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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19. 2017

고즈넉한 성북동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북악하늘길

[5호] 성북동의 아름다운 길│글 오예주

코스 : 삼청각 ~ 숙정문안내소 ~ 숙정문(북대문) ~ 말바위 ~ 와룡공원 ~ 성북동쉼터(약 50분 소요)


  성북동에는 간송미술관, 심우장, 길상사, 최순우 옛집, 수연산방 등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많다.

그 중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한양도성 성곽길이다. 북악산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산책로는 등산보다는 산책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등산화가 아니라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친구끼리 또는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북악산의 공기와 분위기에 흠뻑 젖으면 지치고 힘든 일상의 피로가 말끔히 힐링되는 그런 곳이다.


  한양도성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천도를 위하여 먼저 궁궐과 경복궁 종묘 사직단을 건립한 다음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수축하기 시작한 서울성곽이다. 이 성곽은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고 숙정문(북대문), 흥인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의 순서로 축조하였다. 정도전은 전국에서 19만 7,400여명을 동원, 한양도성을 세우기 시작해 약 3개월 만에 완성하였고, 그 후 27년이 지나 다시 대대적인 보수 확장을 했는데, 세종 때인 1422년에 벌인 대공사에는 이 공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가 872명에 달했다고 하니 엄청난 희생이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세워진 서울성곽은 260년간 크게 훼손되는 일 없이 잘 버티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일부가 헐려 나갔고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서울의 평지 성곽이 모두 철거되었다가 현재 다시 복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성곽 길을 걷는 일은 단순한 걷기를 넘어선 그 무엇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일까? 성벽을 한축으로 집을 짓고 사는 북정마을을 볼 때나, 전망대에서 고요함이 있는 성북동을 바라볼 때 더욱 그렇다.



삼청각 ~ 숙정문


  소개하고자 하는 성북동 북악하늘 길 산책로는 먼저 삼청터널 건너기 전에 있는 삼청각 옆 숙정문으로 향하는 산책로에서 출발한다. 맑을 청이 세 개라는 뜻인 삼청각(三淸閣)은 이름 그대로 도심에서 가장 맑은 기운을 지닌 곳으로 7.4 남북공동성명 직후 남북 적십자 대표단의 만찬이 열렸던 역사적 장소이다. 현재는 서울시가 인수하여 한국의 풍요로운 전통문화와 정서를 경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산책길로 들어서서 상큼한 공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5분쯤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숙정문 안내소가 나온다. 숙정문에 가려면 이곳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여야 하며, 반드시 신분증을 제출하고 통행패찰을 교부받아 목에 걸고 휴대하여야 한다.

참고로 이 구간은 통행 제한시간도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출입할 수 없다.

여름철(3~10월)은 9:00~16:00, 겨울철(11~2월)은 10:00~15:00의 시간대에만 통행이 허용된다. 숙정문의 위치가 청와대가 있는 북악산 줄기에 있는데다가 최근까지 군사보호지역이었다가 최근에야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숙정문의 본래 이름은 숙지문(肅智門)이다. 한양도성에는 공자의 보편적 가치관이기도 한 인의예지신이라는 오상의 뜻에 따라 동서남북과 중앙의 상징적 건물에 각각 이름을 만들어 붙였었다.

북쪽에 해당한 글자가 지(智)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북대문에도 이 지(智)자를 사용하여야만 했었다.

그러나 왕의 통치를 위해 지(智)자 대신 ‘청(淸)“자를 쓰고 엄숙하다는 뜻을 가진 문자를 앞에 붙여 ”숙청문“이라 하였다가 어느 때인가 정(靖)자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숙정문의 안내판에 보면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어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 길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이미 태종 때부터 북은 음(陰), 남은 양(陽)이라는 음양설이 지배적이었고 이에 따라 북문인 숙정문은 풍수 지리적으로 음기가 강한 곳이어서 항상 문을 닫아 두었던 것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정월 대보름 전에 민가의 부녀자들이 세 번 숙정문에 가서 놀면 그 해의 액운이 없어진다.”라는 풍속이 있다고 전하고 있고,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에 보면 숙정문을 일러 “양주 북한산으로 통하는 숙정문 역시 지금 폐문하고 쓰지 않으니 언제부터 막았는지 알 수가 없다. 속전된 바로는 이 성문을 열어 두면 성 안에 상중하간지풍(桑中河間之風)이 불어댄다 하여 이를 폐했다 한다.”라고 되어 있다. 상중하간지풍이란 부녀자의 음풍, 곧 풍기문란을 뜻한다.

  앞서 말한 액땜과 관련하여 『이규태의 600년 서울』을 보면 “이 풍속은 비단 정월 보름에만 국한되지 않고 연중 내내 언제라도 세 번 왕래하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성안 여인들이 모여들면 북문은 꽃밭이 되고 꽃보고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라고하여 자연히 건달이 모여든다는 뜻으로 숙정문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문이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과 종묘의 주산인 응봉을 잇는 산마루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이 문을 열어 놓으면 사람들이 두 산을 밟고 다니게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문을 닫았고, 또 지형 상 이 문보다 창의문이나 혜화문을 통하여 서북쪽과 동북쪽 큰 길로 나가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말 바위 쉼터 ~ 성북동 쉼터


  성곽 길을 지나 말 바위 쉼터까지는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계단길이다. 성벽을 따라 잘 다듬어진 길을 걸어 말 바위 쉼터에 올라가노라면 성북동의 고즈넉한 아름다운 마을 모습에 그 모든 수고로움을 고스란히 잊게 되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말 바위 쉼터에서 고요하고 아름다운 성북동 마을의 정취와 북악산 능선 따라 이어져 있는 성곽과 시원한 바람에 마냥 취해 있다가 발길을 돌려 성북동 쉼터로 하산하면 된다.

  이제 곧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면 꼭 한번 북악하늘 길 산책로를 걸으면서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성북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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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주는 본지 편집위원이다. 성북동에서 살기도 했고,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성북동을 떠나 살지만, 여전히 성북동으로 돌아와 살 날을 꿈꾼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5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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