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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pr 13. 2018

성북동 마전터에서 쌍다리까지

[10호] 성북동 마을여행 - 골목탐방|글 장영철

최순우옛집 - 마전터 - 성북동 쉼터 - 성북로 21길 골목 - 성북구립미술관


  지난 9월 24일 일요일, 어느덧 네 번째 성북동 골목기행은 정해진 탐방코스 없이 무작정 성북동으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시작되었다. 그 발걸음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던 건 구름 낀 회색빛의 하늘과 흐린 날씨 탓도 있지만, 준비 없이 시작한 탐방의 부담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어찌하다 보니 지난 탐방의 마무리 구간인 최순우옛집을 시작점으로 삼게 되었다.

  최순우옛집, 시민문화유산 1호이며, 한국 “미(美)”의 발견에 평생을 바치신 고(故) 최순우 선생의 옛집이기도 한 이곳을 시작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최순우옛집을 시작으로 삼은 건 이곳이 지닌 성북동의 멋과 여유로움을 감상하기 위함도 있지만, 시민문화유산으로 급변하는 성북동의 변화 속에서도 홀로 옛 정취와 감성을 붙잡아 주는 소중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최순우옛집은 닫혀 있었다. 방문한 오늘은 일요일이었고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일요일과 월요일 양일이 휴관일이었다. 준비 없이 출발한 이번 골목탐방은 이렇게 민망하게 시작되었다.


  1930년대 당시 유행하던 도시한옥 풍으로 지어진 최순우옛집은 그가 197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거주한 곳으로 1933년 건축된 심우장과 동시대에 지어진 한옥이다. 특히 이 집의 주인 혜곡 최순우 선생은 개인적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과 만해 한용운 선사와 더불어 지금의 성북동이 갖춘 멋과 기품을 불어 넣은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과 혜곡 최순우 선생의 인연은 각별한데, 간송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가문의 전 재산을 바쳐 우리문화유산을 지켜낸 대 수장가로 이름을 알렸다면, 혜곡 최순우 선생은 한국미의 순례자로 <한국미술 5000년>展을 통해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린, 한국 박물관 역사의 전설이기도 하다.

  또한 간송의 제자이기도 했던 혜곡은 한국전쟁 당시 북송될 뻔한 보화각(現 간송미술관)의 수장품을 지켜내며 전형필 선생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는데, 간송은 아들의 돌림자 “우(雨)”와 그의 고향에서 따온 “순”자를 붙여 “순우”라는 이름과 “혜곡”이란 호까지 지어주게 된다.

  조선말 도성 밖의 평범한 마을이었던 과거의 성북동은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우리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지켜낸 전형필 선생의 간송미술관과 독립운동을 통해 정신을 꺾지 않은 만해 선사의 심우장을 통해 멋과 기품을 갖춘 지금의 성북동으로 다시 탄생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근현대의 예술가와 지성인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최순우옛집의 속살을 들여다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골목길을 마저 걸으며 새삼 성북동의 변화를 실감한다.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말끔한 신축 건물과 외관을 단장하고 들어선 세련된 카페, 현대적인 분위기의 개인 사무실들 그리고 사라진 집터를 대신해서 들어선 공영주차장까지, 최순우옛집에서 마전터로 향하는 옛 기억 속 골목길의 정취는 매일 매일 지워지고 새롭게 기록됨의 반복 속에 있었다.

  사라져 버린 낡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아직 이 골목길에는 붉은 벽돌과 큼직한 석축으로 쌓인 돌담길 위로 한옥 기와지붕의 처마만을 내어주는 수줍은 풍경이 남아 있고, 새롭게 조성된 공영주차장부터 단정하게 포장된 아스팔트와 석축 사이의 틈을 비집고 용케 건강하게 자라난 ‘천사의 나팔’도 볼 수 있다.

  마전터를 향하는 골목 안쪽의 낡은 집들이 새로 지어지고 리모델링되면서 골목의 풍경은 내가 알고 있던 이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나름대로 정돈되고 밝아졌으며, 아스팔트 틈 속을 비집고 올라온 한 뿌리 생명에게도 매일 정성껏 물을 나누어 주는 동네 어르신의 손길도 느낄 수 있다. 내 기억 속에서 힘을 잃어가던 어두운 뒷골목 풍경이 잠시 못 본 사이에 꽤나 젊어진 모습이다.

  골목의 끝자락에 다다라 계단 위쪽으로 이어지는 방향을 선택해 올라서면 종로와 성북동을 이어주는 혜화로를 만나게 되고, 그 건너편으로는 성북동 쉼터가 위치한다. 최순우옛집과 마전터 뒷골목이 현재 성북동에서 변화의 한복판에 들어선 곳이라면, 성북동 쉼터를 지나 성북로21길을 통해 가보는 오래된 골목길은 급변하는 성북동 속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탐방객을 맞이하는 골목이기도 하다.


  성북동 쉼터 공원에서 한숨 돌리고 빠져나와 주택 사이로 난 골목을 향해 걸어본다. 세탁소 크린피아와 레스토랑 두에꼬제 사이로 난 가파른 골목길을 택하여 오르면, 처음 접하게 되는 성곽 아래 가파른 골목에 경사와 성곽을 이용한 독특한 형태의 주택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기본외형은 유지하고 수성 페인트와 목재를 이용하여 꾸민 시민단체 녹색연합 사무실과 마름모꼴 석축 위로 삐죽삐죽 모난 적벽돌이 불규칙적으로 돌출되게 지어진 오래된 벽돌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좁은 계단을 오르며 막다른 골목을 예상했지만 신기하게도 발길은 끊기지 않고 앞으로 계속되었다. 높은 골목길을 따라 아랫집의 지붕을 허리에 끼고 윗집의 담장을 힐끗 넘겨보며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을 빠져 내려오면 북정마을의 초입에 당도한다. 우리는 성북동 주도로인 성북로를 따라 성북구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마침 기획전인〈1933, 3개의 집〉展이 열리고 있었다.

  골목탐방을 마치며 간송과 혜곡 선생의 일화를 더듬어가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성북동의 익숙한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 그렇다. 벌써 몇 년째 간송미술관의 봄/가을 전시가 성북동에서 사라졌다.

  간송미술관은 현재 휴관중이라고 한다. 몇 해 전부터 간송의 수장품을 보존할 새로운 미술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다. 급히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어서 빨리 새로운 보화각이 들어서고 간송의 정신과 보물들이 성북동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간송이 없는 성북동은 가을바람만큼이나 외롭고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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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은 성북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직장인으로, 본지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그동안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함께 하기도 했으며, 성북동이 이웃들과 정답게 살아가는 행복한 성곽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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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0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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