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특집기획 ② | 글 김기민 · 사진 17717 김선문
글 김기민
사진 17717 김선문
‘주민참여’라는 말도, ‘공공미술’이란 말도 그 어느 것도 쉽지 않다. ‘참여’나 ‘공공’은 일반명사이고 흔히 사용되는 용어지만 ‘주민참여’는 지난 몇 년간 서울시와 성북구에서 그렇게 정책과 사업의 언어로 사용되고 유통되었음에도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 낯설거나 생소한 개념이다. ‘공공미술’은 미술 혹은 예술을 일상적으로 충분히 경험하거나, 혹은 ‘미술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답변하는 시간이 기본교육 과정이나 이후의 삶에서 보장되어 있지 않은 시민에게는 학습이 필요한 영역이다. 더욱이 공공미술과 관련된 거버넌스에 참여할 기회나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개념들에 대해 시민 개개인이 생각하는 상(像)도 불분명하거나 합의되어 있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참여’나 ‘공공’이란 표현은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할 개념이자 용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 ‘주민참여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표방하며 성북동 거리갤러리 개관기념전시 <숲>이 시작된 이래 매일 출퇴근길에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작품을 지켜보며 어딘가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내게 남는 이유다.
공적 자산, 공유지의 주인은 누구인가?
사회적으로 공공미술의 정의를 이해하고 그것에 공공장소나 국가·지방정부 재정과 같은 공적 자원을 투입하거나 배분하는 방식은 기존에는 행정기관과 관료, 전문가 중심의 일방적이고 독점적 체계였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화 이후 실질적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때로는 이기적이고 무질서해 보이는 시민들의 모습이 오롯이 인간의 본질적·선천적 악덕에만 기인한다고 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철저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사회운영 체계이고, 공적 자원의 배분은 꾸준한 경험을 통해 단련해야 할 영역이다. 한국 사회는 그 동안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체제가 헌정을 중단시키고 지방자치를 고사시키면서 이 배움과 연습의 과정을 허용하지 않아왔고, 지금의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가 안착한 지 불과 3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각자의 인식과 수용에 기반한 혼란에 대해 나는 그럴만한 일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방식이고, 더 이상은 아니다. 적어도 2018년 현재 지방자치와 분권, 민관협치를 이야기하는 시대에서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와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공공장소, 재정과 같은 공적 자본 혹은 공유지는 시민 모두의 자산이고 공동체가 함께 소유하는 것이다. 국가나 지방정부, 행정기관은 시민 모두의 공적 소유라는 개념의 법적 소유형태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속을 통해 소유권을 나누어 명시해둔 것일 뿐 그것의 원천적 소유권은 시민들에게 있다. 공공기관은 단지 그것을 맡아 어느 일방의 독점이나 점유를 통해 자원의 효과적으로 배분되지 않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운영할 책임을 법에 의해 부여받아 그 역할을 다하는 곳일 뿐이다. 단지 등기부등본에 소유권이 어느 기관이라고 해서, 그 기관에 속한 국가 또는 지방 예산이라고 해서 그 기관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양식 있고 선량한 마름이라면 제 주인의 뜻을 살피고 헤아리는 것을 가장 으뜸 원칙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성북동 거리갤러리와 같이 지역에 존재하는 국유지나 시유지·구유지 등의 국공유지는 그 활용과 사용에 있어 지역사회 차원의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공간이고, 공론을 거쳐 그 사용 방향과 방식을 합의하는 과정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다. 사업추진의 법적, 행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주민의견 수렴 과정과 절차만으로는 그 공간의 사용에 대해 충분한 의견을 나누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 절차와 과정이라는 것이 그 지역에서 살아가거나 생활하는 사람들이 직접 결정하거나, 최소한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에 제대로 된 의견을 내본 적 없고 입법기관이나 행정기관의 판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러한 제도로 지역사회의 의견을 담아낼 수 있기를 기대하기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결국 시민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 된다. 충분히 숙의하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그 공적 자원이 효율적으로 소비되고 사용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소유와 이용의 방식에 대해 구성원들이 차근차근 논의하고 원칙을 세워나가는 과정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입법·행정 기관은 시민들이 그 소중한 배움의 경험과 합의의 과정을 배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빼앗기지 않도록 배려하고 지켜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누가 참여의 방식을 결정하고 공공미술의 정의를 규정하는가?
공히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리고 이용할 권리가 있는 공유지에서 ‘주민참여’와 ‘공공미술’을 표방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지난 4월 10일부터 2019년 4월 7일까지 1년의 여정으로 전시되는 지금, 무엇이 공공미술이고 어떻게 주민참여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구립미술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전시 소개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왜 이 공간에 주민참여 공공미술프로젝트가 기획되었는지, 그것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그 결정권은 누가 갖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전시 소개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령 이 프로젝트가 제안하는 ‘주민참여’의 방식은 누가 결정했을까? 그것이 주민참여로 인정되는 근거는 무엇일까? 무엇이 주민참여일까? 작품의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 주민참여인 것인지, 기획 과정에도 참여해야 주민참여인 것인지 그 어떤 원칙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주민참여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참여할 주민을 섭외하여 진행하는 방식에 대해 누군가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공공미술 또한 마찬가지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작품은 공공미술인가? 공적 재원이 투입되면 공공미술인가? 공공기관이 직접 추진하면 공공미술인가? 공공미술에 대해 세계적 차원의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가나 지방정부 기관이 추진하는 공공미술의 기준, 혹은 지역사회가 생각하는 공공미술의 상 정도는 정립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시민 모두가 미술 전문가가 될 수는 없어도 자신이 살고 있거나 생활하는 지역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배움을 통해서든, 충분한 숙의를 통해서든 최소한의 원칙을 세워나가는 과정에 동참하고 그 원칙에 따라 역할을 나눠 일이 추진되고 프로젝트가 성립되었을 때 비로소 공공미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관계 기관과 지역사회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중략) 한편, 이번 개관기념전시와 함께 거리갤러리 곳곳에 세워진 벽돌 전시공간에는 최정화와 성북동 주민들이 함께하는 <주민참여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품이 설치될 예정이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성북동 내 성북초등학교,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덕수교회 늘푸른대학, 북정마을 할머니경로당 등 다양한 연령과 성격의 단체 수백 명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각 단체들은 최정화 작가의 대표작인 <알케미(Alchemy 연금술)>와 같이 형형색색 빛나는 플라스틱 컵과 그릇, 작은 구슬들을 와이어로 길게 엮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와 같이 앞으도 지속될 주민참여 프로젝트를 통해 성북구의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공공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거리갤러리의 정체성과 의미를 형성하고자 한다.》
- 출처 성북구립미술관 홈페이지
시민들에게는 이러한 판단과 결정이 내려지게 된 작동 원리와 구조, 배경에 대해 알고 이해할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그것은 성북구청과 같은 행정기관, 성북구립미술관과 같은 전담기관, 주민 의견을 확인하고 모아서 대의하고 전달할 책임이 있는 구의회와 같은 입법기관,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점검해야 할 몫이다. 어느 일방의 책임이 아니며, 누가 누구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도 아니다. 최소한 이것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공동의 과제임을 인식하고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정해야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에 초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마도 이런 궁금증과 문제제기는 시민들로 하여금 더 많은 학습과 훈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공동의 원칙을 수립하기 위해 관련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근거가 되는 원칙과 규정을 확인하며 얼마나 많은 공적 자원이 사용되었는지 또 사용해야할지를 파악하는 과정은 이미 자원과 자본을 갖춘 공공기관이나 전문가에 비해 일반 시민들이 더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민들에겐 그 어떤 것도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바로 쪽수이다. 공공성에 대한 책임있는 인식을 갖춘 많은 시민들이 모여 이 과정에 참여하고 공공기관과 전문가그룹의 파트너로서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시민들은 지금껏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공유지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끝]
김기민은 성북동천 총무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에서의 민주주의란 뭘까 고민한다. 지난 2017년 11월부터 ‘지역사회 활동 생태계 조성과 활동기반 강화’라는 미션으로 추진 중인 <성북구 시민협력플랫폼 구축사업>에서 총괄책임자를 맡고 있다. 민주주의, 시민권, 자유, 그리고 자치에 대해 요즘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