으로 연습이 필요하다. 선천적으로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  



갈라지고 찢어지는 목소리이지만 우리는 전인권에 반했고 김장훈에 환호했었다.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김현식도 있다. 모두가 아름답고 멋진 목소리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합창에서는 나를 갈아 우리를 만든다. 우리가 된 목소리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특별히는 여러 사람이 내는 소리 자체에 독특한 힘이 있다. 운동장에 모인 수 만명이 손흥민의 골 후에나, 혹은 추신수의 홈런 후에 터뜨리는 환호에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나는 모두가 동시에 한 마음이 되어 내 지르는 그 목소리가 합창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합창단의 조건 중 하나인 '보컬트레이닝을 하지 않는다.'를 내가 먼저 깨지는 않겠지만 왜 이 사람들이 이런 조건을 내걸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바꿔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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