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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May 18. 2017

보리소골에서의 춘야 소회

[7호] 성북동천 회원 이야기 | 글 박진하 · 그림 김철우

  보리소골에서의 춘야 소회 : 성북동천 회원들 최 시인의 고향, 강원 안흥에 가다  


  성북동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최성수 시인은 몇 년 전부터 그의 고향, ‘강원 안흥’에 집을 짓고 자리 잡고 있었다. 드디어는 주소지마저도 그곳으로 옮겨 그 마을의 청년회원이 되었다. 산촌에서는 세월이 거꾸로 되돌아가는지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한 사람도 청년회원 자격을 부여한다고 한다. 이렇게 회춘하신 젊은 청춘, 최 시인께서 편집위원들을 집으로 초청하였다.


  때는 6월 5일, 일요일 밤이다. 저녁 9시에 식당영업을 마치고 출발했다. 일행은 우리 부부와 전 박사, 이상 3명이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차량 정체도 거의 없었다. 호법을 지나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니 차량이 다소 많아진다. 드디어 강원도 안흥에 도착했다. 도로 폭은 좁아지고 내비게이션은 도착지에 도착했다고 알려 준다. 그러나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래 최 선생께 전화를 드렸더니 좌측으로 오다가 그리고 우회전하여 오면 된다고 한다. 밖은 어둡고 밤은 깊었다. 벌써 자정이 넘었던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가다 보면 아무리 봐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결국에는 처음 위치로 돌아왔고 마중 나온 차량의 안내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도중에 보리소골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면사무소에서 이 아름다운 동네 명을 보리수골로 개명하려 했단다. 그들은 보리수라는 나무 명에서 이 이름이 유래되었다 생각하고 바꾸려 했던 것이다. 사실 보리와 물이 많은 동네라 하여 보리소골이라 불렀던 것이란다. 이튿 날 나올 때보니 소금소골이라는 예쁜 이름도 보인다.

먼저 도착해 일찍이 자리를 시작했던 사람들까지, 드디어 성원이 되었다. 거실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침실을 배치한 최 시인의 집에는 책으로 가득하다. 대부분의 책들이 문학서적들이었지만 다른 전문 서적도 많이 꽂혀 있어 그의 문학적 깊이가 느껴졌다. 기다리던 봄날의 저녁 회식(춘야 소회, 春夜 小會)시간이 되었다. 겨우 술 몇 병만 가지고 온 우리를 맞이한 것은 자연 밥상이다. 두릅으로 만든 것만도 3가지 종류이다. 시원한 두릅김치, 그리고 절임으로 만든 것 등이 담백하고 맛깔스럽다. 그 지방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와 쌈도 있었다. 상추는 큰 얼굴을 덮을 만큼 크다. 음식을 장만한 것을 차려 내어 놓고 고기를 구워내느라 가장 바쁘신 분은 안주인이다.


  구운 돼지고기 한 점을 상추에 올려놓고 두릅 절임을 곁들인다. 입을 한껏 벌려 쌈을 먹으면 강원의 진미가 입 속에 가득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빈 막걸리 병은 쌓여가고 우리의 이야기는 깊어만 간다. 하루의 피로가 쌓여 졸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앉아서 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김 대표와 총무는 벌써 출발했다 한다. 긴 연휴 끝이라 차량 정체가 심할까봐 일찍 출발했다한다. 나중에 들으니 초고속으로 달려 최단시간에 귀경할 수 있었단다.


최성수 회원의 강원도 안흥 소재 자택 전경 | 그림 김철우


  우린 최 시인의 문학적인 원천인 고향 길 산책으로 아침일정을 시작했다. 집 앞 왼편으로 함박꽃이, 오른쪽으로는 장미꽃이 피어있다. 골짜기를 따라 오르니 산책길이 잘 정돈되어 있다. 왼쪽 산길을 따라 오른다. 그 반대편으로는 커다란 무밭이 펼쳐진다.


  돌아오니 어젯밤에 먹던 소시지와 여러 재료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가 기다린다. 콩을 비롯한 여러 것을 넣은 잡곡밥은 다른 반찬과 썩 잘 어울린다. 이어 나온 것은 최 선생께서 직접 갈고 내린 커피였다. 다들 한 잔씩 들고 집 앞 베란다로 나간다. 검정색 비닐 천으로 썬 루프를 쳐 그늘 막을 만들고 그 밑으로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다. 집앞 전경이 그만이다. 도로보다 다소 높게 조성된 둔덕 건너편 밭 뒤로 낙엽송이 식재된 앞산이 보인다. 커다란 군락을 이룬 숲이 바람결에 따라 춤을 추듯 움직인다. 그리고 집 앞 가로수로 심어진 느티나무는 이사 올 때 심은 것이란다. 그때도 제법 컸지만 지금은 더위를 식혀줄 만큼 큰 둥구나무가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커피 한잔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흘렀다.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 정오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일어나 출발하려는데 지하수 원천지에 새겨진 한시 한수가 눈에 띤다. 집에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은 지하 암반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란다. 그 시는 최 선생의 아버님이 쓰신 작품으로 “천도시(泉禱詩)”라는 제하에 이 물의 청량함과 이를 먹는 사람의 건강을 기원하는 글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오던 날이 안성장이라니 시장 구경을 안 하고 갈 수 는 없었다. 오일장 규모가 제법 컸다. 강원도 특유의 올챙이국수도 있었으나 우리에게 친숙한 잔치국수로 먹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각종 산채 나물과 생선, 기타 토산품들이 우리의 눈길을 자극한다.


  이젠 모든 것을 다 마쳤으니 되돌아오는 일정만 남았다.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가 문제이었다. 비탈진 경사로에 차를 세워두었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에서 전문 기술자의 도움을 받고서야 해결되었다. 오랫동안 운전을 하지 않아 차의 기능을 잊고 있었다. 두 번이나 도움을 청한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서는 가끔 정체되어 느리게도 또는 시원하게 달려 갈 수도 있었다. 다소 차량 속도가 늦어지면 주변 경치를 보아가면서 서울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도착해 보니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다.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 좋은 장소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신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박진하는 성북동의 명소인 작은 식당 ‘디미방’을 부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고, 요가와 명상 전문가이기도 하다. 우리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성북동을 사랑하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성북동 사람이다.


김철우는 화가이며 ‘성북동천’ 대표이다.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마을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중한 공간이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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