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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Feb 22. 2018

화관(花冠)을 쓴 마돈나

[8호·특집] 성북동 가로수|글 황선영

  서울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한다. 조용한 주택가였던 거리가 단 2, 3년만에 떠들썩한 유흥가로 변하거나 북적였던 거리가 스산하리만큼 인적이 끊기는 일도 드물지 않다. 성북동으로 이사 온 지 이제 약 4년을 넘겼을 뿐이지만, 어느새 하나 둘씩 달라져가는 풍경들이 쌓여 처음 이 동네에 발을 들였을 때에 비하면 얼마나 변했는지 깨닫고 새삼 놀랄 때가 있다.

  그러나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간판은, 건물들은 바뀌었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오랜 세월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들 말이다. 예전에 대학로에서 일하던 시절, 바쁘게 오가는 와중에도 가끔씩 발을 멈추고 마로니에 공원이며 혜화동 골목 사이사이에서 해묵은 은행나무의 굵직하고 반드러운 둥치와 무성한 잎들을 올려다보곤 했었다. 비단 종로구뿐만 아니라 오래된 동네에는 반드시 높고 무성한 나무들이 있어 그곳의 역사를 증명해주고, 오랜 이름에 걸맞은 안정감을 풍겨 주고 있는 것이다.

  성북동 역시 마찬가지다. 한성대입구역 네거리에서 성북동 안쪽으로 향하는 도로 가운데는 하늘을 찌를 듯 위풍당당한 플라타너스들이 늘어서서, 봄부터 가을까지 무성한 가지와 잎을 펼치고 있었다. 성북동에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물론 그것은 지하철역이나 인도에 깔린 보도블록이나 편의점의 간판처럼 이 거리의 배경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둥치가 무참하게 잘려나간 그날 이후에야, 사람들은 그곳에 나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8월 3일, 내가 속해 있던 스마트폰 메신저의 <성북동 마을계획단> 그룹을 통해 ‘성북동의 가로수가 잘려나가고 있어요!’라는 급박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그 말을 믿지 못했으리라. 성북로 가운데 위치한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를 베어 넘기고 있다는 소식과 이미 동강이 난 나무의 사진. 공사 현장을 처음 발견한 마을계획단원 중 한 사람이 공사를 멈춰달라고 요구했을 때는 이미 두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간 후였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던 무성한 풍채는 간데없이, 사람 키 정도의 민숭한 줄기 하나와 그루터기 하나를 남긴 채, 조각난 둥치와 가지들이 바닥에 나둥그러진 채. 70년 나이 먹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는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잘려나갔다.

  메신저를 타고 소식이 급속히 퍼져나가고, 공사 현장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왜 이 나무가 잘려나가는지, 누가 공사를 벌였는지 알지 못했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바로 얼마 전 인도 확장 공사와 관련된 공청회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관한 공사가 아니겠는가, 정도였다. (주민 반대 의사가 많은 공청회였으므로 관련 공사라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얼마 후에야 구청에서 실시한 ‘좌회전 차선 확보’를 위한 공사라는 정보가 알려졌다. 성북로에서 한진·한신 아파트방향으로 올라가는 세거리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느라 해당 구간에서 상습적인 정체가 일어나므로, 도로를 넓혀 달라는 민원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세 그루의 나무가 완전히 뽑혀 나가고 그 넓이만큼 도로를 확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어떤 고지도 없이, 공청회 같은 절차도 거치지 않고 도로확장공사가 시작된다는 것도, 아름드리나무를 손쉽게 베어 넘긴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구청의 입장은 ‘길을 넓혀달라는 지속적인 민원이 있었고, 나무 세 그루를 베어내는 것은 작은 공사이기에 굳이 공청회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령 70여 년의 나무를 하루아침에 잡초처럼 뽑아내는 것이 작은 일이라고 치부될 수가 있는 것일까.

  적어도 성북동의 많은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신저에는 <성북동 나무>라는 제목의 대화방이 개설되고 주민들, 활동가들, 성북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단체들, 성북동 마을계획단원들이 속속 들어와 대책을 상의했다.

  공사 중단을 요구한 첫날 밤, 사람들은 밤새 나무를 지키며 남은 둥치에 ‘나무를 살리자’는 포스터를 붙이고, 비닐 랩으로 포크레인을 둘러쌌다. 위압적인 포크레인이 투명한 비닐 랩에 둘둘 말려 옴짝달싹 못하는 듯이 보이는 이 퍼포먼스는 나무를 둘러싼 ‘평화적인 전투’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성북동 나무를 지켜달라는 서명 운동과 릴레이 1인 시위가 이어졌고,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주민토론회 준비가 시작되었다. 나무를 지키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이 처음 공사를 발견한 순간부터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1차로 8월 10일, 가로수 보호를 위한 주민입장발표회가 열렸다. 성북동 주민센터 강당에 모인 주민들 대부분이 공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다음날 구청의 답변은, ‘나무는 이동하고 도로 확장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타협하지 않고 2차 주민토론회를 진행하고, 구청장 면담을 요구했다. 주민들의 의견은 ‘길을 넓혀서까지 좌회전 구간을 확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진·한신아파트 방면으로의 차량 이동은 유턴으로 충분히 할 수 있고, 해당 구간의 정체는 불법 주정차로 인한 통행 방해 때문이니 해당 구간에 대한 단속을 확실히 하고 표지판을 통해 차량 흐름을 유도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차량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성북동의 상징과도 같은 나이든 나무들을 소홀히취급하는 데 대해 사람들은 분노했다.

  나무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행정적으로 가로수는 지자체에서 관리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오래 묵은 나무들을 과연 단순한 관리 대상이나, 길에 깔린 블록처럼 필요에 따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물건으로만 볼 수 있을까? 그것을 지역의 역사로, 모두의 재산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성북동 가로수를 살리고 싶어 했던 주민들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자체에서 가로수를 ‘관리’한다는 것이 지자체 마음대로 그것을 처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길을 넓힌다, 주차공간을 확보한다, 간판을 가린다… 나무는 갖은 명목 하에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가장 손쉽게 제거될 수 있는 수단으로 지목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나무 자체를 생명으로 혹은 공공재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데 드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것은 얼마나 경솔한 판단인가. 또, 한 두 그루의 나무를 취급하는 데에서 드러나는 세간의 환경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열악한 것인가.

  8월 19일에 열린 2차 주민토론회와 구청장과의 면담을 통해서 주민들은 성북동 가로수에 대해 변함없는 입장을 전달했다. 마침내 구청은 주민들의 입장을 수용하여 공사를 완전히 중단하고, 나무를 살리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아니 사실은, ‘살리기’로 할 것도 없었다. 나무는 처음부터 살아 있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 가까이 지난 지금, 황량하던 나무 둥치에는 새로운 잎이 돋아나 여리지만 선명한 초록색의 새 나뭇잎들을 머리에 왕관처럼 두르고 있었다. 무성하던 몸뚱이의 대부분을 잃은 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새싹을 틔워냈다. 사람들이 나무를 둘러싸고 설왕설래 다투는 사이, 제 힘을 다하여 새 가지를 뻗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본 그 모습은 영광의 월계관을 쓴 승리자처럼, 혹은 화관을 두른 마돈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청은 잘려나간 나무를 대신이라도 하듯, 가로수 주변에 관목을 둘러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무는 점차 옛 모습을 회복해 나갈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성북동 가로수를 둘러싼 일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잘려나간 나뭇가지와 주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며 내걸었던 현수막 등을 수거해 기념품이나 조형물을 만들자는 논의가 오가고 있다.

  성북동 가로수 사건을 중심으로 몇 주 간 참으로 많은 말들이 오갔다. 어떤 사람들은 ‘마을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지자체의 ‘불통’ 지탄했고, 어떤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어떤 사람들은 민원 중심으로 진행되는 행정을, 자르고 덧붙이는 식의 계획성 없는 개발을, 환경에 대한 낮은 인식을,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임시방편의 얕은 수에 대해 꼬집었다.

  성북동 가로수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공공의 문제를 인식하고 행정 기관에 문제를 제기, 갈등이 해소되는 일련의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사건은 일견 주민들의 의견으로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를 막고 주민들의 의지로 공공재와 거기에 얽힌 가치를 지켜낸,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일로 보인다. 한쪽으로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며 한쪽으로는 나무를 지키기 위한 직접 행동들을 동시에 진행하는 추진력도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다. 주민모임, 자치기구, 지역 활동가 그룹 및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성북동 가로수에 얽힌 정확한 논점이 정리되지는 못한 면이 있다. 주민들의 의견은 매우 다양했고 가로수에 대한 가치 판단도, 보호 운동을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꽤나 다채로운 생각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조율하며 공통된 정치적 의제를 추출해 내는 과정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단언할 수가 없다. 구청이 빠르게 입장을 정리하

지 않았더라면 자칫 이 조율 과정에서 주민들이 합의가 실패하고 자체적으로 지리멸렬해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성북동 가로수를 둘러싼 한여름의 소동을 지켜보며, 나는 우리가 서있는 위치를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에서 산다는 것, 그것은 단지 거주지로서의 ‘집’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공동체를 꾸리는데 동참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어떤 가치가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주민들이 의견 수렴을 통해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조정 과정에서는 좀 더 많은, 좀 더 섬세한 조율과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공동체의 가치를 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말해야 하고 타인이 갖는 가치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어떤 가치가 가장 공공의 이익에 가까운지 정한 다음에는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 또한 대화와 존중을 통해 협상해 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고 존중하는 자세이며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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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은 문화 기획을 업으로 삼으며 살았다. 올해 동네 지인의 권유로 성북동 마을계획단에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거주지인 성북동과 일터인 연남동 양쪽에서 본격적으로 마을활동에 뛰어들었다. 성북동에서 곰신랑, 달고나, 귀동이와 함께 알콩달콩 오래오래 살고 싶은 5년차 세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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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8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6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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