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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02. 2016

야생화를 닮은 성북동 꽃집 언니

[7호] 주민 인터뷰 - 해동꽃농원 김은주 씨 | 김현주 · 오예주

  노루오줌, 패랭이꽃, 바늘꽃, 쑥부쟁이, 원추리, 도망국, 양지꽃, 금계국, 병꽃… 성북동 길을 걷다보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꽃들을 마주하게 된다. 성북동길 가게들과 꽃을 나누며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어주는 ‘성북동 꽃집 언니’ 해동꽃농원 김은주 씨를 만나보자.



  성북동에 언제부터 어떤 인연으로 살게 되었나요?


  성북동으로 온 지는 14년 정도 되었어요. 성북동 인근인 서울과학고 근처에서 남편이 총각 때 꽃집을 했었는데 결혼하고 대전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몇몇 동네를 거쳐 성북동에 자리 잡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사업들도 해보았지만 꽃과 나무를 좋아했던 남편은 꽃집이 길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이렇게 정착하게 되었어요.


  남편은 충남 서천에서 자랐는데 서울에서만 살았던 저는 시집가면서 방문한 시댁 마을에 꽃밭과 연못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풍경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남편이 어릴 때부터 꽃과 나무를 보고 자란 것이 이렇게 직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무뚝뚝한 남자이지만 꽃만 보면 연신 아름답다는 말을 내뱉는, 꽃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사람이에요. 여기 가게는 남편이 이 성북동 길을 한 달 이상 지켜보고 결정한 곳이에요. 지금은 아흔이 넘으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 있고, 친정 부모님도 성북동에서 이웃하며 살고 계세요.



  성북동에 자리 잡으면서 이 마을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은 어땠나요?


  성북동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은 번화한 도시 속에 시골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그런 마을이었어요. 옛날 찻집, 작은 서점, 퀼트 가게 등 작은 가게들과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죠.



  성북동에서 지내면서 어떤 점들이 좋았나요?


  처음에 성북동에서 꽃집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어요.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신랑을 따라 시작한 일이라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여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이웃 분들이 울보라고 했었어요.(웃음) 옆가게에서 슈퍼를 하셨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지금도 어머니처럼 지내고 있어요. 처음에 성북동에 자리 잡을 때부터 지켜보시며 걱정도 많이 해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죠.

  처음에는 길거리에 있는 꽃들을 보면서 인도를 점유하는 거 아니냐는 민원도 들어오고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불편하게 바라보시는 것보다 꽃이 없으면 허전해하시고 기다려주시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흙을 만지고 꽃을 다루면서 몸은 고되지만 개인적으로는 건강도 좋아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게 되었어요. 함께 꽃을 좋아해주는 이웃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서로 많이 이해해주고 응원해준 이웃들 덕분이에요.



  이웃 가게와 함께 꽃을 나누시는 것도 인상적인데요.


  네, 다들 좋으신 분들이에요. 흔쾌히 함께해주시고 이해해주시고요. 어찌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개인의 영리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주민분들도 그렇고 산책하러 오는 외지인 분들도 길거리와 가게 앞마다 꽃이 있는걸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하고 좋아하셔서 뿌듯해요.


  쓰레기를 버리던 자리에 꽃을 한번 심어보자고 주민센터 직원과 같이 상의하고 재작년부터 무단투기지역을 꽃으로 가꾸기 시작했는데, 이후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꽃이 들어올 때마다 일로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꽃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아름다운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 보람도 되고 힘이 되는 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밤에도 오가다보면 길거리에 내놓인 꽃들을 보게 되는데, 보는 사람은 좋지만 불안하진 않나요?


  물론 분실되는 것도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감안하고 꽃을 두긴 했어도, 주변 분들에게 새벽에 어떤 외제차가 화분들을 몇 판 쓸어가더라는 제보를 듣게 되거나 하면 금전적인 손해도 손해이지만 씁쓸하고 속이 상하기도 했죠. 그래도 초반에는 그렇게 분실되는 것이 많이 있었지만 오래 하다 보니 이해해주시고 또 이웃 분들이 서로 봐주기도 하시고 챙겨주시기도 하셔서인지 요즘은 분실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아요. 이제는 손님들도 가게에 제가 없을 때 꽃을 가져가게 되면 메모해 두시고 다음날 다시 오시거나 새벽에 가져가시게 되면 돈을 문 밑으로 밀어놓고 가시기도 하고 그래요.


해동꽃농원 앞 인도, 성북동길


  꽃집 손님 가운데 기억에 남는 단골 주민 분들이 계신가요?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꽃집을 찾으시는 분들이 다양해요. 다양한 직업,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을 만나게 되고 동네 사시는 사장님, 회장님 이런 분들도 많이 찾으시는데, 꽃을 대할 때만큼은 다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많이 가졌건 가지지 않았건, 많이 배웠건 배우지 않았건, 우리 집은 이웃들이나 손님들이나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들도 늘어놓는 사랑방 같다고들 하세요.


  물론 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분도 계신데, 꽃을 아주 좋아하시던 60대 초반 정도의 중년 신사였어요. 매년 봄마다 거르지 않고 항상 오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해는 오시지 않아 많이 궁금해 했어요. 이듬해 조금 야위신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이 가꾼 아름다운 정원을 일부러 저에게 보여주시기도 했었는데 그 이 후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고, 봄 지나고 가을에 사모님을 통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흐르더라고요.


  그리고 또 장미를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 본인 허리를 훌쩍 넘는 커다란 장미목을 사서 시골집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간다는, 기특한 젊은 여학생도 기억에 남아요. 그 마음이 너무 예뻐 덤으로 더 주기도 했어요.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드린다고 꽃을 사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성북동에 사는 젊은이들은 생각도 깊고 마음씨도 고운 것 같아요.(웃음)



  주로 다루시는 종류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다른 꽃집과는 달리 나무와 야생화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요. 들꽃을 좋아해서 많이 가져다 놓는데 처음에는 이름 외우느라 힘들었어요. 워낙 종류가 많아 사실 모르는 것도 많아요.(웃음) 자연스럽게 주변과 잘 어울리는 그런 들꽃들을 좋아해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꽃을 피우는 게 기특하고 예쁘잖아요. 여기 이 터가 그런 것 같아요. 내 정원에 온 느낌처럼 편안해요. 정돈되고 인위적인 것보다 꾸미지 않아도 잘 어우러지고, 그래서 저희 가게도 사람들이 편안해하고 자유롭게 드나드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꽃이나 요즘 5~6월에 추천해주실 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수국을 좋아해요. 꽃말이 외로운 꽃이라 하는데 수국이 좋고, 코스모스도 좋아해요. 연애할 적에 남편과 장흥에서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걸은 적이 있는데 기억에 많이 남아요. 지금 6월 초에 추천할만한 꽃은 ‘바늘꽃’이라는 야생화인데 이 시기에 들판에 하늘하늘 피는 것이 무척 아름다운 꽃이에요.



  꽃구경은 안 가시나요?


  처음에는 바람 쐬러 나가고 싶고 그랬는데 여기가 공기도 좋잖아요. 꽃도 많고 여기 있는 것이 편하고 좋더라고요. 이제는 나가면 오히려 피곤하기도 하고 꽃을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요.


  꽃집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성격도 밝아지고 건강도 좋아졌어요. 요즘은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하면서 집을 나서요. 남편도 밖에서 일하고 오는데도 꼭 본인이 밤마다 화분에 물을 줘요. 그 시간이 꽃을 좋아하는 그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이 참 좋다고 하더라고요. 쉬는 날 없이 매일 가게를 여는데 여기 나와 있는 시간이 저에게는 더 휴식 시간이기도 해요. 사람들도 만나고 즐겁고 여기가 더 편안하더라고요.



  앞으로의 성북동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주민들이 나와 함께 만날 수 있는 쉼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도심처럼 빌딩들이 들어서고 개발이 된다면 조금 아쉬울 것 같아요. 성북동에는 한옥도 많고, 개발이 되더라도 자연스럽고 정겨운 원래 있던 정취를 잘 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끝]




김현주는 본지 편집위원이다. 성북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성북동 한 모퉁이에 터 잡고 살아가는 주민이기도 하다. 성북동이 성북동다움을 간직하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성북동 사람이다.


오예주는 본지 편집위원으로, 창간호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해왔다. 성북동에 살기도 했고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성북동이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로 남기를 바라는 성북동 사람이다. 지금은 성북동에 살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꿈꾸고 있다.



성북동천은 성북동 주민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법인·단체, 비영리조직, 전문가 및 예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주민 공동체로, 성북동에서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진행, 교육·문화 프로그램 기획, 지역 내 공론의 장 마련 등 마을공동체 형성과 주민간 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성북동천 내 마을잡지 편집위원회가 발행하는 마을잡지이며, 7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 주민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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