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아빠 육아] - 1장. 새로운 시작

3. 병원에서, 그리고 밖으로

by 콩돌밤돌아빠

다른 병원에도 똑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이런 기계가 있을 것 같다. 남편이 둘째 날부터 하는 일은 다리 마사지기로 아내의 다리에 찍찍이를 붙이고 마사지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출산 후에 다리가 붓는 부종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남편의 손을 대신할 좋은 기계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이 기계가 남편의 손을 대신한다.

아내는 이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호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럴 때는 자연분만을 하신 분들이 부럽긴 하다. 아내가 링거를 꽂고 면회를 갈 때 같은 날 자연분만으로 출산하신 분은 아무것도 없이 잘 걸어가신다. 하지만 아내 앞에서는 절대 부러워하면 안 된다. 가장 몸과 마음이 힘든 건 아내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첫 식사

식사가 참 잘 나와서 좋았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수술'이었기 때문에 미음으로 시작했다. 아내는 미음이나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가댁에서 장인어른이나 장모님께서 하시는 말씀 들어보면 아내는 어렸을 때도 죽은 안 좋아했고 장염에 걸려도 이것저것 먹었다고 한다. 참으로 별난 면이 많다. 저것마저도 다 안 먹고 남겨서 내가 다 비워 먹었다. 저 후로 미음에 김치가 추가되면서 반찬들이 더 나오기 시작하더니 맛있는 식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가 먹은 밥은 점점 진화(?)했다.

거의 매끼 미역국은 반드시 나왔다. 보호자 식사도 있었지만 나는 안 먹었다. 사실 난 지독한 짠돌이다. 장점이 자면 알뜰하게 돈을 잘 모으는 거고, 단점이 자면 짠돌이인 거다. 아내는 나더러 '수전노'라고 부른다. 아내는 먹으라고 했지만 저 한 끼 8,000원 식사 대신 아내가 무조건 남길 것을 알기 때문에 남긴 것을 그냥 먹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어서 아끼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저 식사의 반은 거의 내 거였다. 아내가 일부러 남겼다기엔 싫어서 안 먹은 것도 많았다.

이 팥죽이 나왔을 때는 뚜껑으로 덮어져 있어서 내가 열어주었는데 열자마자 아내가 "덮어~" 한다.

아내는 팥죽을 싫어한다.

"잘 먹겠습니다."

.. 보호자 식사를 신청 안 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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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는 날,

1층에 꽃집이 있어서 미리 예약해 둔 꽃을 아내에게 선물했다. 받는 걸 내심 좋아하면서 아내는 겉으로는 티를 잘 안 낸다. 그래도 준다.


아내는 바로 위에 있는 조리원으로 입소했다. 나는 일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조리원에 있을 때는 잠시 헤어졌다. 리원에 첫째를 데리고 들어 갈 수가 없어서 매일 첫째랑 아내와 영상 통화를 했다.

첫째 때는 조리원 생활까지 같이 했었다. 남편이 조리원에 같이 있으면 할 일이 딱히 없다. 아내의 말벗이 되어주고 같이 티브이나 핸드폰으로 영화 보기, 마사지해주기 등. 배우자 출산휴가를 조리원에 같이 있는 것으로 다 썼다. 산후도우미 신청을 하지 않았으면 고민을 해봤을 것 같지만 산후도우미 신청을 했고 아내도 나도 같이 있는 걸 원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남편이 해야 할 일들을 처리했다.

우선 장모님이 봐주시고 계셨던 첫째를 다시 데려와 첫째 육아를 홀로 시작했다. 이때 당시에는 처가댁이나 우리 집이나 우리 없이 애를 봐준다고 하면 못 미더웠다. 애기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만 가면 배 나온 돼지(?)가 되어버리는 장면도 많이 목격했고 혹시나 다치진 않을까, 애가 콘센트에 젓가락이라도 넣으면 어쩌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침밥 준비, 어린이집 보내기, 출근, 어린이집 하원, 같이 놀기, 저녁밥 준비, 잘 준비, 재우기 그리고 이 와중에 주민센터에서 둘째의 출생 신고, 시청에서 아기 통장 만들기, 보건소에서 출생 진료 지원금 신청, 은행에서 아기 적금 만들기 등 아기와 관련된 일들까지 본업을 하면서 틈틈이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이제 조리원에서 나오는 아내를 기다린다.

조리원에서 나오고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데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정말 기어서 천천히 오고 긴장했었나 보다. 겉싸개에 쌓인 그 3kg 조금 넘는 작은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차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아기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데리고 온 날, 우리는 미리 첫째 딸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동생이 갑자기 생겨 집에 온다는 사실이 첫째에게 엄청 큰 스트레스라고 들었다. 둘째가 조리원에서 나오는 날은 다행히 주말이었다. 첫째는 처가댁에 잠시 맡기고 둘째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첫째에게 설명을 많이 했다. "엄마 뱃속에 밤돌이(태명)가 있었지? 이제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집에 같이 사는 거야. 동생이 생긴 거야." 우리는 "동생이 누나한테 선물도 준비했다? 집에 가면 동생도 보고 무슨 선물 줬나 한번 보자!"

첫째는 집 안의 사랑을 100% 받다가 절반인 50%로 받는 기분일 것이다. 주식도 당일 하한가가 -30% 까지인데 -50%면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는가. 딸은 킥보드를 가지고 싶어 해서 킥보드를 선물로 주었다. 이렇게라도 동생에 대한 좋은 기억과 감정을 살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우리의 또 한 번의 육아가 시작되었다.

그것도 난이도가 4배, 아니 20배쯤은 올라간 육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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