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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31.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지휘자 20

스프린터스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그런 나에게 이상한 네 번째 합창단이 나타났다!



맥주를 마시던 손을 내려 놓고 상진은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그리고 되도록 정확한 표현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우리는 각자 다른 합창단에 속해 있었어요. 그리고 꽤 큰 규모의 합창대회에 참석했었어요.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대회였는데 방송국에서 연예인들을 모아다가 만든 합창단이 주인공인 대회였어요. 말하자면 우승팀은 이미 정해져 있는 대회였던 거죠. 우리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전국 규모에 상금도 있고 방송도 타고 합창 붐도 일어나고 뭐 여러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두들 각자의 합창단에서 열심히 연습했을 거예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합창을 해본 사람들이고 합창이 즐겁고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런데 방송은 대본으로 움직이잖아요. 대회 때는 모두가 즐겁고 감동을 받았는데 나중에 편집된 장면을 보니까 음을 틀리게 내거나 실수하거나 혹은 삐끗하는 소리 내는 장면만 모아서 웃긴 모습으로 편집했더군요. 그런데 그게 합창단의 결선이나 등수에 영향이 되었다고 다들 비난받았어요. 사실 그런 장면에 들어 있지 않았던 몇몇도 주인공 합창단을 강조하려는 방송 때문에 마음이 상했던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합창단의 초대 지휘자가 우리를 하나씩 모았어요. 그날 이후로 합창단을 관둔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로 이메일로, 어떤 사람은 편지로 연락을 받았대요. 그분이 우리가 말한 컨덕터예요. 그분은 우리하고 길게 연습하지 못했어요. 사실 우리는 창단 이후로 한 번도 연주회를 한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연주회를 준비하는 도중에 그분이 돌아가셨거든요. 그분은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셨고 그 암의 영향이었는지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휘는 왼손으로 하셨어요. 연습장과 합창단에 드는 모든 비용은 그분의 기부하셨어요. 지금도 우리 합창단의 기금은 컨덕터의 유산인 기부금이 대부분이에요. 물론 우리도 자발적으로 운영비를 모으고 있지만요. 컨덕터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그분의 뜻을 이어가고 싶었어요.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위로가 되셨죠. 직접 합창단 이름도 붙여주셨어요. 스프린터스라고."


앞에 있는 맥주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온다. 


"그 이후로도 두 명의 열정적인 지휘자님들이 오셔서 컨덕터의 뜻을 이어주시려고 했지만 우리 상처받은 마음들이 잘 열리지 않았았어요. 소리는 엉망이 되어가고 지휘자들은 그것을 고쳐보려고 하드 트레이닝을 시켰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컨덕터의 죽음 이후에 이렇게 모여서 친목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오로지 합창으로 그 뜻을 이어보자고 한 거죠. 그러다가 제 화학과 은사님에게로부터 지휘자님 얘길 얼핏 들었어요. 이상한 왼손 지휘자가 있는데 합창을 합창답게 잘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스파이가 되어 버린 거죠." 



주혁이 나선다. 베이스의 낮은 목소리가 높아져 있다. 


"사실 그때가 위기였어요. 모두가 지치고 지휘자랑 반주자 둘 다 나간다 그러고. 합창이 즐겁지도 재밌지도 않고 오히려 짐 같았어요. 돌아가신 컨덕터가 남긴 말씀이 아니었으면 우린 진작에 헤어졌을 거예요." 



아직 불도 못 붙인 담배 한 개비를 손에 쥐고 듣고 있던 미향이 걸걸한 목소리로 이어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맘이 상처를 받았을 때 그걸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서는 음악으로 다친 마음은 음악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시던 컨덕터의 말을 잊지 못해요." 



조용하던 해진도 기다렸다는 듯이 미향의 말을 낚아챈다. 말의 속도가 빠르다. 조금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이 든다. 


"왼손 지휘자를 다시 만났을 때 우리 모두 놀랐어요! 그래도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해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래서 친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나 봐요." 나도 겨우 한마디 끼어든다. 


"아마 그랬던 거 같아요. 서로에 대한 애정은 분명 있지만 서로 건드리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 게 아마 싫었던 거 아닐까요." 맥주 때문인지 아님 마음의 움직임 때문인지 얼굴이 붉어진 상진이 역시 조용히 말한다.  


 원래는 활발하고 흥이 넘치던 반주자는 웬일인지 말없이 듣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모두를 집중시킨다. 


"그러니까 우리 스프린터스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무대에 서본 적이 없다는 거죠? 그것도 지난 3년간?"




의문이 조금씩 풀린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의 의문이 남아있다. 왜 이들은 단조의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첫 조건으로 나에게 내 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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