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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29.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9

컨덕터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그런 나에게 이상한 네 번째 합창단이 나타났다!



윤성의 충격적 소프라노 데뷔 이후 세 번의 연습을 더 진행했고 테너 파트에서 베이스로 위치 조정이 두 명 더 있었다. 합창단은 밸런스를 맞춰 가고 있었다. 알토 미향의 정착과 윤성의 소프라노 파격 변신은 다른 단원들에게 신뢰를 끌어 내게 한 듯했다. 그들은 나에게 내건 두 번째 조건인 보컬 트레이닝을 거부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자세를 바꾸고 호흡에 집중하며 그들의 소리를 조금씩 바꿔나갔고 그들의 마음이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존 루터의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영국의 작곡가인 존 루터가 미국 동부 델라웨어의 어느 교회에 방문해서는 세미나를 열고 어느 합창단의 연습을 지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필라델피아의 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곳은 운전을 해도 멀지 않았다. 게다가 무료. 지휘를 공부하던 시절 존 루터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해 그날을 기다렸더랬다. 그의 아름답고 따듯한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의 사람됨은 틀림없이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틀림없었으나, 세미나 후 합창단 지도에서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했더랬다. 지휘 테크닉은 너무 거칠었고 마른 몸에 벗어진 머리, 그리고 영국 특유의 오래된 양복 패션은 내 눈을 가렸던 것이다. 하지만 연습이 진행되면서 그의 음악이 제대로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내 마음도 녹았다.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웠다. 고령의 존 루터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민망해져서는 가져갔던 존 루터의 악보에 친필 사인받는 것을 포기하고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I-95를 달려 돌아왔던 것이다. 



존 루터는 “효과적이기 위해 복잡해질 필요는 없다.”라고 말하고 단순하지만 명료한 멜로디와 화성을 사용하여 작곡했다. 몇몇 노래는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아 그 노래!'라며 반응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엉성했던 지휘 모습을 떠 올리면서 그의 음악에 빠져 들었다. 

 

연습이 좋았던 탓일까. 단원들이 연습 후에 머뭇거린다. 그들은 연습만을 원했고 친목은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연습이 끝나면 집에 가지 않는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눈을 마주친다. 나는 단장을 보고 씽끗 미소를 짓는다. 그도 내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었다. 난감한 표정이다. 눈치 없는 경수가 나선다. 프로 골프 선수였던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지난주 시합에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몇 번 홀에서 아까운 샷이 아니었다면 우승했을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며 말한다.


"내가 쏠게요!" 


이미 합창단의 절반은 집에 가고 없었지만 남은 사람들끼리 맥주 한 잔 하자는 경수의 제안에 월요일에는 가게를 열지 않는 윤성이 나서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간단한 안주를 만들겠다고 술은 경수 형이 사 오라고 말하고 먼저 뛰어 나간다. 


"뭐 공식적인 건 아니니까 좋네요" 단장인 상진이 짐짓 난감한 체하며 말한다. 


우리는 왜 함께 노래하게 되었을까. 신나 떠드는 경수와 큰 키에 높은 주방장 모자를 쓴 윤성 그리고 이런 자리에까지 와서도 조용한 해진을 보자니 궁금해졌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테이블 중간쯤 에 앉아서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질문이 톡 튀어나온다.  


"우리는 어떻게 모이게 된 건가요?" 


일순 모두가 조용해진다.



해진은 삼십 대 초반의 관세사이다. 그런 직업이 있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국제 무역에서 발생하는 관세를 조정하는 일종의 세무사 같은 그런 일이라고 했었다. 항상 단발머리를 유지하는데 눈썰미 좋은(나는 이것을 눈치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또 머리가 바뀌었다고 이번에는 뭐가 어쩌고 저쩌고 품평을 해대곤 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같은 단발머리인 해진의 스타일 변화를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다. 해진도 말수가 적다.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고 여자치곤 큰 키라 롱코트를 입고 연습실에 들어올 때의 모습은 휘청휘청한 걸음이었다. 해진은 누구와도 친해 보이지 않았다. 매우 차가운 얼굴에 표정도 적지만 누군가 말을 걸면 항상 따뜻하게 반응을 해서 참 의외라고 느끼곤  했다. 그런 해진이 말을 꺼낸다. 



"그날이 우리를 모이게 했어요."


밖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담뱃갑에서 한 개비 담배를 꺼내 윤성의 가게 라이터를 집고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미향도 일어나다 말고 다시 앉으며 말을 덧붙인다. 


"그랬지. 그리고 컨덕터 덕이었지. 왼손 지휘자..."




 컨덕터? 지휘자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데 이 단어는 오래전 기차에 승객을 태우고 표를 검사하거나 승객 관리를 하던 기차의 차장에게도 붙는 단어였다. 그런데 그는 누구였을까? 게다가 왼손 지휘자?



"그런데 처음이네요. 우리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벌써 삼 년이나 되었는데." 상진이 조용하게 말을 하고 윤성의 가게에 모인 그들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회상에 잠기 듯, 추억을 하는 듯한 표정들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니 누군가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으면 윤성의 가게는 맛이 없으며 경수의 아까운 샷은 다음 경기에서 다시 나올 거고 해진은 국제무역 분쟁으로 일이 어려워질 거라고 농을 섞어 협박조로 읊어댔다. 모두는 웃음이 터지고 상진은 모인 모두를 휘 둘러보더니 말을 시작한다. 



"다들 동의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상처받은 사람들이에요. 합창으로 상처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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