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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Nov 01. 2022

네 번째 합창단과 왼손 지휘자 22

라크리모사, 눈물겨운

나는 지휘자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을 세 개나 지휘하고 있는 생계형 지휘자다. 그것도 왼손으로 지휘하는 이상한 지휘자다. 그런 나에게 네 번째 합창단이 나타났다!



아마도 우리는 잘 못된 음악교육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다음 중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라고 질문하면 '단조: 우울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를 정답으로 골랐을지 모른다. 장조는 밝고 화려하며 단조는 그것의 반대라고 배운 것이다. 하지만 단조는 그런 상황에 도구로 쓰일 뿐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왜 단조 노래를 하지 말자고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쉽게 물어서 듣는 쉬운 대답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은 단조에 대한 오해가 있었거나 나쁜 기억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조성과 상관없이, 정해진 파트 따위는 뛰어넘고 그것이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합창을 하고 싶다. 함께 마음을 모아 같은 소리를 내는 합창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어느 큰 교회의 성가대를 지휘하던 시절, 나는 교회의 음악 감독에게 단조 조성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가 음악 감독이긴 하지만 교회음악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고 그 지시는 내 말을 잘 듣나 안 듣나를 보겠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조성을 구분해서 노래할 것이 아니라 교회라면 그 안의 메시지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아, 물론 나는 쫓겨났다. 또 쫓겨 날지도 모르지만, 단조 곡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깨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려를 표현하던 상진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조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나는 의미를 담았다. 그들의 맘 속에 있는 컨덕터를 보내야 한다고. 컨덕터가 그들을 위로했으니 이제는 그들이 컨덕터를 위로해야 한다는 마음을 담았다. 



장조와 단조는 기본적으로 음의 배치가 다를 뿐, 음악을 표현하는 다르지 않은 도구라고 설명한다. 음계를 구성하는 여덟 개의 음은 아마도 네 개의 음이 더해진 여덟 개의 모습일 것이라고 한다. 음악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 그러니까 문명의 시작 즈음에 음악은 네 개의 음으로 만들어졌고 네 개의 음은 지금의 도레미파와 유사한 간격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각음은 온음과 반음으로 구성되는데 1,2,3음의 간격은 온음(온음은 반음이 두 개인 모양이다) 그리고 3음과 4음의 사이 간격은 반음이었던 것이다. 그 구성을 1음과 2음을 온음으로 2음과 3음을 반음으로 다시 3음과 4음을 온음으로 구성하면 네 개의 음만 가지고도 다양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역사가들은 추측하는 것이다. 



정기연주회를 위해 프로그램 회의를 하고 컨셉을 확정한 뒤 일정을 잡고 대관 신청을 하며 협연할 오케스트라를 구했다. 동시에 윤성은 리셉션의 음식을 맡기로 했고 해진은 포스터와 브로셔 같은 홍보물의 디자인을 맡기로 했다. 총괄은 당연히 상진이 하는 것이겠지만 사실 잡일은 덩치 큰 주혁의 몫일 것이다. 공연장과의 연락은 광선이 맡고 초대권 배부와 입장권 판매(아마추어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에 티켓이 팔리는 일은 거의 없다)는 미향이 맡기로 했는데 나는 미향에게 연주 날까지는 금연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물론 미향은 전자담배 정도는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억지 미소로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반주자는 전투태세다. 임용고시에 또 떨어졌지만 앞으로 두 번은 더 해보겠다면서 씩씩한 모습을 피아노에 녹이고 있다. 때로 나는 반주자에게 이곡이 레퀴엠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면서 말한다. 

'살살해'


 연습의 밀도는 높아지고 레퀴엠이 만들어진다. 한 마음으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문득 왼손밖에 쓸 수 없었던 컨덕터가 마음에 떠 오른다. 그는 이 날을 기다렸을까. 컨덕터가 누구였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나와는 직접적인 연이 없었으나 그는 우리나라 합창지휘의 1세대 중 한 명이었으므로 나는 그의 명성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자신의 유산을 기꺼이 헌사하면서 까지 이들의 마음을 돌보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는 길에 마음이 맞아 노래했던 화요일 합창의 누님들처럼, 어쩌다 보니 하게 된 무대에서라도 함께 노래했더니 좋았다는 목요일 기업 동아리 합창단의 황 팀장처럼, 은퇴하였지만 아끼는 제자들과 동등한 자리에서 연구하듯 노래하는 것이 남은 생의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노교수처럼 그도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이 좋았는지 모른다. 



라크리모사, '눈물겨운, 눈물을 유발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모차르트는 이 부분을 작곡하다 나머지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나머지를 연결하여 작곡을 완성하였는데, 후대의 사람들은 쥐스마이어를 가볍게 여기고는 그의 작곡 부분을 마음대로 난도질 해댔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여러 버전이 존재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후대의 다른 자들이 만든 부분보다 그래도 쥐스마이어의 완성 부분이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는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했던 살리에리의 고뇌가 표현되지만 나는 오히려 쥐스마이어에게 더 마음이 간다. 어쩌면 나는 컨덕터가 남긴 '라크리모사'를 완성시키려 고군분투했던 쥐스마이어로써 '스프린터스'를 완성시켜야 하는 운명을 가졌던 것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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