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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28.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7

쉼, 균형의 다른 말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그런 나에게 이상한 네 번째 합창단이 나타났다!



숨을 길게 내 쉰다. 천천히. 가능한 천천히. 숨이 다 되면 멈춘다. 그리고 다시 깊게 들이마신다. 내쉬기 전 멈춘다.   


소리를 내려면 호흡이 필요하다. 숨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소리는 어쩌면 부차적이다. 게다가 소리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 성대의 본래 역할은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질식하지 않게 하는 마지막 관문의 기능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 매 순간 소리 내는 일은 어쩌면 본기능의 부차적 기능일지 모른다. 호흡하지 않으면 죽지만 소리 내지 않는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죽지는 않겠지만 기도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질식해 바로 죽게 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소리 내지 않으면 존재를 잃게 된다. 우리의 언어는 소리에서 신호로, 신호에서 언어로 발전했다. 위기의 순간에 목소리의 신호로 살 수도, 언어라는 도구로 남을 설득해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목소리는 중요한 생명의 도구가 아닐 수 없다. 그뿐인가. 청각적으로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울림이 있는 목소리는 사람의 인상도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 소리를 내기 위해 들이쉬는 호흡은 우리 생명 유지의 첫걸음이다. 분명히.


"깊게 숨을 들이마셔 보세요. 그리고 가능한 천천히 내쉬어 봅시다."


단원들이 천천히 숨을 내쉰다. 합창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들이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쉬는 것은 어렵다. 숨을 일정한 압력으로 내쉬는 것이 어렵다. 게다가 입을 연 상태라면 더 그렇다. 입을 좁혀 저항을 가지지 않은 상태인 열린 '아' 상태에서 숨을 일정하게 배출하는 것은 결국 몸 안의 근육이 하게 된다. 따라서 좁은 입술이 만드는 닫힌 모음부터 시작해서 입모양을 바꿔가며 숨을 내 쉬도록 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숨이 쏟아지듯 나오다 줄다를 반복하게 된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으로 구성되지만 놀라운 것은 그 둘 사이에 멈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호흡은 리듬이다. 이 리듬을 유지해 주는 것은 멈춤이다. 갓난아이들의 숨을 꼭 살펴보라.  아이들의 들숨 후에 멈춤이, 마찬가지로 날숨 후에 멈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숨을 모두 내쉬면, 꼭 다 뱉어내듯이 다 뱉으면 꼭 멈추세요. 그리고 다시 숨을 들이마셔야 해요."

"숨이 모자란데 거기다 멈췄다 쉬라고요? 그러다 우리 죽어요" 원래는 알토였지만 밸런스 조정을 위해 테너로 내려간 미향 씨가 걸걸한 목소리로 되묻고 동시에 사람들은 웃음이 터졌다. 


우리의 소리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멈춤이다. 멈춤은 호흡을 풍성하게 만든다. 멈춤-들숨-멈춤-날숨의 사이클을 유지하도록 하게 하고 호흡 연습을 계속한다. 



네 번째 합창단에는 낯을 가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세 번째 조건이 친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중에서도 정말 연습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정말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 윤성이라는 단원이 있었는데 일식 요리사가 직업이라고 했다. 사람 좋은 얼굴이지만 말보다는 표정으로 소통하는 것만 같다. 바짝 마른 몸에 키는 큰 전형적인 베이스다. 저 호리호리한 몸에 길고 날카로운 회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봤다면 지금의 무표정은 두려움이 되겠지만 가끔씩 건네는 백 년도 더 됐을 오래된 유머에 피식하고 웃는 얼굴을 봤다면 사람 좋은 얼굴이라는 표현을 금세 이해할 것이다. 호흡 연습에서 그는 단연 가장 길고 균일한 호흡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었다. 총무를 맡고 있는 주혁의 가득 찬 목소리와는 다르게 테너의 가벼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칼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 치고는 벌레를 너무 무서워했다. 연습실을 사냥하는 작디작은 모기 한 마리에 그는 소리를 지르고 도망을 가곤 했는데 그 소리가 참 높은 소리였다. 잠시 연습을 멈춘다. 쉼은 균형을 만들고 쉼에서는 창의가 생긴다. 


아! 카스트라토! 마침 또 다른 아이디어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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