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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19. 2017

북정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연극연출가 유영봉

[5호] 성북동의 예술가들│인터뷰 · 정리 김현주

- 성북동에 언제부터 어떤 인연으로 살기 시작하셨나요?


  성북동에는 2002년부터 살았어요. 전라도 시골에서 살다 일본에서 10년 정도 유학생활을 하고 서울에 자리 잡은 첫 번째 동네입니다. 홍대 쪽으로 갈지 대학로로 갈지를 두고 고민을 했는데 결국 성북동으로 와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미술(공간연출)을 공부하고 개인 작업이냐 공동 작업이냐의 갈래에 섰었는데 공동 작업을 해야겠다 생각되어 연극을 택했죠. 성북동은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가 또 유명하다보니 좋더라고요. 성북동은 그렇게 우연히 흘러들어왔어요. 서울은 잘 몰랐지만 왠지 성북동에 ‘미래’나, ‘대안’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괴담은 거리예술로 출발을 했어요. 거리에서 게릴라적인 형태의 공연, 어떤 공간을 일시점거(?)하고 공연하는 것이 초반 작업의 형태였는데 공연을 하기 위한 사전단계에서 그 장소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그 지점이 공연보다 가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성북동, 내가 사는 곳에 눈을 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북동을 들여다보니 굉장히 좋은 것이 많았어요. 디자인적인 도시의 형태도 그랬고 특히 북정마을 같은 재개발되기 직전의 그런 집들, 지금은 다 허물어졌지만 성곽을 벽 삼아 집을 짓고 살던 그런 것들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는 생각을 하며 내가 살아야 되는 공간에 터를 잡는 과정에 활용을 했습니다. 본인들의 삶과 환경과의 관계를 반영해 스스로 본인들의 집을 디자인하는 것 같았고 그것이 올바른 디자인인 것 같았어요.

  그럼 내가 사는 집은 어떻게 지어야 되나 했을 때 저 뿐만 아니라 동료든 이웃이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성북동은 나름 디자인이 잘 되었습니다. 또 그 가치를 지켜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북동에서 지내면서 사람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제 스스로가 힐링이 되었던 거죠.(웃음)



- 그런 점에서 성북동은 본인에게 어떤 마을인가요?


  이어서 이야기하자면 제가 지역과 이웃에 관계를 안 맺었을 땐, 즉 성북동에 살면서도 관계를 안 맺으면 그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마을 사람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전에 언젠가 대학로나 극장만 왔다 갔다 했던 힘들었던 시절에 동네 산책을 하며 북정마을을 만났는데 그 곳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죠. 이웃과의 관계나 살아가는 방식이 여유 없이 사는 도시, 서울에서 찾아 보기 힘든 모습들이었어요. 모든 일은 자기가 사는 그 곳에서 일어나는데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직장도 마을 개념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직장의 디자인이 개선되어야 된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고 동료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되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성북동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로 영감을 얻고 실생활이나 일에 대한 공부가 되었고 이를 반영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 성북동의 좋은 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성북동에 지내면서 삶이나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는 것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모델이 되는 예술가도 많고. 예를 들면 이태준 선생님이나 만해 한용운 선생님처럼요. 그 장소에 가서 가만히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상상력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 이웃에 사는 사람이 동경하는 예술가인 경우도 많고요. 주민으로서 내가 여기 계속 살 것을 생각하노라면 마을에 대한 애정도 생기기 마련인데 다른 동네에 비해 그런 것이 강한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기 살면 굶어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일거리들이 생기기도 하고 외롭지 않은 거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줄 사람들도 있고요.



- 대표님 사시는 집이 봉 펜션이라고 주변 분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네, 전망이 진짜 좋아요.



- 성북동에서 추천할만한 본인만의 명소나 혹은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있을까요? 


  성북동은 역사적인 공간도 많고 그런 프로그램이나 사업들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지역의 역사적인 공간도 공간이지만 그보다 성북동 마을 잡지에 소개되었던 문방구나 이발소랄까, 주민들의 이야기랄까 그런 삶의 공간과 이야기들에 대해 관심이 더 많습니다. 추천할만한 장소는 너무 많은데 생활감이 느껴지는 그런 공간

을 좋아해요. 성북동은 박물관처럼 무언가 박제 화된 그런 곳보다 생활감이 넘치는 그런 곳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북정마을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그냥 공간에 들어와서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게 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북동 곳곳의 골목들을 좋아하는데 바깥 사람들과 공유하고 가꾸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꽃집의 화분을 길거리와 인근 상점 사람들과 함께 널어놓고 가꾸는 것처럼요. 성북동에는 추천할만한 곳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 성북동에 동네 친구들도 많이 계시죠? 다들 예술가들이신가요?


  대부분 예술 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처음에 이사 와서 떡을 돌렸었는데 아직도 옆집 아주머니와 음식도 나눠먹으며 살고 있어요. 마을에 있으니까 친구들의 연령대폭도 넓어지는 것 같아요. 60대이신 분들과 형님하면서 지내기도 하고(웃음).



- 앞으로는 성북동이 어떤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지요?


  여기서 오래 사셨던 원주민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젠트리피케이션 그런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원래 사시던 분들이 살기 좋게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분들의 삶과 엄청난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저처럼 여기가 좋아 외지에서 들어와 새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도 한데 그런 것에서 생기는 벽이랄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열려있는 곳, 그리고 같이 공유되어지는 것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마을의 평상처럼 혼자만이 것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같이 사용되고 나누게 되는 공간들, 정서적인 것들이 잘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성북동에서의 예술 활동


- 어떤 작업들을 주로 하시는지?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하자면 공유될만한 것들이 알고 보면 더 많을 수 있어요. ‘칠순잔치’라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 칠순잔치처럼 우리 인생의 통과의례들이 이벤트 홀 같은 연결고리가 없는 어떤 공간 같은데서 한번 하고 오는 식으로 진행을 하잖아요.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온 삶, 자신의 역사를 공유하고 스스로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그 가치를 발견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마을이나 누군가의 삶을 풍자, 예찬하며 우리 삶이 공연들을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것이 ‘너는 너고, 나는 나야’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 모습이야’라고 공유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또 그런 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고 공감하게 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 성북동에서는 어떤 예술 활동들을 하셨는지요?


 서울괴담으로 북정마을에서 작업을 했었는데 2012년도에 '기이한 마을버스'라는 공연을 시작으로 북정마을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이방인의 시선이 섞여있는 마을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 가장 많이 반영되었던 공연이었어요. 두 번째 작품이 '오정자'라는 가상의 인물이 북정마을의 가치들을 판타지처럼 풀어내는 '기이한 마을여행 오정자'(2013)라는 작품이 있었고요. 그 다음이 '북정마을 사람들'(2013)이 있었고, 또 '북정마을 블루스'(2014)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때부터 우리 극단이 더 이상 멋을 부리지 않기 시작하죠.(웃음). 거의

동네사람이 돼서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춤과 노래로 표현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관계'들이 작품 안에 녹아져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리고 7월에 공연하는 '칠순잔치'(2015)가 있는데 광복 70주년을 맞아 실제 북정마을의 해방둥이인 여섯 분의 칠순잔치를 연극으로 풀어냈어요. 그들의 70평생의 희로애락을 인생의 통과의례 칠순잔치로 풀어낸 거죠.



- 북정마을에서 많은 작업들을 주민들과 함께 진행하셨는데 주민들과 함께하면서 좋은 점이라든지 좋았던 기억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많죠. 우선 저희 극단 단원들에게 고마운 게 마을에 들어왔을 때 잠깐 공연하고 가는 사람의 입장으로 온 것이 아니라 적응이 안 되고 힘든 부분들을 스스로 마을에 관계를 쌓아가며 잘 해줬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지금이 행복한 시기인데요. 마을 사람들이 소품을 같이 만들어요. 소품이든 뭐든 같이 만듭니다. ‘기이한 마을여행 오정자’까진 마을 사람들의 참여가 일부였는데 ‘북정블루스’부터는 마을 분들이 먼저 기다리고 계세요.

처음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니까 마을사람들이 먼저 물어보셨었어요.

학생이냐고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심지어 저한테도 학생이냐고 물어보셨어요(웃음). 마을 평상 끝에 불편하게 엉덩이만 살짝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하던 것이 점점 더 가까이, 깊이 들어오고 올 때마다 밥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많은 주민 분들과 친해졌고 저희도 마을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배추 값이 폭락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밭을 갈아엎는 지방의 어느 배추밭을 보고 동네 사람들과 우르르 내려서가서 배추를 뽑아왔어요. 그리고 그것을 마을사람들과 나누고 김장도 같이 했는데 그 과정이 연극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과정과 관계 안에서 지혜를 배우게 되기도 하고요. 공연함에 있어서는 마을 주민들이 코디네이터 같은, 단원 같은 역할을 해주시기도 합니다.



지역공동체와 함께 꿈을 꾸는 예술가


- 앞으로도 성북동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저는 공연연출가이자 기획자이자 그리고 성북동

주민인데요. 주민을 갖다 붙이기엔 조금 미안한 것도 있더라고요. 당

분간은 공연보다 주민으로서 관계를 더 맺으며 지내고 싶어요. 북정

마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동네에서도 주민들이 같이 체험하

고 벽을 허무는 작업들도 하고 싶고요. 성북문화재단에서 하는 공유

성북 원탁회의처럼 성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활동가들이 모여 사업 제안이나 정보를 나누고 실행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거예

요. 그런 활동으로 지역의 다른 예술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편협한 사고를 가졌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해요. 그런 활동으로 힘을 받기도 하고 경쟁 구도 보다는 공유, 공존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많이 찾고 있어요. 결국은 공동체로 돌아오는 거죠.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 회복이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고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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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는 본지 편집위원이다. 성북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성북동 한 모퉁에에 터잡고 살아가는 주민이기도 하다. 성북동이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성북동 사람이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5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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