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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19. 2017

명사와 동사 사이의 아포리즘

[5호] 갤러리 17717 한장 스케치│글 정원철

노릇노릇프로젝트 보고전 (2015. 7. 20 ~ 7. 31)

명사와 동사 사이의 아포리즘


  나에겐 2009년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이래 서서히 증상이 심해지더니 어느덧 치매를 제대로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와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장에 휴직원을 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그냥 쉬는 안식년제도가 없고, 휴직기간 중 연구 과제를 해야만 하는 연구년 제도뿐이어서 휴직의 규정상 목적과 나의 본래 목적을 합치는 방법에 대한 약간의 전략이 필요했다. 올해 초 노릇노릇 프로젝트는 그런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노릇, 자식노릇, 남편노릇, 사위노릇, 선후배노릇, 친구노릇, 선생노릇, 제자노릇, 작가노릇, 전문가노릇 등 숨이 가쁠 정도로 많은 역할 중에서 언제나 최우선 순위였던 작가·교육자 노릇과 제일 뒷전으로 제쳐 온 자식노릇을 한데 압축하거나 뒤섞어 보려는 시도가 노릇노릇 프로젝트의 주된 얼개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문화예술교육이나 공동체예술과 관련하여 의뢰받는 특강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한 부분을 자주 인용해왔다.

영화의 주인공 미자에게 알츠하이머 진단이 내려지는 장면인데, 의사는 명사를 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동사가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증상의 진전을 예고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명사와 동사의 중요도에 대한 의사, 환자 사이의 대화내용에 기대어, 동물적 생존을 넘어서기 위해선 명사가 중요함을, 더 나아가 뻔한 상징으로서의 명사가 아니라 고유한 의미로 새롭게 생성되는 자기경험으로서의 명사가 중요함을, 그것을 위해 예술이 작동해야함을 얘기해왔던 것이다.


  영화 속 의사의 통보와도 같이 나의 어머니는 이미 명사를 상당부분 잊었다. 이제는 아들, 딸이라는 피붙이 명칭조차 친척이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명사를 잊어가는 어머니가 눈에 띄게 집착하는 것은 ‘때넘기지 않고 밥 먹기’, ‘개고양이 밥 주기’, ‘화초에 물주기’ 등, 이른바 동사적 삶이다. 캠핑카를 마련해 어머니가 좋아하는 장소를 옮겨 다니며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내려던 애초의 계획은 ‘여행’이라는 명사가 사라진 어머니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벽에 부닥쳤다. 동물적 생존에 충실한 동사적 삶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집’이기에 ‘여행’은 즐길만한 꺼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말과 행동, 생각 등 벌어진 일들에 대한 저장과 재생이 전혀 되지 않는 어머니에게 일상의 매 순간은 낯선 경험의 연속일 터였고,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몇 년째 장기여행 중인 피곤한 여행자인 셈이었다. ‘익숙하고 편안한 내 집’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동물적 귀소본능이었음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면서 둘만의 여행을 기반으로 했던 노릇노릇 프로젝트는 ‘떠남’에서 ‘머묾’으로 자연스레 변경되었다. 하지만 몸의 이동을 제한하는 정도의 조정으로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살고 있는 집에서 조차 집에 가야한다며 안절부절못하는 어머니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의 머묾’이었던 탓이다.


  흰 콩과 검은 콩이 뒤섞여 있는 노릇노릇키트는 어머니를 ‘어머니만의 집’으로 안내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흰 콩 검은 콩을 가려내 각각의 통에 담으면 되는 단순한 구조지만 웬만한 번민과 불안함은 얼씬도 못하게 하는, 특별한 힘을 지닌 도구이다. 노릇노릇키트의 마력에 빠져 껍질이 반들반들해질 정도로 콩 고르기를 반복하는 어머니는 하릴 없이 먹고 잠만 자는, 객식구 같은 불안과 초조로부터 금세 벗어난다.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마취제처럼 작용한 효과이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면 어머니는 묻는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니?” 갓난아이가 걸음마부터 시작해서 말을 배우고 세상살이를 학습해가는 것과 정확히 반대의 순서로 기억과 기능의 퇴화가 진행되는 것이 알츠하이머라면, 나는 어머니를 6~7세 어린아이로 대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기억이 퇴화된 상태와 경험 전의 상태는 같지 않았다. 소통해오던 언어를 잊음과 동시에 그 언어와 함께 자라온 총체적 감각 또한 사라진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 머릿속은 도통 해석이 불가한 혼란덩어리일 것임이 분명하다. 명사로 이해하던 세상에 대한 분별과 가치를 잊는다고 별안간 생존의 몸짓만 남은 상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셉 보이스를 극심한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던 반 데어 그린텐 형제 어머니의 “...살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자신을 살게 하는 것은, 여전히 소의 젖을 짜야하고 돼지에게 밥을 줘야하는 의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진술처럼 나의 어머니는 자신이 여전히 유용한 의무를 지닌 존재이기를 절실히 원한다. 늘 나는 현

명하고 적절한 대처를 못하고 노릇노릇키트를 내밀 뿐이다. 아쉽게도 노릇노릇키트는 그런 혼란상황을 이겨낼 정도의 ‘쓸모’를 생성하는 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끊임없이 손과 머리를 움직임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잊게 하는 지연의 도구일 뿐이다. 문득 나를 살게끔 하는 의무는 과연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 노릇 교육자 노릇, 소위 명분 있는 역할로 분주히 채우고 있는 내 삶 또한 검은 콩 흰 콩 고르기와 같은 마취효과에 취한 삶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고귀한 내 숙제는 홀대하는 어머니 속에 있다. 귀히 여기는 것은 홀대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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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철은 홍익미대 서양화과와 독일 카쎌대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13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300여회의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7~8년 전부터 ‘골목에서 주름잡기’, ‘통인시장-꿈해소 프로젝트’ 등 공동체미술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5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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