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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Feb 22. 2018

잘려나간 가로수를 지켜보며

[8호·특집] 성북동 가로수|글 이지연

  지난 8월 3일 수요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한신·한진아파트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날따라 유난히 차가 밀려서 무슨 공사를 하나 싶었는데, 좌회전 차선으로 다가가 보니 성북로 중앙분리대의 나무들이 동강동강 베어져 거리에 뒹굴고 있었다.

  그 무렵 성북동을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하면서 보도 확장과 함께 가로수를 모두 베어버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주민들은 그 사업내용에 대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반대의견을 전했기 때문에 당분간 공사가 진행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무작정 나무부터 자르는 건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소식을 들은 몇몇 분이 직접 가서 공사 중지를 요청하였고 많은 분들이 민원을 넣어 공사는 이내 중단되었다. 또 마침 그 날이 성북동 마을계획단의 전체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잘려나간 가로수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우선 구청에서 관련사항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예술가들이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구청은 바로 다음 주인 8월 10일에 관련사항에 대한 사업 설명 및 가로수 보호와 차선 확장에 대한 토론회를열기로 하였다. 토론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고, 나무를 지켜야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지금 한성대입구역 사거리가 복잡한 것은 중앙분리대의 가로수로 인한 좌회전 대기차선 구간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라 빈번한 불법 주·정차, 무리한 차선변경과 끼어들기를 하는 차량 때문이고,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만약 그 문제가 해결 되어도 한성대입구 사거리 일대 도로의 통행 흐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가로수를 보호해야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편 가로수 문제가 생각보다 커져, 기존에 추진하려던 마을계획단의 모든 일정이 급작스럽게 중단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가로수 사안 논의와 대응 활동은 마을계획단과는 별개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당시 성북동 마을계획단 단원이었던 강의석 씨가 주변의 예술인들과 성북동 가로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을 모아 ‘성북동 나무’ 대화방을 만들었고, 관심을 표명해 주신 10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그 대화방에 함께 하게 되었다.

  우선 잘려나간 두 그루의 나무에 대해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였고, 그 결과 단면을 고르게 잘라주고 상처 보호제를 발라주면 나무는 재생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여 즉시 치료를 진행하였다. 이후 구청에서는 8월 3일 현재 베어진 두 그루의 나무를 뽑아서 다른 곳에 이식하고 그 만큼만 차선을 확장하는 것은 어떤지 의견을 물어왔다.

  그러나 수령이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뿌리를 뽑을 경우 도로 3차선을 모두 파헤쳐야 할 것이며, 이식할 경우 나무는 재생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었다.

  여러 번의 촉구 끝에 구청에서는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나무가 잘려서 휑해진 곳에는 다른 나무를 이식하고 조경공사를 진행하며, 이후 마을에 변화가 생길 경우 반드시 주민의 의견을 묻는다는 답변을 주는 것으로 ‘성북동 가로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있는 그대로의 동네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간 거주했고 또 이제는 일터가 된 여기 성북동은 3, 4대가 모여서 이웃하여 함께 살고 있는 동네다, 또 성북동은 온통 도시를 획일화하는 재개발의 광풍에서 벗어나 골목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물론 턱없이 부족한 편의시설과 문화시설, 해결되지 않는 주차문제 서울시내에 몇 개 남지 않은 마을이다. 살면서 불편한 점도 많이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감안하고 선택한 동네인 만큼 지금 모습 그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았다.

  재개발과 턱없이 치솟아 버린 집값 때문에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서 살고 싶어도 살수가 없는 상황이 된 나로서는 이 동네만큼은 아주 천천히, 지킬 것은 지키고 보전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북동의 나무 두 그루는 이렇게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지킨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기여한 바는 별로 크지 않지만 주민들의 행동과 의견을 옆에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괜한 자부심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무에 새잎이 돋았다. 더 이상 우뚝 솟아있지는 못하지만 잘린 나무들은 나름의 모양으로 자라날 것이다. 나무들 중 맨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베어졌지만 마을 주민들에게 옛 추억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성북동이 나아갈 지향점을 분명히 알려준 나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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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은 햇빛 가득하고 바람 살랑이는 동네가 궁금해서 왔다가 성북동에 살게 되었다. 신랑과 ‘카페 디터틀’을 운영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카페 디터틀은 마을살이 중 소소한 수다가 필요한 주민을 환영한다고 한다. 성북동 마을계획단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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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8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6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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