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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ug 06. 2019

시민이 열어가는 기록자치

[플랫폼성북] 창간호|우리동네 아카이브

최연희(우리동네 스토리코어스 대표)



기록과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상이몽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법률적 의무가 있는 공공의 아카이브 외에 시민의 아카이브, 중앙이 아닌 지방의 아카이브의 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그 중에 가장 관심이 뜨거운 곳은 역시 서울, 지방 단위로는 처음으로 올해 5월 15일 서울기록원이 문을 열었다. 부담이 느껴질 정도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서울기록원은 한국기록학회와 함께 개원 기념 컨퍼런스를 개최했는데 제목이 ‘기록자치의 시대의 기록관리’이다. 나는 연구자와 기관 종사자들로 구성된 컨퍼런스에 유일한 시민기록활동가인 토론자로 참석했다. 첫 번째로 발표한 조영삼 서울기록원장은 지역 또는 지방의 특성에 맞는 기록을 생산, 관리하고 공개 및 활용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기록자치라고 설명했다. 지방기록관리관의 설립에만 초점을 맞추던 것을 넘어서 지역과 시민의 삶의 영역에 근접하는 공동체 아카이빙의 실현이 곧 기록자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기록원은 시민기록활동과 협력하여 시민들이 기록의 주체가 되고 기록원은 네트워크 허브로 기능하며 인프라와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록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서울 시민으로서 서울기록원의 설립이 너무나 반갑다. 시민기록의 활동을 공공기관이며 관리기관에 너무 의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개념도 제대로 없는 지방 아카이브, 마을기록의 현장에서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 지금은 그 존재가 그저 든든하기만 하다. 그런데 지원기관이 있고,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 지면 자치가 가능할까? 사실 지방 정부가 주체가 되어서 기록을 잘 정리하고 보존하고 관리하는 기능만을 상상한다면 기록자치라는 표현은 과하다. 기록자치라고 이름이 붙는다면 최소한 주체는 지방 정부만이 아니어야 한다. 공공이 생산하는 기록물의 관리 체계와 법령은 국가와 지방을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다. 국민은 곧 시민이므로 민간의 경우도 기록물 주체가 구분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지방 아카이브가 기록물을 잘 관리하는 목적이라면 국가나 광역의 기록물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는 기관의 분소 형태(예:주민센터)가 더 목적에 부합한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지방 분권 방향이 사실 정부끼리의 권한을 주고받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 자치의 주체이자 핵심인 시민들은 행정에서 기획한 또 다른 조직을 만들어서 행정에 협조하는 형태에 머물러 있다. 자치는 자발성과 주체성을 바탕으로 결정과 책임도 지기 때문에 인격을 갖춘 사람, 즉 시민이 해야 하는 것이 본질이다.


시민력을 말하는 지금도 여러 자료나 기록물 관리 기관들의 사업 방향을 보면 시민의 역할을 여전히 정보의 제공자, 한 발 나아간다고 해도 참여자에 국한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다행히 서울기록원은 민간의 기록을 가져다 관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 아카이브이자 지방의 기록물 관리 기관은 시민을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기록자치는 그야말로 민관 협치의 장인 것이다. 지방 아카이브 과정에서 더욱 시민이 자치적으로 운영 전반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기록물 관리 기관과 지방 정부의 역할이고 이를 통해 기록자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 역시 기록물 관리 기관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지방 아카이브의 방향, 목적, 운영에 대해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관심이 없는 행정과 연구자의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한다. 목마른 한 사람이 파는 우물 덕분에 모두의 갈증이 해소될 그날을 꿈꾸며.


시민들이 만드는 지방 아카이브, 기록자치를 위해 필요한 네 가지를 제안해본다.

먼저 시민기록의 주체가 시민이 되려면 모든 논의 과정에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 행정이 장을 열어주고 시민이 참여하는 형태는 한계가 명확하다. 기록자치의 주체가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행정은 기획자와 지원자의 역할, 시민은 정보 제공자와 민원을 요구하는 식의 틀을 과감히 깨야 한다.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과 유연함 역시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야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서울에서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협치로 확장된 지난 8년 동안 마을에서 다양한 활동은 새로운 지역 활동 범주이자 공공영역의 직업군이 되었다. 기록 분야도 지역에서 더 많은 활동을 창출할 수 있도록 시민 교육, 공론장, 공모사업, 연구, 조사, 순회 전시, 포럼 등의 실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제일 시급한 것은 사라지는 기록의 보존이다. 많은 시민의 기록들이 보존할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사적으로 폐기된다. 기록물의 가치를 판단하기에 앞서 폐기되고 사라지는 유무형의 기록물의 수집과 보존이 가능한 상시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지방 아카이브의 시작일 것이다. 새로운 관리 기관을 만들지 않아도 동네 단위에 이미 존재하는 도서관, 공유공간, 새마을문고, 복지관이나 마을만들기지원센터와 같은 공공기관들에 역할을 부여하고 협력해야 한다. 끝으로 현재 성북에는 놀이큐레이터, 마을코디네이터가 있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동 자치지원관, 마을변호사, 마을세무사, 마을건축가 등이 있다. 기록 분야의 전문가와 연구자가 동네 단위로 시민과 협력하고 아카이브에 대한 자문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의 관심이다. 어떤 파트너십을 맺느냐에 따라 관심의 정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시민과 기관 모두에게 당부한다. 겁이 나서 시도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일단 시도해보자. 실험해보자. 첫 단추 잘못 끼우면 다시 끼우면 될 테니까.

“실력을 쌓으면 우리는 자치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한 발표자가 한 말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해보는 것이다.



글 최연희(우리동네 스토리코어스 대표)

편집 「플랫폼성북」 편집위원회  


성북구 시민협력플랫폼 구축사업(2차년도)는/은 성북구 지역시민사회의 자생적 활동 생태계 조성을 위해 활동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네트워크 구축을 비전으로 여성·아동 복지 실현을 목표로 하는 지역단체 성북나눔연대, 동 기반 주민모임 성북동천, 성북의 지역활동가 단체 성북마을살이연구회, 성북구 대표 지역법인 함께살이성북사회적협동조합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자치구 시민 주체의 성장을 통한 지역 협치 실현"이란 핵심비전을 갖고 추진되는 서울시 시민협력플랫폼 지원사업에 2017·2018 연속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추진중입니다.  (지원 : 서울특별시, 성북구)


문의 co.platform.s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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