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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an 12. 2018

다시, 인권도시 성북을 기대하며

지난 2년 동안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가 운영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 '지난 2년'은 2016. 11. 30 발행일 기준입니다. 웹진으로 재발행된 2018. 1. 12 현재 기준으로는 3년도 더 지났습니다.


글 | 정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장)



매주 금요일이 되면 성북구 동소문동에 위치한 띵동 사무실을 방문합니다. 상담을 체크하고, 회의도 하고,

가끔은 사무실을 방문한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밥을 함께 먹기도 합니다. 천장에서 무지개 빛이 내리는 그곳

에 들어서면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지만, 20평 남짓한 그 공간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온몸에 긴장감이 스며

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보문역보다는 한성대입구역에 내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보문역에 내려서 올 때는 꼭 성북구청 앞

을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날이면 구청 앞 편의점 근처에서 담배를 하나 피우고 남은 길을 마저 가기

도 합니다. 마음을 다잡는 거지요.

지금은 조용하기만 한 구청 앞 정문은 2년 전 ‘인권도시’ 성북이 시험대에 오르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구청

앞은, 이곳이 동성애 도시가 되는 것을 막겠다며 소리 지르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선정된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사업이 성북에

서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주민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갈등의 현장에서 ‘인권도시’ 성북의 약속

은 무기력하기만 했고, 구청은 오히려 인권의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에게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지금도 그 앞

을 지나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뱉던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이 들 때면,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그곳을 지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인권도시 성북에서 벌어진 성소수자 인권 잔혹사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표준인권조례안을 제시한 이후, 인권조례가 우후죽순 제정

되었습니다. 인권증진이 국가의 책무라고 말할 때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은 분명 반가운 일

이지만 유명무실하게 방치되어 있는 곳도 많아 인권전문가들은 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과정부터 주민들과 소

통하고 참여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물론 인권조례가 제정된다고 지역 주민들의 인권의식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거나,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알아가거나, 함께 살아가는 주민으로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 경험을 덧붙이자면 서울시 인권기본조례가 제정된 직후 정책 워크숍(2012년 7월24일 개최)에 찾아가 발언을 하거나, 성북주민인권선언이 선포되는 자리(2013년 12월10일 개최)에 박수를 치기 위해 직접 참여하거나, 서울시 인권정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간담회 자리에 여러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었지만 인권도시에서 벌어진 성소수자 인권 잔혹사를 경험하면서부터는 인권도시의 ‘인권’에 의문이 생겼고, 각 도시들이 원하는 인권이 무엇이고 인권도시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 사업 예산이 불용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성북구 주민에 의해 제안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이었습니다.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상담매뉴얼을 제작하여 학교와 지역에 보급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높이는 캠페인을 지역에서 진행하는 것이 사업 내용의 전부입니다. 5천 9백만 원이라는 국가 예산이 성북에 배정되어 연내에 사업을 진행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고 끝내 불발되었습니다.


2014년 12월31일 사업예산이 최종 불용되기 전까지 약 1년 간, 이 사업의 추진을 위해 사업제안자와 함께 성북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북구청장과 담당부서로부터 이 사업 때문에 다른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민원을 받는다는 하소연을 수차례 들어야 했고, 담당을 맡지 않으려고 이 사업을 서로 미루는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성소수자와 무지개라는 단어가 모두 삭제된 사업 변경안을 제안받기도 하였고, 심지어 청소년이라는 단어마저 삭제된 사업계획이 제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으로부터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직 실태조사 결과가 없기 때문에”, “단 한 건의 상담도 들어온 적이 없어서”,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등 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변명 같은 이유를 무수히도 들어야 했습니다. 예산이 불용되고 나서 성북구가 민원에 대응한 답변을 보면 보다 더 명확해집니다. 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거친 주민참여예산사업도 성소수자 혐오선동의 압력이라면 충분히 무시되고 엎어질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충분한시간들이었습니다.

2015년 한 해는 이 사건의 후속조치를 위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박경신)가 구성되어 참여했고, 특별위원회는 후속조치 이행을 권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북구 인권위원회는 2015년 5월27일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 예산 불용 사태에 대한 권고 결정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북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2015 문화다양성 확산을 무지개다리 사업」의 일환으로 성북구 청소년 성소수자 실태조사가 진행될 수 있음을 성북구 인권센터를 통해 전달받았습니다.


2015년 9월 성북문화재단과 연구계약을 체결한 이후 10월부터 청소년 성소수자(성북지역 중심) 인터뷰 참여자 모집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기금을 받을 때의 통상의 관례 상 지원처인 성북문화재단을 명기하였습니다. 홍보를 시작하자마자 성북문화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웹 홍보물에 성북문화재단 지원이 표기되어 있어 자신들이 교회 측으로부터 민원을 받고 있다고 저에게 항의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결국 홍보를 중단했고, 연구팀과 성북문화재단 관계자, 성북구 인권센터장 등이 참여하는 미팅 자리에서 이 연구가 계속 진행될 수 있을지 논의하였습니다. 성북문화재단에서는 이 연구를 지원한다는 사실이 연구의 진행과정뿐만 아니라 진행 후에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연구팀에서는 그 요구가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것으로 판단하여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2015년 11월 연구사업 중도포기 계약 요청서를 성북문화재단에 전달하였고, 지원금도 모두 반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성북구 인권위원회 권고에 대한 이행은 여전히 미적지근합니다.


성소수자 인권 잔혹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이 될 것처럼 추진하다 혐오라는 걸림돌을 만났을 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결국 사업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주장과 난동을 찬반 여론의 ‘민원’으로 판단하면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인권도시를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문제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인권선언, 인권헌장이라도 더 제정해보려고 한 지역에서 ‘갈등’이 생겼고, 혐오세력의 난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로 성소수자 인권에 양보를 강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잔혹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다시 담을 수는 없겠지만 책임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의 존엄을 인권이라는 그릇에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혐오라는 암초를 만났고 이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덜어내야 하는 존엄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야 그릇을 깨뜨리지 않고 담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겠지만, 정작 작은 그릇을 큰 그릇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이 함께하는 인권도시를 꿈꾸며

차별은 더 많이 발견되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인권도시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숨겨야하는 차별 요소와 유보해야 하는 존엄을 더많이 확인하는 듯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가 운영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낯설게 여겨졌던 성소수자 인권이 마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주민들이 차별의 개념에 눈을 뜨고, 다양성의 가치가 인권도시의 기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적어도 사상누각과 같은 인권도시는 되지 않았을 거라고, 주민들이 인권도시의 기둥을 튼튼하게 붙잡고 있으면서 혐오와 차별의 흔들림에도 꺾이지 않게 버티고 또 버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경청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한국 최초의 인권도시를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차별은 더 많이 발견되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인권도시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숨겨야 하는 차별 요소와 유보해야 하는 존엄을 더 많이 확인하는 듯합니다. 혐오세력이 보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조직되고 있고, 소위 전문가를 앞세워 활개를 치다 보니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기 더욱 어려운 시절이 되었습니다. 아마 성소수자 인권이 언급되지 않았더라면 ‘인권도시’는 흠집 없이 조용히 추진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으니까”, “혐오세력을 피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게”와 같은 단서가 늘 따라붙습니다. 시급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도 없고,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성소수자 주민을 인권에서 배제시키는 지방정부의 태도는 한 마디로 비겁합니다. 성북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권도시는 혐오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서 배제되어 온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시민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수립할 책임이 있습니다. 인권도시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성북 주민들이 성소수자 인권 잔혹사를 기억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더할 때 인권의 힘도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성북주민인권선언문에 언급된 “성북구는 성소수자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 살아 숨 쉴 수 있게, 다시 ‘인권도시’ 성북을 꿈꿔봅니다.


보문역을 나와서 성북구청 정문 앞을 지날 때 성소수자 인권의 편에 서는 성북구 주민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정욜은 성북구에 위치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운영위원장이고 성북 성소수자 주민공동체 ‘성북마을무지개’ 회원이며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 편집위원이다. 띵동 활동 덕분에 성북구의 생활권자 주민으로서 지역과 관계하고 있다. 한 때 성북에 적을 두고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성북구와 다시 연을 맺게 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 <여기 우리 살誌>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지난 2016. 11. 30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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