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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배 Jan 30. 2022

10분짜리 자전거 여행

날씨 맑은 날 달려 나가는 길

송도를 떠나 신촌으로 등교했던 2019년, 그 아름답게 놓인 캠퍼스 거리를 걷는다는 기분만으로도 대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캠퍼스 낭만이 그해에 무색하게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렸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나는 그냥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게 좋아서 마스크를 고 다닌 적이 없다. 그게 왜 그렇게 좋았을까. 나쁜 공기인 걸 알았는데도 말이다. 들숨과 날숨으로 내 몸을 채우고 있던 것이 새로워진다는 게 좋았던 걸까.


불과 1년 뒤,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아니,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가는 게 어색하다.


요근래 변덕스러웠던 날씨가 지나갔다. 오늘의 날씨는 맑음이다. 모처럼 여유에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맑은 햇빛을 보고는 오늘은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선명하게 비치는 모습에 속아 한겨울 추위를 잊고 얇게 걸치고 나간 적이 있다. 다행히 오늘은 믿음에 보답한 듯한, 제법 포근한 날씨였다. 오늘 날씨 너무 좋다!


세수하고 옷 하나 걸치고 나왔다. 옛 추억도 떠오르고, 버스 타고 송도에 갈까 하다가 그냥 자전거를 타고 근교의 카페로 나왔다. 걸어갈 법도 한 거리지만 왠지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들이키는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그래, 오늘은 자전거 여행이다.


아마 한 10분 정도였을 거다. 그 짧은 순간에도 미묘하게 감정들이 달라질 수 있구나. 자주 오가는 길이지만 달려갈 때는 몰랐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무엇보다도 공기가 너무 좋았다. 상쾌하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고. 공기에는 색도 향도 없지만 파란 하늘을 머금은 향긋한 복숭아를 삼키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어딜 그렇게 가는 걸까. 오늘 같은 날 밀린 작업을 하러 나오는 나도 웃기지만 이 날씨 맑은 주말에 저 사람들은 어디를 가는 길일까 궁금하다. 다리를 건널 때 보이는 다리 아래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유모차 끌고 가는 가족, 천천히 산보하는 노부부.


넉넉하게 2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에 나, 내 앞에서 걷는 사람, 마주오는 사람, 그 사람을 앞지르는 사람 이렇게 4명이 있었다. 적당히 거리를 계산해보니 넷이 정확히 겹치겠다 싶었다. 그러나 좁지 않았다. 서로 조금씩 비켜서서 각자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나의 열에 놓였을 때를 찍었다면 제법 멋진 사진이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한다.


사거리를 지나는 길. 나는 직진을 하고 그 사람은 나를 가로질러 간다. 완벽하게 직교할 때면 세상일들이 원래 그런 건가 생각도 들고. 내가 가는 길만 길은 아니니까 말이다.

김밥 가게에 걸린 간판.

'행복이 뭐 별 거니? ... 저 푸른 하늘 보고 살면 되지.'

오늘에 딱 맞는 말이 아닌가. 야속한 마스크 때문에 마음대로 맑은 공기도 마시지 못하지만, 그래도 온몸을 감싸고도는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공기와 온 하늘을 덮은 푸른 하늘을 보면서 사는 것에 감사하며.


여행도 내가 마음을 먹기 나름이 아닌가. 오늘은 여행이다 생각하고 길을 나서면 그 길은 여행길이 된다. 10분짜리 자전거 여행은 짧지만 여운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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