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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May 13. 2017

28세 성북동 주민 오창민 씨의 세 번째 누리마실

[7호] 주민 기고 | 글 오창민 · 사진 누리마실친구들

  2016년 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이 끝났다. 2013년 나의 첫 누리마실에서부터 2016년 나의 세 번째 누리마실까지, 이 축제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2013 성북문화재단 인턴, 첫 번째 누리마실


  누리마실과 나와의 첫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강남구에 살았었는데, 4월에 성북문화재단 인턴으로 채용되고 성북구로 와서 맨 처음 배정 받은 업무가 바로 누리마실이었다. 첫 직장인데다 성북구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그냥 인터넷 홍보랑 동네에 포스터 붙이는 일 정도였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은 누리마실 기획 회의에서 축제 사회자로 수지냐 아이유냐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으나 예산 안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던 에피소드다. (결국 사회자로 최종 섭외됐던 사람은 진짜 사나이로 주가가 올라가기 전의 샘 해밍턴이었다.) 어쨌건, 그해 누리마실 행사 당일 내가 맡게 된 업무는 주차 관리였는데, 사람들의 무개념 주차로 하루 종일 고통 받았다. 어떤 분은 주차를 해 놓고 북한산 등반을 가시는 바람에, 행사가 끝나고도 세 시간이 넘게 나타나지 않아 마지막까지 나

를 힘들게 하였다.

  이렇게만 보면 사실 첫 누리마실에 대한 기억에 그리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축제의 모든 마무리가 끝나고 바로그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는 축제 뒷풀이로 근처 막걸리 집에 가게 되었다. 당시 술을 배운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막걸리가 어떤 술인지도 모르고 맛있다며 벌컥벌컥 들이켰고, 만취한 상태로 강남행 마지막 버스를 탔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한 공원 벤치에서 누워 자던 나를 경찰이 발견한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또 거기가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었다. 5월 말이라 많이 춥지 않았고 때마침 순찰을 돌던 경찰이 나를 발견해주었으니 망정이지, 큰일 치를 뻔했다.


  그 길로 나는 바로 성북구에 있는 집을 알아보게 되었고 6월 초에 바로 동선동에 위치한 원룸으로 이사했다. 이렇게 성북구의 주민이 되었다.




  2015 협동조합 성북신나, 두 번째 누리마실


  그 이후부터 2015년 두 번째 누리마실 참가 이전까지 나에게는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성북문화재단 인턴 기간이 끝나고 함께 인턴을 했던 10명의 동료들이 모여 2014년 2월 협동조합 성북신나를 창립한 것이다. ‘문화를 통한 지역재생과 건강한 청년일자리 생태계 만들기’라는 미션으로 지역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전통시장 활성화, 교육, 미디어, 네트워킹 등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갔다. 집도, 처음의 원룸을 떠나 현재 살고 있는 성북동의 투룸 빌라로 이사를 했다. 본격적인 성북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첫 해와는 달리 내가 어엿한 성북 지역의 일원으로 누리마실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2015년에는 협동조합 성북신나의 이름으로 아이들과 함께 누리마실 뱃지를 만드는 체험부스를 열었다. 내 집 앞에서 진행되는 행사가 되다 보니 당일 날에도 별 부담 없이 언덕을 따라 쓰윽 내려오기만 하면 되었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여유 있게 뒷풀이까지 마친 뒤 다시 쓰윽 집에 걸어 올라가면 되는 편안함이 있었다. 어릴 적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열렸던 야시장을 구경하듯이 말이다. 느긋하게 축제 구경을 하다 보면 매일 지나다니면서 보는 일상적 풍경과 다른 동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 동네축제의 특별함이 배가 된다.




  2016 성북청년회, 세 번째 누리마실


  그리고 올해로 세 번째 누리마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2015년에 5만명이 넘게 몰려든 방문객으로 인해 음식 부스의 수입이 꽤 짭짤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올해는 음식 부스로 참여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2014년 말부터 지역 안에서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성북청년회’라는 모임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공동기금도 마련하고 다 함께 특별한 경험도 할 겸, 힘을 모아 음식부스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세계 맥주 축제도 함께 진행된다기에, 감자튀김집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한 멤버의 조언으로 우리의 주메뉴는 칠리 나초와 소시지로 결정이 되었다. 난생 처음 코스트코에 가서 장도 보고, 계산기로 예상 수익도 두드려보며 나름 재미있게 준비했던 것 같다. 칠리 나초는 결국 좀 남았지만 준비해갔던 소시지는 마감 전에 다 팔았다. 정산을 마치고 나니 꿈꾸었던 것만큼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고생한 보람값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돈이었다. 이날 벌어들인 수익은 지역에서 모두 술과 음식으로 탕진하여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기로 멤버들 간에 합의를 보았다.


  장사하느라 축제 구경은 거의 못했지만 3년 전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외지인 혹은 주변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인사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엄청 많아졌고, 이제는 확실히 성북동이 ‘우리 동네’처럼 느껴진다. 더불어 축제 자체도 예년보다 더 풍성해지고 있는 것 같다. 지역 안에서 축제와 내가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내년 축제에는 아무 것도 안하고 온전히 축제를 즐겨 볼 계획이다. 집에서 빈둥거리다 슬리퍼 끌고 내려와 음식도 사 먹고, 공연도 구경하고, 체험 부스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살아가는데 있어 기다려지는 하루가 있다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인 것 같다.



※ 사진제공 : 누리마실친구들



오창민은 4년차 성북동 주민이다. 참나무 닭나라 라인의 야경 좋은 언덕배기 빌라에 살고 있다. 지역을 신나게 하는 작은 연구소, 협동조합 성북신나에서 일하고 있다. 동네에서 맥주 마시며 노닥거리는 것을 좋아하며, 단골집은 성북동 꿀맛식당과 삼선동 sub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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