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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pr 13. 2018

지키고 싶은 흔적들

[10호] 성북동 마을여행 - 골목탐방|글·사진 장혜영

  집으로 향하는 길목, 오르막길, 구석진 모퉁이길, 가파른 계단 아래. 위치는 다르지만 서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색이 바라고 드문드문 칠이 벗겨진, 하나 둘 간판 글자가 떨어질 만큼 오래도록 버틴 동네 가게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 생활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은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열린 문 사이로 인사하는 익숙한 얼굴들.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조용한 힘이 된다.



오래된 가게를 찾아서

  간송미술관, 최순우옛집, 서울 성곽 등 곳곳에 문화유산이 가득한 성북동.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성북동은 이미 보물 같은 동네다. 보통은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로, 심우장으로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지만 천천히 동네를 거닐어보는 것을 더 추천한다. 성북동 골목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 아름다운 곳이니 말이다.


먼저는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반도이발관’을 소개한다. 성북로 대로변에서 들어간 골목에 위치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이곳은 35년 동안 주민들의 머리를 단장해온 곳이다. 지긋이 눈을 감고 이발을 받는 손님에서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할머니까지, 반도이발관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발소안 소파는 주민들이 서로의 소식을 나누며 잠시 쉬어가는 동네 마루 같았다. 반도이발관 김석근 사장님께 이발 철칙을 여쭤보니 ‘손님의 취향에 맞게’라고 답하신다.


손님이 좋아해야죠. 이발하고 기분이 좋아서 흐뭇해하며 가실 때 가장 기뻐요.


그리고 덧붙여 이제는 손님의 얼굴만 봐도 어떻게 해야할지 떠오른다고, 오래된 사이인 만큼 손님이 뭘 좋아하는지 안다고 하신다.



  반도이발관 옆에는 ‘백옥크리닝’ 세탁소가 있다. 흰 백(白)에 구슬 옥(玉)자를 써서, 백옥처럼 깨끗하게 세탁을 하겠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이곳은 40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은 ‘겨울옷들 다 가지고 왔어요’ 하며 품 안 가득 옷을 들고 와 그저 맡기고 떠난다. 가격을 물어보지도 굳이 ‘깨끗하게 해 주세요’, ‘비싼 옷이에요’ 말하지도 않는다. 사장님은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옷에 이름표를 달고, 찾아가지 않은 옷이 있다며 알려주신다.




서로간의 신뢰가 제일 중요해.
동네 장사는 간판을 보고 오는 게 아니라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까 또 오시는 거지.

  백옥크리닝 홍기문 사장님은 믿음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믿고 맡기는 단골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해 세탁한 옷을 보답처럼 건네셨다.



작고 낡은 풍경의 힘

마음이 부자인 집

성북동에는 ‘가게안내지도’가 있을 만큼 특색 있고 유서 깊은 가게들이 많다. 성북로55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 어르신이 운영하는 ‘새이용원’, 성북로8길 8에 자리한 43년 된 ‘옛날 중국집’ 등 낮고 아담한 동네 가게들은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시즌 세일’, ‘히트 상품’이라고 광고하는 마트 입구와 달리 ‘마음이 부자인 집’이라고 써 놓은 ‘해동꽃농원’ 대문이 눈길을 끈다.


동네 가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둔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의자든 나무 마루든 꼭 주민들끼리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뒀다.

유리와 액자를 판매하는 ‘제일사’ 가게 앞에는 ‘힘든 사람 쉬어가세요’ 라고 적힌 의자가 놓여 있다. 이밖에도 식당 앞에서나 보았던 의자들이 동네 문구사 앞에, 세탁소 앞에 놓여 있어 가게에 볼 일이 없는 사람도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다.

힘든 사람 쉬어가세요



  동네 가게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가게 앞을 크고 작은 식물들로 가꾼다는 것이다. 처음엔 예쁜 화분을 집 안에 두지 않고, 문 밖에 두는 것이 신기했다.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에 가보면 실외 벽면은 그저 광고하는 쇼윈도로 쓰이고 식물 역시 손님들을 끄는 인테리어로 여겨진다. 그런데 동네 가게들은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공동 구역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더없는 기쁨을 준다.


  같은 모양이 없는 집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굽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절경을 만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공터 풍경이다. 보통 비어있는 공간에는 쓰레기가 버려져 있거나 경고문이 붙여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북동 꼭대기 자락의 공터에는 ‘사랑하는 주민 여러분 행복하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자신의 필요를 알리는 게시판도 아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진 현수막도 아닌, 이런 사랑의 고백을 전할 수 있다니.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이런 흔적이 아닐까 싶었다. 누가 두었는지 모르지만 ‘필요한 사람 가져가세요’ 메모가 붙여진 물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모자를 쓴 멋진 눈사람과 같은 그런, 이웃들의 흔적 말이다.



  성북동의 매력적인 풍경은 밤이 되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일정한 간격의 아파트 불빛과 달리 다양한 색깔과 크기의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동네. 길이 그저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오래된 동네. 성북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런 풍경이야말로 계속 이어나가야 할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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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은 온몸으로 쓰고 싶은 사람이다. 삶으로 메시지를 쓰고 싶어 캠페인을 만들고 글을 쓴다. 마음에서부터 환경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에코 라이프 매거진 <green mind>를 창간했고, 장애를 만드는 건 사회적 환경이라는 생각으로 보행약자를 위한 <특별한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성북동 골목길을 기억하고 싶어 2011년부터 필름 카메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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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0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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