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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May 29. 2020

성북동, 다시 한 번 변화의 길 위에 서다

[13호] 동네이슈 | 글 최호진 · 사진 김선문

글 최호진

사진 김선문



성북동, 다시 한 번 변화의 길 위에 서다



2013년 11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창간호에 ‘성북동, 변화의 길 위에 서다’라는 글을 쓴 후 5년 6개월이 지났다. 마을잡지를 발행하는 마을공동체 성북동천은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고 자생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며 지역 내에서의 참여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이 시간 동안 성북동은 얼마나 변해왔으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더 나아졌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글을 쓴다.


성북동 역사문화지구의 정체성을 이끌고 있는 문화유산과 주변 여건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있다. 선잠단지는 발굴 조사를 통해 정비가 진행되고 있으며, 동시에 옛 공공시설이 선잠박물관으로 바뀌어 문을 열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은 등록문화재가 되었으며, 그 앞 쌍다리의 옛 물길 구간은 건축가의 작업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조성이 되었다. 서울 한양도성은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 중이며 옛 시장공관은 한양도성 안내센터로 바뀌었다. 심우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 지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그 위상을 높였다. 그리고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성락원은 개방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다.

성북동 내에 서울시 한옥밀집지역에서는 기반시설 정비가 이루어졌고, 좁은 골목길에도 재생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성북동길의 인도를 넓혀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들도 진행이 되었다. 이렇듯 여러 가지 물리적 개선과 함께 성북동 문화재 야행과 지역 축제들까지 열리면서, 성북동은 시민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변화에 발맞추듯 성북동 길의 큰 길과 바로 옆 작은 골목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밤거리 풍경이 변했으며, 그와 동시에 오랜 시간 동안 동네에서 자리 잡았던 생활형 업종의 점포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여전히 성업 중인 오래된 국수집, 설렁탕집, 이용원, 만두집 등은 수십년 성북동의 변화 속에서 기억을 간직하게 하는 장소로 남아 있으나, 그와 함께 골목 안 풍경도 변하여 단층 한옥들이 사라지고 3층 이상의 건축물들이 들어서며 경관이 바뀌는 현상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정착한 빵집과 커피점들도 이제는 주민들과도 교류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주목해 볼 부분은 공공의 기능이다. 공공사업을 통해 보행환경이 개선되는 동안 주민 보행 편의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큰 길 주변의 상권은 외부 방문객들이 주 이용자가 되면서, 오히려 주민 생활권은 성북동길 주변을 벗어나 동선동과 삼선동 권역까지 이전한 예전의 성북동 식당들을 찾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성북동의 변화를 물리적으로 보여준 공공문화시설은 어떤지 살펴봤다. 성북동에는 교육, 종교, 문화시설 등 다양한 공공시설이 운영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중 성북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공문화시설로는 성북구립미술관, 성북예술창작터와 2018년에 문을 연 성북선잠박물관이 있다. 이 공공문화시설들은 성북동의 역사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과연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2018년의 통계1)를 보면 성북예술창작터는 5,602명, 성북구립미술관은 13,375명, 성북선잠박물관은 10,324명이 각각 방문했고, 세 개 시설에 6억 원이 넘는 예산이 지원되었다. 그렇다면 문화시설로서의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 외에 주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시설인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주민들의 접근성을 살펴보면, 두 곳은 무료로 개방되고 한 곳은 구민의 특별한 할인 없는 적은 입장료를 받고 있다. 마을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서울시나 성북구의 마을자치 정책과 관련하여 그 흔한 주민 커뮤니티 모임, 대관을 하기도 쉽지 않은 공간들이다.

기획전시가 있어도 현수막과 포스터를 보고 찾아가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 동네의 주인인 주민들이 아닌 전문 분야의 명망있는 사람들만을 초대하여 하는 행사는 과연 성북동 주민들이 사랑하며 지속적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단순히 장소만 성북동을 이용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 에서 해외의 한 지역 서점이 근처로 이사를 가는데 주민들이 인간 띠를 이어 책을 하나씩 날라주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계속 떠오른다.

지역의 공공문화시설은 특정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지역의 모든 세대와 계층의 구분 없이 주민들이 방문,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주민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시민 문화 형성의 장이어야 한다. 이러한 공공문화시설 외에 성북동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도서관이다.

성북구 내 구립도서관은 총 열두 곳이 있고, 2018년에는 이 열 두 곳의 도서관에 총 118만 명이 이용을 했다.2) 규모와 위치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한 해에 10만 명이 한 도서관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지역 외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비해 도서관은 지역 주민과 생활권자 중심의 방문객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1)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대상 정보공개청구 결과, 문서번호 문화체육과-14859

    2) 각주1과 동일


역사문화지구 성북동 내에는 주민센터에 마을문고가 있고 성북예술창작터에 자료실이 있지만, 주민들의 이용도는 낮다. 어린이도서관의 경우 최신 도서들이 정기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이용하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도 자연스레 찾지 않는 공간이 된다. 공간을 조성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운영과 관리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북동은 초등학교가 있고 인접지역까지 포함하면 많은 학교들이 있다. 어떤 주민에게는 열람실이, 또 어떤 주민에게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기능이 필요할 것이다. 교육과 평생학습은 한 곳에 장소를 만들어놓고 찾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와 가장 근접한 장소에서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마당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구현될 수 있다.

거리갤러리 공간 조성 및 개관기념 전시 : 최정화 작가의 <숲> (2018.4.10. ~ 2019.1.29.)

동네는 빠르게 변해 가는데 시설 운영은 주민들의 욕구와는 달리 점점 스스로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지역에서 보는 것도 혜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주민들은 관람의 권리를 부여받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가고 참여하는 과정을 원하고 있다.

지역의 공공문화시설은 단순히 방문객 숫자로만 보기에는 어려운 상징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성북동 정체성 형성의 한 축을 만들고 있지만, 공공시설이나 문화재 또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역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항상 관심을 갖고 애정을 줄 수 있는 참여의 장을 반드시 열어두어야만 한다. 또한 역사문화지구에 걸맞은 주민 누구나 편하게 방문과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이용이 저조한 시설만이 성북동을 채운다면, 주민들의 생활권은 오히려 성북동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들려오는 정주권 보장에 대한 많은 목소리들을 접하고 있지 않은가. 공공문화시설도 점차 주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어 함께 발맞춰 나간다면 문턱이 낮아지고 자연스레 동네의 자랑거리로 자리잡을 것이다. 또한 단순히 도시계획적 관리방안으로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 할 것이 아니라, 공공시설을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주민들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더 많이 머무를 수 있는 공공시설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미래를 내다봐야 할 때이다.




최호진사단법인 지음건축도시연구소 소장이다. 건축과 도시, 지역의 자원을 조사하고 시민과 공감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비영리 활동에 뜻을 두고 있다. 성북동천 운영위원이며 창립부터 함께 해오고 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9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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