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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28.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8

밸런스가 잡히기 시작하다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그런 나에게 이상한 네 번째 합창단이 나타났다!



중세와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서유럽의 음악은 단연 교회 중심이었다. 당시 남녀가 한곳에서 노래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회의 음악을 담당하는 성가대 역시 남성으로만 구성하였다. 문제는 그럴 경우 사용가능한 음성의 범위가 넓어봐야 두 옥타브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었다. 너무 좁은 성부 영역 때문에 필연적으로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남성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변성기 전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노래를 잘 할 수 있다는 증명을 얻어내면 교육받고, 먹고, 자고, 입고를 해결 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고된 평민의 삶에 비추어 보자면 매우 좋은 혜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목소리가 변한다는 것. 노래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어도 이미 자리잡고 있는 테너와 베이스 기존 대원들을 밀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비인간적이지만, 남성의 호르몬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변성기 이후에도 높은소리를 유지하고 교회로 받는 혜택도 계속되도록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거세를 택했던 것이다. 그들을 카스트라토라고 불렀다. 



윤성은 날아다니는 모기를 피해 소리를 지르고 있다. 매우 높은 소리다. 게다가 호흡도 매우 좋다. 테너 파트는 알토에서 내려온 미향씨까지 아홉이다. 이런 상태라면 테너는 불균형의 원인이 되고 만다. 연습이 끝나고 윤성을 따로 불러서 추가 연습을 해보자고 하니 그는 얼굴을 붉히며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나는 그의 가성을 더 들어 보고 싶었다. A4. 남성 목소리로는 쉽지 않은 한 옥타브 위의 '라'음이다. 그는 가뿐히 그 음을 넘어서 더 올라간다. 하지만 두음 위의 C5 도에서는 어렵다. 


"혹시 가성으로 더 소리 내볼 수 있어요?"

"가성이요? 저는 지금껏 가성은 쓰지 말라는 말만 들었는데요." 

"괜찮아요. 편하게 아까 했던 호흡 연습을 떠올리면서 길게 한 음씩 내어 봅시다."


놀랍다. 그는 다시 한옥타브를 넘어서 그 다음의 A6라를 소리낸다. 테너일 때 보다 소리가 더 크고 명료하다. 연습이 끝나면 다들 가버리지만, 윤성을 남기고 뭔 짓을 하는지 궁금했던 미향과 단장인 상진 그리고 내 옆에는 반주자가 남아 있었고 그들의 턱은 더 이상 벌어질 수 없는 지경이었다. 부끄러워하는 윤성은 언제나 그렇듯 붉은 얼굴색을 만들고는 귀밑에 똑똑 떨어지는 땀을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카스트라토..." 반주자의 입이 움직인다. "와우 윤성씨는 카운트테너네요, 옛날 카스트라토같은!"



일주일이 또 흐른다. 화요일의 누님들과 추격전 모양의 연습을 마치고, 목요일 합창단은 회사에서 요구한 찬조 공연 연습으로 꽉 채웠다. 금요일은 새롭게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합창곡 몇 곡을 새로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월요일의 윤성이 보여준 목소리를 계속 신경쓰고 있다. '휘슬보이스 구사가 가능할 거 같은데?', '무리하면 금방 목이 상할 수도 있을텐데', '사람들이 놀려서 싫다고 하면 어떡하나'등의 기대와 걱정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망의 월요일 네 번째 합창단이다. 단원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들 소프라노 파트에 앉아있는 윤성을 보고 한마디씩 한다. '뭐야 테너 자리에 모기가 있어?, '아냐 파리나 뭐 바퀴 벌레일지도 몰라.' 등의 실없는 농담들이다. 그런데 눈치없는 경수가 윤성에게 다가가서 뒷목을 잡고 데려간다. 정신차리라면서 웃겨 죽겠는지 얼굴은 장난끼 가득한 소년의 표정이다. 


"아니에요, 윤성씨는 오늘부터 소프라노에서 노래할 거에요."


30분 뒤 윤성과 상진, 미향과 반주자 그리고 나를 제외한 네 번째 합창단의 모든 대원들은 또 다시 벌어진 턱을 수습하느라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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