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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pr 14. 2019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을 만나다

[12호] 우리 동네 전시를 소개합니다 | 글·사진 김소원 성북예술창작터

글 김소원 

사진제공 성북예술창작터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을 만나다

<성북 문인사 기획전>


사람들은 ‘성북’이라는 단어에서 처음 무엇을 떠올릴까?

누군가는 교과서에서 접한 김광섭(1906-1977)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또 누군가는 “네, 성북동입니다”라는 극중 가사 도우미분의 전화 멘트와 함께 부자 동네를 생각해 내지 싶다. 성북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 북악산, 북한산, 혜화문, 정릉, 길상사, 대사관저, 심우장, 선잠단지, 간송미술관, 우리옛돌박물관 등을 꼽을 것이며, 이보다 한층 더 깊숙이 성북을 아는 이들, 즉 성북에 살고 있거나 이곳에서 벌어지는 ‘무언가들(something)’에 엮여 본 사람들은 성곽 바로 아래 소박한 모습을 간직한 북정마을, 정말로 많은 ‘예술가-주민’, 넘치는 문화예술축제, 그리고 미술을 즐길 수 있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과 성북구립미술관, 성북예술창작터 등을 자연스레 열거하는 나름의 전문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문인들’의 이름이다

김광섭, 김소진, 박경리, 박완서, 신경림, 신동엽, 이육사, 이태준, 조지훈, 최순우, 한용운, 황현산... 눈을 의심하겠지만, 이들 모두는 우리가 익히 알고 널리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성북의 문인들로서, 성북구 성북동, 정릉동, 보문동, 돈암동 등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간 이들이다. 성북동은 문인뿐 아니라 연극인과 미술가 등 다양한 예술 인구가 밀집해 있는데, 조선시대 왕자들도 성 너머 바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지는 이곳에 별장을 짓고 공부를 하거나 문인과 화가들이 머물 곳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 전통이 현재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하겠다. 성북은 대체 하늘에 어떤 감동을 주고 복을 받았길래 이처럼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역사문화예술의 넘치는 보물창고가 되었을까? ‘성북은 거대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수사를 성북 스스로 지어

부르고 있다 해도 여기에 그 누가 쉽게 토를 달 수 있을까?



좋은 것은 나누고 알려야 한다

보화(寶貨)가 차고 넘치는 경우, 지독한 자린고비거나 자폐적 성향을 지니지 있지 않고서야 일부라도 함께 나누고 또 자랑하게 마련일 것이다. 달란트(재능)를 그냥 땅에 묻어두는 것은 악하고 게으른 행위라고 성경도 알려준다. 좋은 것은 더 좋도록 개발·계발하고 널리 알리고 같이 즐겨야 한다. 나누고 알리는 마음이 설사 상당량 자기애에 기반 하더라도, 나누고 알리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선하게 작동되게 마련이며, 무한 긍정으로 바라볼 당위 또한 충분하다고 본다. 어느 지역과도 쉽사리 비교하기 어려운 성북의 값진 자원들을 채굴하여 알리고, 지역민은 물론 더 많은 사람들과 그것을 향유하도록 고민하는 성북문화재단 역시, 그러한 책무를 감사한 마음으로 이행해 가고 있다.

특히 문인들의 이름을 호명해 냈을 때, 그 가치를 알리는 것에 대한 고민은 ‘성북 문인사 기획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문학과의 만남은 매체 특성상 유독 개별화되며(그래서 좋기도 하지만), 문인들의 문학혼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 어쩔 수 없이 묻혀 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그 속에 담긴 우리들의 기억, 감동, 상상들을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다시 불지피고, 또 그로인해 어떤 가치를 찾을지에 대한 질문들이 필요하며, 그 질문들을 전시라는 그릇에 담아보고자 한 것이다.


성북 문인사 기획전은 책이 아닌 ‘전시’로 접하게 되는 문인의 세계다

“여러 물품을 한 곳에 벌여 놓고 보여주는 것”이 전시(展示)의 사전적 정의로서,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보면 언제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의 매체적 특성과 전시의 특성은 상반된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은 원시시대 무용, 음악과 하나였던 노래에서 분리된 시에서 출발했지만, 그 덩어리 속에도 미술은 없었다.

하지만 전시는 단지 예술작품뿐 아니라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책이나 편지 따위를 펴서 보이는 것” 또한 전시의 의미에 포함되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실상, 문학과 예술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이며, 문학과 미술의 ‘애정관계’는 이미 빅토르 위고, 보들레르, 괴테,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들이 문인임과 동시에 호평 받던 실력의 화가이기도 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문학과 예술 공통의 운동 혹은 사조였다는 사실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과의 조응에 있어서 미술 뿐 아니라 예술 전 분야가 동등한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그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결국 새로운 ‘경험 방식’의 제안이다

1년에 한 번씩 한 명의 성북 문인을 조명하고 전시로 엮는 <성북 문인사 기획전>은 도서관 사서, 큐레이터, 예술가들의 만남에 의해 꾸려지며, 각종 자료들을 잘 모아 분류하고 유리관에 넣거나 테이블 위에 제시하는 방식을 벗어나 새롭고 흥미로운 제안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첫 시작이었던 2015년 신경림 시인의 전시 ‘사진관집 이층’에서는 특히 문인들의 교류 거점이었던 음악다방 ‘르네상스’을 연극적 장치로서 재구성했으며, 민중 시인으로서의 신경림에 초점을 맞춘 스톤 김 작가의 사진, 박재동 화백과 함께 한 북 콘서트 등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접점을 보여주었다. 이듬해 조지훈 시인의 전시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에서는 지조 있는 선비를 형상화한 바위 형태의 목조 구조물과 시의 숲을 표현한 시가 적힌 각목 기둥들, 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을 안무로 풀어낸 박나훈의 안무 영상, 시 ‘백접’에 곡을 붙여 정가로 표현한 김시율(곡)과 안정아(노래)의 공연 영상, 조지훈의 내면세계와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 정진화 작가의 회화 등을 선보였다.


<성북 문인사 기획전>의 첫해와 다음해를 시인들의 전시로 구성했다면, 3회째인 2017년도 전시 ‘밤이 선생이다’는 황현산 비평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비평 장르를 어떻게 전시로 구현할 것인가’와 더불어 ‘대중적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지역기반의 전시 공간’이라는 입장을 절충하는 것이 과제였다. 우선, 불문학자이자 비평가, 교수의 직함으로 불리던 그의 특별했던 인간적 측면을 주목했다. 고로 ‘비평가의 서가’는 자유로운 라운지 개념이 되길 바랐고, 책이 놓이는 탁자이자 동시에 편히 앉아 책을 읽고 영상을 관람하는 의자로 기능하는 계단 구조물을 1층에 구현했다.

황현산의 서가 일부를 재현한 책꽂이, 사회, 문학, 예술 세 파트로 나뉜 아카이빙 테이블, 보들레르의 상형시 등에 기반 한 유승호 작가의 회화와 설치작품, 그 외 박호은 작가의 설치작품, 정재완 디자이너의 텍스트 디자인, 스톤 김의 사진, 인터뷰와 목포 기행을 담은 장영원의 영상 등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성북 문인사 기획전> 첫 회부터 현재까지 이 모든 시각화 과정 속에는 전시디자인으로 함께 한 홍장오작가의 각별한 재능과 헌신이 있었다.



올해는 소설가 박완서를 만나게 된다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노년에 이르러 자연주의로 돌아서는 것과 달리, 눈 감는 순간까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한 현재 진행형 박완서. 그녀가 이번 <성북 문인사 기획전>의 주인공이라는 이야기에 화들짝 반기며 깡충깡충 뛰는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건 내게도 놀라운 경험이다. 지식이 많건 적건, 몸을 담고 있는 분야가 무엇이건, 나이가 많건 적건 공통적으로 그녀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평상시엔 드러나지 않기에 숨어있는 조용한 팬덤이라는 모순된 수사가 떠오른다. 어째서, 작고한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녀의 이름에 아이처럼 반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지, 또 그녀가 아직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지,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여성으로서 6.25를 정면으로 관통한 기억을 부릅떠 응시하고 그것을 아물 새 없도록 계속 들쑤셔가며 현재에 꺼내 놓기를 반복한 박완서. 그러나 과거가 아닌 지금을 살았고 미래 지향적인 논쟁 속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박완서. 방대한 양의 작품과 진행형인 담론들 속에 우리는 숨죽여 긴장할 수 밖에 없으며, 그녀를 쉽게 단정 짓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녀와 같이 호흡해 보고, 운이 좋은 순간순간 나란히 걷게 되는 그런 작업이 될 것이다.

책이 아닌 전시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감각하고 사유하게 될 박완서는 어떤 경험으로 다가올지 상상하고 12월에 전시장(성북예술창작터)을 찾는 재미는 어떨까?


결국 상상으로 모두가 이어지는 만남의 경험

문학과 예술의 만남이 전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과연 낯선 경험일까? 작가가 읽을 만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을 잘 집대성해야 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감각적이고 조형적인 결과물을 위해서도 언어 및 언어화가 어떤 방식으로건 필요하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자유로이 넘나들어야 한다. 문학과 예술의 만남은 무척 보편타당하며, 무궁무진한 조합들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숙명적 만남이라 확신한다. ‘언어로 구조화된 것’과 ‘예술언어로 표현된 것’. ‘얼핏 대립항처럼 보이는 이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문인사전은 궁극적으로 창의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성북 문인사 기획전>을 통한 새로운 경험 방식의 제안을 통해, 독자·관람객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감각의 자극을 받게 되고, 자의적인 독해와 자기만의 상상으로만 채우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펼쳐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상상하는 사람들과 어느 순간 만나 하나가 된다. 문인의 상상, 예술가의 상상, 그리고 관람자의 상상. 공동의 상상이 만드는 세계. 더 좋은 세계를 그려보는 꿈에서 함께 만나 일체감을 맛보는 짜릿한 순간을 부여받는다. 잊지 못할 순간의 선물이다. 다가오는 12월은 <성북 문인사 기획전: 박완서 편>과 함께,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을 만나 보길 바란다. 


<성북 문인사 기획전4: 박완서편>
일시 : 2018년 12월 13일(목) ~ 2019년 1월 22일(화)
오프닝 : 2018년 12월 13일(목)
장소 : 성북예술창작터(성북로 23)




김소원은 성북예술창작터 큐레이터다. 동시대 미술을 더 가까이 호흡하려는 가운데 작가들과의 교류 및 미술비평을 지속하고 있으며, ‘발견하고’, ‘이어주는’ 일에 보다 큰 기쁨을 느낀다. 연령제한을 없앰과 동시에 더 나은 연계 프로그램 고안을 통해 더 생동감 있는 성북의 예술 환경조성을 고민하는 ‘성북 N 작가공모’, 문학과 예술의 짜릿한 만남을 통해 성북의 훌륭한 문인들을 소개하는 <성북 문인사 기획전> 등의 프로젝트에 주력하며 성북의 끝없는 매력과 가능성을 알리고 있다. 주변이 함께 웃는 게 진짜 행복이라고 믿으며, 성북에서 그런 경험이 쌓여가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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