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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19. 2017

헤아리고 생각하는 '혜윰한복'

[5호] 우리 가게를 소개합니다│글 김혜진

   가게를 성북동으로 옮긴 건 2013년 겨울이었다. 맨 처음 작업실을 열었던 한성대 근처보다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성북동이 한복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로 발품을 팔며 열심히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공간에 둥지를 틀고 지내고 있다. 성북동은 지내면 지낼수록 더 따뜻한 느낌이 드는 동네인 것 같아 ‘정다운 우리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혜윰한복’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혜윰’의 의미다. 단어도 생소하지만 발음이 어려워 몇 번이나 반복해 말해줄 때도 있다. 이렇게 어려운 단어, ‘혜윰’을 왜 가게 이름으로 정했을까? 가게 이름을 지을 때, 무엇보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적합한 단어를 찾던 중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이 바로 ‘혜윰’이었다. ‘혜윰’은 ‘헤다, 헤아리다’라는 뜻으로 ‘생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나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옷을 지을 때 참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원래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에서 쓰이는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는데, 이런 의상들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매우 많다. 배우가 연기할 때 불편하지 않은지, 조명 아래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무대와 잘 어울릴지, 다른 배역과 어울림은 어떠한지 등등 입는 사람에 대한 헤아림은 디자인 과정 중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 ‘헤아림’의 의미를 지닌 ‘혜윰’은 옷을 만들 때의 나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해서 ‘혜윰한복’으로 이름을 짓게 되었다.

  혜윰한복에는 비교적 까다로운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무대의상을 만든 것이 인연이 되어 찾아오는 배우, 연주자, 창 하시는 분들, 미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컬러와 스타일에 민감하거나 옷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행사를 치룬 손님들이 내 한복이 스튜디오 촬영이나 연주 중 가장 돋보였다고 인사를 하면 나는 “이 맛에 한복 하죠” 라고 웃으며 답한다.


  한복을 맞출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내가 한복을 지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는 색감이고 두번째는 태이다. 색감은 한복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했던 나는 색감에 굉장히 예민했다. 수채화를 그릴 때 팔레트 위에 풀어진 색을 보고 “예쁘지 않은 색이 없어”라며 색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옷을 보거나 물건을 보면, ‘왜 이 색을 썼을까?’, ‘다른 색이 더 어울릴 텐데’, ‘맞아 이 색도 너무 예쁘지’ 하며 색에 유난히 예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한복을 하게 된 것 같다. 같은 빨간색이라 하더라도 명도와 채도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지, 또 얼마나 다른 느낌을 주는지는 다들 잘 알 것이다. 또한, 노란색과 빨간색도 정말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있다. 각각을 따로 봤을 때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가 매치를 했을 때 서로를 살려 주면, 난 마치 천생연분 커플을 발견한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다. 그래서 그 색을 찾느라 수많은 색을 조합해 본다. 그리고 그 선택한 색이 손님의 분위기와 어울려 빛을 발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한복에는 전통적으로 많이 쓰이는 색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색들만을 사용하면 기존의 한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한복에서 잘 사용하지 않았던 색들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한복에서 잘 쓰지 않던 색을 한복에 어울리게 잘 쓰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냥 기계적으로 색을 대충 맞추기 보다는 정말 예쁜 색, 제일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색을 찾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지만 재미있는 과정이고 그 후에 찾아오는 기쁨을 알기에 색 조합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태’가 나게 지어야 하는 것도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다. 매일 입는 일상복은 어떤 사이즈가 자신을 가장 태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한복은 자주 입지 않기 때문에 어떤 디자인이 나에게 예쁜 선인지 잘 모른 채 그냥 한복집에서 맞춰주는 대로 입게 된다. 한복은 여유가 많은 옷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분이 다 여유가 많으면 태가 나질 않는다. 여자의 경우 치마의 부피가 크기 때문에 저고리는 몸에 잘 맞게 설계가 되어야 하고 남자의 경우도 소매가 크고 바지통까지 크면 맵시가 나지 않는다. 즉, 한복의 부피감에도 강 · 약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본인의 체형적 특성까지 반영하면 가장 본인에게 잘 맞는 ‘태나는’ 한복이 된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정성껏 한복을 짓다보니, 매일매일 이 예쁜 한복을 입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손님의 인사를 받기도 한다. 한복은 상대적으로 입을 기회가 많지 않아 안타까운데, 요즘 젊은 층에서 한복을 입고 여행을 가거나 궁에 놀러가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한복을 디자인 하는 입장에서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복이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 같아 더 열심히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종종 딸을 데리고 시험 삼아 디자인을 해보기도 하는데, 내 딸은 여섯 살 한복 입히기 딱 좋은 나이이다. 입히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물론, 입는 아이도 너무 행복해 한다.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초대 받으면 우리 딸은 한복을 입고 간다. 친지 어른들 외에는 한복을 입고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 특별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많은 관심을 받는다. 아이를 위한 한복의 소재는 면이나 모직, 인견 등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도 한다. 이 독특한 한복 덕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한복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인사하게 되고 또 칭찬 받을 때도 많아서 한복을 입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복을 입는 요즘의 젊은 층도 나와 같은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본인이 돋보이고 더 잘 차려입은 느낌에 기분이 좋고 또 평소에 잘 안 입는 한복을 입으니 재미있어 한다.

  이런 유행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전통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기모노가 ‘입고 싶은 옷’으로 인식되지만 우리 나라에서 한복은 여전히 ‘자주 못 입는 옷’, ‘불편한 옷’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모노를 한번 정식으로 입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복보다 훨씬 더 불편했다. 가슴 아래 배 부분을 ‘오비’라는 긴 띠로 많이 감기 때문에 허리를 조금도 구부릴 수가 없었다. 또한 기모노 구조상, 치마폭이 좁아 종종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어 몇 시간 착용만으로도 너무너무 피곤했다.

  이에 비해 한복은 부피감으로 인한 불편함은 있지만 입었다고 해서 심한 피로감이 오거나 하지 않는다. 불편함이 한복을 안 입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과연 불편함이 한복을 안 입는 가장 큰 이유일까? 우리가 드레스를 입을 때 불편하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드레스를 불편한 것으로 인식하고 감수하고 입는다. 그렇다면 한복도 입고 싶은 옷으로 만든다면 좀 더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입지 않을까? 소장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지 이제 거의 7년, 나에겐 아직도 한복에서 실험해 보고 싶은 요소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일상복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패턴의 면과 마 등을 소재로 활용하거나 서양 복식에서 사용하는 라인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느낌을 주는 한복을 디자인하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은 한복, 입고 싶은 한복을 끊임없이 디자인하고 제안하는 것이 한복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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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은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를 졸업한 뒤, 무대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연극 「이(爾)」,「밀당의 탄생」, 뮤지컬 「대장금」,「형제는 용감했다」,「삼천」등이 있다. 현재는 무대 의상과 한복을 짓고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복 만들기 수업도 진행하고 있으며 블로그도 운영 중이다. 

(블로그 blog.naver.com/hyezzinii 전화. 070-8200-4768)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5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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