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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01. 2016

예술과 공간 그리고 이상과 현실

[7호] 성북동 문화 아지트 | 글 김민진 · 사진 선병수

  30대에 접어들면서다. 나의 시선이 한옥이라는 공간에 머물던 시점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대부분 도시에서 주거하는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시멘트 박스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그런 공간이 익숙했고 나쁘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것들이 무슨 대수였을까.


  한옥집과 같은 단독 구조 건물이나 집을 찾아 헤맸던건 위아래 아무도 없이 독립적인 공간을 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지금 있는 성북동, 서촌이나 북촌처럼 한옥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 내가 찾는 곳 중 하나라고 여겼고 서촌을 거쳐 지금 성북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아티온 내부 전경


  이 집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정말 암담함 그 자체였다. 해방 직후 지어진 한옥이라고는 하지만 보존 상태가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허름한 집에서 볼 수 있는 여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비가 새는 것을 막고자 일단 덮기부터 한, 일명 갑바천(천막천)을 시작으로, 단순 단열과 방 분리만을 위해 내부 겹겹이 덧방된 흔적 앞에서 한옥 구조의 장점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쉽게 답이 안 나오는 공간이었는데 더군다나 한정된 예산을 보고 누가 이 집에 덤비려고 할까. 예상대로 몇몇 인테리어 업체들과 미팅을 했지만 모두 고개를 떨궜다. 우여곡절 끝에 한옥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시공자를 만나 직접 감리해가면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덧방 되었던 구조물을 하나하나 뜯어 낼 때마다 숨어있던 서까래와 대들보가 서서히 드러났다. 신기함은 잠시 깊은 한숨과 탄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인테리어로 시작했지만 거의 집을 새로 지어야 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이 집이 내 집도 아닌데 이게 잘하는 짓일까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 백 번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첫 삽은 떴는데.


  그렇게 버리는 것과 살리는 것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외부 벽체는 살리고, 지붕은 징크를 이용해 겉모습은 모던한 외관으로 정리하되 처마와 서까래는 내부에서 그 모습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마치 캡슐 안에 한옥을 넣어놓은 형상의 공간이 되었다. 원래 중정이 있던 곳의 천정이 덮여 실내로 허가되어 사용했던 터라 공간 면적은 살리면서 원래 마당이었던 구조를 살려 외부 채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천창을 설치하였다. 덕분에 비가 오면 떨어지는 비를 보고 해가 뜨고 별이 뜨면 올려다볼 수 있는 중정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지금의 아티온 아트살롱이 완성되었다.


아티온 외부 전경. 선병수 작가 그림


  아티온은 원래 서촌에서 아트스페이스로 시작한 공간이었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고자 만들어진 곳이다. 이를 통해서 작게나마 대중과 예술, 대중과 아티스트의 두터운 벽을 조금을 좁혀보고 싶었다. 하지만 화이트 큐브의 벽은 기대만큼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았다.


  조금은 더 머물 수 있는 공간, 대중과 예술이 조금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고 흔히 갤러리 카페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작품이 단순히 빈 벽면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갤러리 구조와 기능은 살리고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머물 수 있어야 했다. 예술 작품 감상에 방해 요소는 줄이고 손님들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공간이지만 과감히 테이블 수를 줄이고 구역을 나눴다.


  나 자신에게도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낯설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만큼,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이곳이 익숙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티온 아트살롱은 아직 실험적인 공간이고 시간을 갖고 하나둘 채워가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김민진은 아트 살롱 아티온의 창립자이자 기획자다. 돈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다.

p.s. 어쩌다 보니 또 한 번 젠트리피케이션 위험 지역에 서 있다.




성북동천은 성북동 주민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법인·단체, 비영리조직, 전문가 및 예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주민 공동체로, 성북동에서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진행, 교육·문화 프로그램 기획, 지역 내 공론의 장 마련 등 마을공동체 형성과 주민간 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성북동천 내 마을잡지 편집위원회가 발행하는 마을잡지이며, 7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 주민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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