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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May 15. 2017

약속을 찍어 드립니다 - 우리동內 사진관

[7호·특집] 대학과 지역사회의 만남 | 글 이현정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대학교 생활이 벌써 4년째, 최대학점을 꽉 채워서 매 학기를 보내다가 올해는 12학점이라는 다소 적은(?)학점으로 학기를 시작하니 좋기도, 씁쓸하기도 한 마음이었다. 몇 개 되지 않는 수업 중, 대학생활 4학년 마지막 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 수업은 ‘문화산업비즈니스’라는 전공과목이다. 강의 소개를 들을 때는 이 수업에서 어떤 활동을 하게 될 것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마을과 관련된 활동을 한다는 정도? 그렇기 때문에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성북동’ 답사를 다녀오고 난 뒤부터 내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성북동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동네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좀 더 정겨웠다고 해야 할까? ‘예스러운 공간의 멋’이 느껴지는 그런 동네였다. 우리는 그런 성북동이라는 지역을 잘 활용해보고 싶었고, 그리하여 기획하게 된 것이 ‘리마인드 웨딩사진’ 사업이었다.


  언젠가 왜 엄마는 결혼사진을 보여주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하도 옛날에 찍어서 화장도 옷도 촌스러워 꺼내보기 싫다고 하셨다. 이때부터 나는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에는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뜬금없이 지역과 리마인드 웨딩사진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사업의 목표를 찾았다.


  ‘약속을 찍어드립니다’는 우리 동네, 그리고 추억의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주요 사업이다. 우리가 살아온 동네는 화려하거나 세련되진 않지만 자신의 반려자 또는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함께 한 시간과 추억이 깃든 의미 있는 장소와 공간에서 사진기 앞에 선 부부는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게 된다. 부부의 사진 마지막 컷은 서로의 약속 사진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약속일지는 우리들은 모르지만 손을 건 두 분에게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자 앞으로의 행복한 나날을 위한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택 옥상에서 촬영한 웨딩 사진


  이 사업은 기획할 때부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쳐 사업의 목표와 방향성을 잡았다. 큰 산을 하나 넘어온 것 같았고 이제 더 이상의 산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업의 ‘사’자도 모르는 대학생의 큰 착각이었다. 사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더 크고 험준한 산이었다. 사진 촬영을 하는데 필요한 소품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진작가 섭외, 참여 부부 섭외까지 난생 처음해보는 것들뿐이었지만, 다행히 이 활동을 지원하는 마을 매니저님의 협력과 도움으로 하나씩 해결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는 드디어, 이 사업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참여 부부와의 만남이 있었다.


  우리 사업의 첫 번째 모델이 되어주신 분들은 ‘성북동천’의 회원 중 한 분이셨다. 우리는 사진 속에 부부의 스토리를 담기 위해 촬영 전에 사전 미팅을 진행했다. 대학생들이 좋은 뜻을 갖고 이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승낙해주신 두 분은 예상대로 너무 따뜻하고 인자하셨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간단히 우리 사업에 대한 소개를 한 뒤, 준비해 간 질문지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부는 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는다고 말씀하셨다. 첫 만남은, 어찌 보면 식상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정말 드라마 같았다. 부산의 한 다방에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 다른 사람과 서로 선을 보다 중매를 해주신 할머니에 의해 맞선 상대가 바뀌었고 그것이 두 분의 인연으로 연결되었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꺼내는 처음에는 잠시 쑥스러워 하시던 아버님과 어머님의 표정이 점점 옛 추억에 젖어 상기되었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자연스레 두 분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인터뷰 말미에 아버님은 우리를 보며 어머님과 결혼을 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님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었고 채 한 줄도 되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어머님을 향한 고마움과 사랑이 느껴지는 결코 짧지 않은 한 마디였다. 멋진 남편을 둔 어머님이 부럽기도 하고,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잠시 먹먹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인터뷰는 잘 마무리 되었고, 촬영일은 6월 4일 토요일로 정해졌다.


창경궁에서 촬영한 웨딩 사진


  당일 아침, 촬영을 하러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날씨 걱정부터 시작해 의상은 잘 어울릴지, 소품과의 조화는 자연스러울지, 우리가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가 줄지에 대한 걱정까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때까지 했던 모든 걱정들은 사라졌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전문 모델들 못지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매순간을 즐기셨다. 얼마나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던지 촬영은 처음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끝이 났다.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의 시간은 두 분의 사진 촬영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아버님은 우리와의 20년 뒤 재촬영을 기약하자는 농담과 함께 우리의 사업을 지지해 주시고 많은 조언을 주셨다. 어머님은 솔직하게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촬영을 해보니 30년 결혼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형식적인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님 어머님의 미소를 보며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우리의 지난 3개월의 노력에 대한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다. 집에 가는 길 팀원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팀원들도 그 순간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우리의 작은 생각이 모여 작은 계기가 되고, 그 계기가 작은 실천이 되어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끝으로 우리들의 사업이, 참여하는 부부나 준비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이기에 서툴고, 실수도 많았지만 이런 우리를 도와주는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이제는 나의 대학시절 기억 중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 성북동. 이번 학기는 4학년의 종강이라 특별했고, 성북동과 함께여서 더 특별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이 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현정은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4학년 학생이다. 같은 과 학우 이윤지, 서혜린과 함께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대학과 지역사회 연계’ 사업의 일환으로 성북동 주민공동체 성북동천과 협업하여 ‘성북동 리마인드 웨딩’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이 사업을 통해 동네 주민과 협력하여 지역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의 소회를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에 기고하였다.


※ ‘성북동 리마인드 웨딩’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대학과 지역사회 연계사업의 일환으로 성북동 주민공동체 성북동천과 문화공간 17717이 코디네이터로 결합하여 진행되었으며, 사진작가 박주리(@joooorish), 헤어 및 메이크업 이성미(@artit_mi), 의상디자인 로드한복옌 김예은(@road_yen), 소품 초콜릿 코스모스에서 협찬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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