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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20. 2017

새벽을 여는 사람,
홈베이스 마켓 배달원 박희빈 씨

[5호] 성북동의 이 사람│인터뷰· 정리 장영철


  박희빈씨는 성북동의 대표적인 마트 중 하나인 <홈 베이스 마켓> 성북동점의 배달원이다. 누구보다도 바쁘게 일하는 그를 우리는 성북동 곳곳에서 자주 마주치곤 한다. 산비탈 골목을 짐을 가득 들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마켓 앞에서 부지런히 물건을 나르기도 한다. 그의 손과 발로 우리는 쇼핑한 물건들을 편안히 받아들곤 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루를 사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쎄요, 제가 뭐 인터뷰 대상이 되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끄럽네요. 고맙습니다.


-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고맙지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사시는 곳은요? 

예, 올 해 쉰둘입니다. 사는 곳은 성북동 1가예요. 나폴레옹 제과 뒤쪽에 삽니다. 한 7,8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지요. 성북동으로 오기 전에는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앞에 살았어요.


- 네, 그러시군요. 명륜동과 성북동은 좀 다르지요?

명륜동은 대학가라서 좀 복잡하고, 방학 때는 덜하지만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많아 좀 시끄럽기도 하지요. 하지만 뭐 제가 사는 건 그곳이나 여기나 비슷해요.


- 성북동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홈 베이스 마켓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새벽에는 신문 배달도 하고요.


- 두 가지씩이나 일을 하시는군요. 바쁘게 사시는 게 맞네요. 힘드시겠어요? 

뭐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니까요. 큰 애가 대학에 다니고, 둘째는 고등학생이라서 다달이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생활도 하고 교육도 할 수 있거든요. 원래 가진 것이 없으니 몸으로라도 열심히 뛰어야 살지요. 바쁜 게 좋아요.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새벽 3시 쯤 일어나서 준비하고 4시 쯤 보급소에 가 신문을 받아 8시 정도까지 돌리지요. 집에 돌아와서 씻고 아침 먹고, 9시 쯤 마켓에 출근해서 밤 8, 9시에 퇴근해요. 마트 배달은 한 3년 됐는데, 제게는 아주 소중한 일이에요. 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니까요. 바쁘고 힘들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도 있으니 뭐 견딜 만 한 셈이죠.

동네 분들이 저보고 열심히 산다고 하시지만, 저야 명륜동에 살 때도 비슷하게 일을 했으니 이젠 몸에 배어있어서 그냥 습관처럼 일을 하는 거지요. 그 정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니까, 제가 필요해서 하는 거지요. 열심히 산다고 칭찬해 주시면 오히려 부끄러운 걸요.


- 오늘처럼 비가 오면 신문 배달은 무척 힘드시겠어요?

제가 신문을 7~8년 돌렸거든요. 베테랑이죠, 하하. 제가 여러 신문을 다 돌리니까, 한 16~17종이 되거든요, 분류 잘 해서 오토바이에 싣고 다닌 세월만큼 이력이 쌓여서 그리 힘들지는 않아요. 어느 집에 어떤 신문이 들어간다는 것을 다 외우니까 눈 감고도 집어넣을 수 있지요. 성북동 꼭대기는 비탈이 심해서 오토바이가 못 올라가는 곳도 있어요. 그런 곳은 비오는 날에는 비닐로 싸고 포대에 넣어서 메고 끌고 올라가요. 눈이 오면 더 힘들고요, 비가 와도 차라리 여름이 낫지요. 눈이 오면 올라가기 힘이 들거든요.


- 배달 일을 하시면 많은 주민들을 만나시겠네요. 특별히 인상에 남는 분들이 있나요? 

인상에 남는 분이라…. 많이 만나긴 하지요. 새벽에 출근하면서 만나고, 저녁에 마트에서 또 만나는 분도 있고 한데, 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은 없네요. 다만 명륜동보다 성북동 분들이 더 인심이 좋긴 하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 주시곤 하지요. 그저 내가 열심히 움직이면 그만큼 대가가 있으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죠, 뭐.


- 어떤 때 보람을 많이 느끼시나요?

제가 지금 성북동에서 혼자 살고 있거든요. 아이들은 다 시골에 살고 있어요. 제가 2000년에 이혼을 하고 좀 방황을 했었죠. 그러다가 아이들이 눈에 밟혔어요. 쟤들이 무슨 죄가 있나, 그래서 정신 차리고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죠. 사업을 하다 실패를 하기도 했고, 신용불량이 되기도 했지만, 열심히 살아서 이제는 그것도 풀리고 잘 살고 있어요. 아이들도 잘 자라고,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도 건강하시니 더 바랄 게 없지요. 그게 보람이고 기쁨이지요.


- 요즘 성북동이 예전하고 많이 달라지고 있죠?

네, 그래요. 가게들도 많이 늘고, 새로 문을 여는 집도 많아졌지요. 주말이면 둘레길 가느라고 오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배달을 하다 보면 맛집이나 문화재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배달을 하니 골목골목, 마을 모든 곳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가르쳐주기도 편하고요. 제 직업 덕분에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거겠지요.


- 배달하시면 이곳저곳 다 다니시겠네요?

예, 부촌부터 중산층, 서민층 사는 곳까지 다 가죠. 성북동이 다른 동네보다 빈부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긴 하죠. 하지만 다 우리 마트의 고객분들이니 그런 것은 저하고 아무 상관이 없지요, 뭐. 저야 오시는 고객분들에게 친절하게 인사 잘 하고, 배달 잘 해 드리고 하면 되는 거니까요. 우리 마트 모든 직원들이 친절하게 모시려고 애쓰고 있고 저도 그렇게 하는 거지요.


- 그러시군요. 주위분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박희빈씨가 친절하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박희빈씨 목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기운이 샘솟는 것 같다고도 하시고요. 쉬실 때는 무얼 하시나요?

우리 신문 돌리는 후배들이나 지국장님과 햄버거 먹으러 가는 날도 있지요. 평일에 쉴 때는 한겨레 신문 명륜 지국장하고 만나 점심을 먹기도 하고, 영화 보기도 하고, 해 떨어지면 술도 한 잔 하기도 하지요.

혼자인 날은 목욕탕에 가고, 염색도 하는데, 사실 혼자 보내는 날은 허전해요. 대개는 나 오늘 쉰다고 문자 보내면 후배들이나 지국장 3,4명은 모여요. 같이 놀러도 가고 식사도 하고 그러지요. 다른 사람들 보내는 것처럼 휴일을 보내곤 해요.



-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어떤 목표를 세우고 계신가요?

우선 애들 대학 졸업시키고 나면 한 60 되겠지요. 우리 애들은 엄마 없이 조부모 밑에서 자라서 독립심이 강해요. 그래서 저도 마음 편히 아이들한테 얘기해요. 너희들 대학 졸업시키면 그때는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내가 그 때 되면 힘들어서 이 일도 할 수 없을 거다, 그런 얘기요. 아이들도 지들이 취직하면 아빠 용돈 드릴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속으론 고맙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누가 자식들한테 기대 살겠어요. 지들이나 잘 살면 되는 거지요. 아이들 잘 키우는 게 목표지요.

다행히 아이들 성격이 밝아서 힘을 내 일하고 있지요. 전화 너머 아이들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고, 그런 게 부모 아니겠어요. 저는 정말 아이들한테 고마워요.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도 뭐한데, 저처럼 열악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니…. 그래서 전화하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저 행복하게 성북동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잘 키우는 게 제 목표에요.


- 정말 열심히 사는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니 저도 힘이 솟는 것 같네요.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

장영철은 본지 편집위원이고 성북동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 때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을 함께 하기도 했으며, 성북구와 성북동의 문화를 가꾸는데 여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5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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