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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Oct 17.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11

미스테리의 실마리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테너 파트를 둘로 나눠 소리를 내도록 해봤지만 소리를 냈던 주인공은 입을 다물었다. 종종 이런 일이 있다.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나 때문에 무언가 잘못 되었다 싶으면 입을 다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연습하고 실전에서 혹은 무대에서 입을 열면 결국에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지휘자는 이런 일을 대비해서 두가지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째는 소리를 내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때로는 웃게 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유도하면서 사람들의 입을 열어야 한다. 둘째는 소리를 재빠르게 구별해야한다. 어디에서 누가 잘못된 소리를 내는지 구별하지 못하면 아마추어 합창은 금방 무너지고 만다. 합창 지휘자로써 긴 시간의 훈련을 통해 얻은 것은 사람의 목소리를 구별하는 것은 오로지 청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별하려는 목소리와 입모양, 표정, 자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리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대략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파악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목소리는 매우 정확하다는 것이다. 발성의 잘못이나 다른 못된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소리 내기를 멈추고 잠깐 쉬기로 하고 반주자와 눈을 마주친다. 

"어휴, 머리가 어지러워요, 지휘자님."

"그렇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피치를 유지하면서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진짜 궁금하네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말했다. 

"그런데 지휘자님, 여기 피아노 손을 좀 봐야겠어요. 해머 경화도 조금 느껴져서 가끔 딱딱한 소리도 있는거 같고, 전체적으로 스트링 텐션이 낮은거 같아요."


연습을 시작하기 전 '그'와 신입대원-여기서는 그 둘이 각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했다-은 합창단의 여러 상황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해줬더랬다. 말 수가 적은 그의 이름은 '상진'이었다. 상진은 실질적인 합창단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단장이라고 했고 신입대원-이름은 주혁이고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으나 자세한 사항은 묻지 않았다-은 총무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주혁은 여러 설명을 하다가 조금 늦게 연습실에 온 반주자에게 피아노 설명을 하면서 매우 흡족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월 때문에 반짝거림이 사라져 버린 피아노 윗판의 왼쪽 한 귀퉁이를 가리키면서 "이 피아노는 1938년 뉴욕에서 만든 슈타인웨이에요." 이 피아노의 브랜드의 창업자인 헨리. E. 슈타인웨이(Henry E Steinway)는 독일 출신 미국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에 따라서는 스타인웨이 보다는 입술을 더 내밀어 발음하는 슈타인웨이라고 발음하는데 아마도 주혁은 이 악기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는 듯했다. 이 피아노는 흔히 말하는 명품 악기가 맞다. 하지만 모든 악기들은 수명이 있고 수명이 다하면 망가지고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주혁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이 피아노가 좀 오래 되어서 조율하시는 분이 악기 관리를 위해서 조율을 좀 낮게 해주고 있어요."


순간 반주자와 나는 눈이 마주친다. 

"아하, 이 피아노가 음이 좀 낮죠? 피치가 낮게 들리는데 어때요?" 

"네, 처음 연습이라 정신이 없어서 생각 못했는데 지휘자님 말씀처럼 좀 낮은거 같아요." 반주자는 이내 건반을 조심스럽게 눌러본다. 

"아, 440Hz 기준음으로 조율된건 아닌가봐요. 더 낮은데 430보다 더 낮은거 같아요." 

반주자와 나는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 절대 음감에 많은 사람들은 오해를 한다. 음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소리도 무슨 음이냐고 묻기도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이제야 미스테리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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