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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pr 30. 2018

‘매화와 붓꽃’ 전시회에 다녀와서

[10호] 우리 동네 아트살롱|글 박진하

  요즘 시간에 쫓긴다. 좀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만큼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매화와 붓꽃’이란 전시이다.

  개인적인 모든 관심은 근원 김용준에게 쏠려 있었다. 한국에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살고 있는 성북동에 거주했다는 작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근원 김용준 선생의 작품을 전시한다 했을 때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몇 점이나 모아 전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 있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전시회장에 들어선 순간 사라져 버렸다. 온통 근원과 존 버거의 작품으로, 그것도 진품으로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들의 주인인 두 화가 중 한 사람 김용준은 동양, 한국에서 살았고 또 다른 사람인 존 버거는 서양, 영국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직접 만난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교류한 바도 없었다. 아니,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단지 두 사람 모두 화가로 출발했으나 그림보다도 글을 쓰는데 더 몰두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이 전시는 이러한 공통분모를 매개로 그들을 늦게나마 조우하게 만들었다.


  입구에서 처음 보게 된 작품은 ‘반창춘색(半窓春色)’이라는 그림이다. 화폭 왼쪽 아래에서 출발하여 오른쪽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수묵화 방식으로 매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림의 좌측을 차지하고 있는 붉게 피어난 매화꽃은 밝게 채색되어 있으며, 그 반대편의 꽃은 전통 수묵화 방식으로 먹과 흰 여백으로 채워져 있다. 작품명처럼 반창(半窓)이라는 것은 반쯤 연 창문을 말한 것일 게다. 창이 반쯤 열려진 편에서는 붉게 핀 매화가 총 천연색인 원색 그대로 보여졌겠으나, 한지로 가려진 편에서는 매화가 하얀 창문에 비치어 만들어진 검은 실루엣만 보여졌을 것이다.

  이어 만나게 된 작품은 범부 김정설의 초상화이다. 검은 선글라스에 지팡이를 챙긴 초상화의 주인공은 동양철학자이자 한학자이며 소설가 겸 시인인 김동리의 형으로, 한 때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시인 김지하가 ‘현대 한국 최고의 천재’라고 격찬했던 이 사람은 전문적으로 그를 연구하는 ‘범부 연구회’가 생겨날 만큼 근대 사상사에서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허나 그는 평범한 사람을 자처했다. 초상화 안에서의 범부는 비범하다기보다는 주위에서 흔히 만나 볼 수 있는 촌부처럼 보인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으나 단정해 보이지 않고 이마에 있는 두 개의 주름과 코 밑과 입술 아래의 수염도 곱게 가꾼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머리 아래 부분에서는 인물을 따라가는 붓 선도 과감해진다. 이리저리 활개친 붓이 순식간에 그려낸 흔적이 가득하다. 대상의 특징을 순간

적으로 포착하는 캐리커처 방식이다.


  그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작품 두 점은 모두 수화 김환기 선생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 처음이 ‘수향산방 전경’이란 이름을 가진 그림이다. 그림 속에 그려진 이 산방은 당초 근원 선생의 소유였으나 수화 선생에게 팔아넘긴 집이다.

  성북동에 있었던 이 집을 무척이나 좋아해 ‘노시산방’이란 당호로 불렀다. 노시(老柿)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집에 오래된 감나무가 두세 그루 있었던 까닭이다. 그 나무를 몹시 아꼈던 선생은 감나무를 중심에 두고 화초를 가꾸었고 ‘노시산방기’에서 이 감나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유독 내가 감나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놈의 모습이 아무런 조화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때문이다. 나무껍질이 부드럽고 원시적인 것도 한 특징이요, 잎이 원활하고 점잖은 것도 한 특징이며, 꽃이 초롱같이 예쁜 것이며 가지마다 좋은 열매가 맺는 것과 단풍이 구수하게 드는 것과 낙엽이 애상적으로 지는 것과 여름에는 그늘이 그에 덮을 나위 없고 겨울에는 까막까치로 하여금 시흥을 돋우게 하는 것이며, 그야말로 화조(花朝)와 월석(月夕)에 감나무가 끼어서 풍류를 돋우지 않는 곳이 없으니, 어느 편으로 보아도 고풍스러워 운치 있는 나무는 아마도 감나무가 제일일까 한다.”


그의 감나무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는 경상도 선산에서 태어났으나 자라기는 충청도 영동에서 성장했다. 그곳은 감나무로 유명한 땅이다. 가로수도 감나무로 되어 있을 정도로 지천에 깔려 있는 나무가 감나무이다. 영동에서 나온 감이 너무 맛있어 조선시대의 진상품을 영동 산(産)으로 했을 정도이다. 그러니 감나무에서 근원 선생은 그의 고향, 영동을 본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감나무를 키우고 글을 쓴 건 아닐까?

  그의 노시산방을 수화가 차지하면서 수향산방(樹鄕山房)이 되었지만, 선생의 그 집에 대한 애정은 이 그림을 그리던 그 때까지도 여전하다. 늙은 감나무는 집 오른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고 선생이 애지중지하던 괴석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는 향로석도 그리하고 있다. 그 사이에 아주 조그맣게 그려진 강아지는 기지개를 펴고 있다. 중심에 펼쳐진 집채는 마치 추사의 세한도처럼 골격만 그려져 있다. 가는 선으로만 마감을 한 것이나, 세부 묘사를 포기하고 단순화시킨 것을 보면 그러하다. 집 앞에 선 소화 김환기는 추워서 그런지 양 손을 포켓 깊숙이 꽂고 있다. 그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수화의 부인은 너무도 작은 크기로 묘사되어 있다.

  이 전시회의 백미는 역시 ‘수화소노인 가부좌상’이다. 불과 30대 중반의 수화 김환기 선생을 소노인(少老人)이라 명명한 것부터 해학적이다. 가운데 가르마를 한 그림의 주인공은 전체 얼굴에 비해 비교적 큰 둥근 안경을 쓰고 있으나 코와 눈은 자그맣다. 가는 턱을 가진 그는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앉아있다. 옷은 편안한 일상복에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다. 반쯤 열린 입이며 따뜻한 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나이에 비해 겉늙어 보이는 노인네다. 뒤로는 붓 여러 자루가 담긴 붓통이 있어 그가 화가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근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사랑받던 화가, 수화 김환기이다. 거침없이 그린 것이지만 어떤 특징을 과장하거나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것이 없다. 단순한 선과 먹을 중심으로 그려냈지만 사실적이다.


  그 외의 작품도 꽤나 볼만한 것이 많았다. 큰 암벽산과 절벽 위에 위치한 산채 내 사람이 중국풍의 의상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화를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강변 가 마을이 저 멀리 보이고 가까이로는 큰 소나무 세 그루가 그려진 또 다른 그림의 배경은 전형적인 한국의 전경이다. 그 중간에 놓인 강 위에는 나룻배와 사공이 보인다. 이것은 중국이 아닌 한국의 진경이다. 다른 작품 수선화도 사실화이다. 화분 위 괴석 왼편에 그려 놓은 수선화는 집 앞에 두고 가꾸던 화초 중 하나일 것이다.


  부채 위에 그린 늙은 소나무와 바위를 소재로 한 ‘송노석불노(松老石不老)’, 짙은 먹으로 검은 새를 표현한 ‘흑조(黑鳥)’는 문인화풍의 작품이다. 높은 산, 깊은 계곡에 솟아오른 소나무를 그린 ‘운산구심(雲山俱深)’에는 ‘내 짐짓 석도화상의 화법을 시험해 봤으나 그 필의(筆意)를 터득치는 못했다’고 쓰여 있다. 이는 천 획을 응축해 한 획으로 모아 표현하려는 석도(石濤)화상의 화풍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그린 작품일 것이다. 사실 묘사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필의, 즉 정신을 우선시하는 문인화풍을 지향하려는 근원의 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은 깨진 것을 이어 붙인 화병과 펼쳐진 책, 책갈피를 묽은 청색과 담황색상으로 그려내고 있어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외에도 책의 표지화로 그려낸 그림들도 다수 있다.


  또 다른 귀한 작품이 남아 있다. 왼쪽 아래에서 붓으로 매화 줄기를 그리며 오른 쪽으로 나아간다. 매화나무의 옹이를 그리고 바로 가지를 치지 않고 그저 거침없이 줄기를 긋고 가치를 친다. 붓의 머무름이 없다.

중간의 멈칫거림으로 생기는 먹의 농도 변화 없이, 붓을 거침없이 쳐 올리며 줄기를 만들고 있다. 둥글게 그린 꽃잎이 네 개씩 모여 있고, 그 중앙에는 꽃의 암수술들이 별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시에서는 그의 수필도 소개하고 있다. 얼마 전 성북동천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최성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글은 쉽다” – 당신이 글을 쓸 때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수준에 맞춘다고 한다. 그런데 근원 선생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도 이해할만한 글을 썼다고 하신다. 내가 본 그의 글 역시 쉽고 재미있다. 깊고 전문적인 내용도 보다 쉽게 풀어내는 재간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를 아마추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숨에 글을 읽어 내려가게 하는 것은 글 쓰는 사람에게 중요한 재능이다.

  이번 기회에 근원을 알고자 해서 몇 권의 책을 찾았다. 읽다 보니 좋아서 부인에게 추천했더니 책을 옆에 꼭 끼고 정말 맛나게 읽고 있다. 재미있다. 추사에 대해 쓴 글도 좋다. 소개된 일화는 매우 흥미롭고 읽는 사람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근원을 만나고 알아 갈 수 있게 만든 전시가 우리 마을잡지인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회원에 의해 기획,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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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는 성북동의 명소인 작은 식당 ‘디미방’을 부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고, 요가와 명상 전문가이기도 하다. 우리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성북동을 사랑하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성북동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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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0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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