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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un 03. 2020

지금까지 6년,「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에게 묻다

[13호] 특집기획 | 정리 차정미

정리 차정미

사진 김선문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2013년 창간호부터 2018년까지 총 12권의 잡지가 발행되었고, 올해 13호와 14호 발행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작년부터 잡지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저로서는 성북동천이 지난 6년 동안 마을잡지를 간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마을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을 텐데 그 과정은 어땠을지 그동안 어떤 이야기를 담아 왔는지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는 편집위원 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궁금했던 지난 이야기들을.



차정미 : 창간호 콘텐츠들이 거의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요. 그만큼 창간호 때 준비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 당시 첫 호를 만들 때 어땠나요?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최성수 : 창간호 발간 때는 <성북동천>의 전체 조직 아래 마을잡지 발간팀이 따로 있었어요. 저하고 김홍식, 장영철, 김현주, 오예주 씨 등이 편집위원이었고,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수시로 전체 <성북동천> 회의에 보고하고 의견과 도움을 구하는 체제였지요.

창간호 기획은 편집위원들이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템들을 기록하여 제안서를 내고, 회의를 통해 수정하는 형식이었는데, 그런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듯해요.

사실 성북동이 작은 동네이기 때문에 잡지도 다양한 내용을 담기에는 힘들어요. 그래서 성북동의 특징을 먼저 뽑아보았지요. 문화재, 인물, 가게, 주민이 그런 특징적인 소재로 공유되었고, 공유가 이루어진 후에는 내용을 채우는 것이었으니,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사진이 많이 들어가고, 읽히는 잡지를 만들고, 가능하면 직접 쓰고, 권수가 늘어갈수록 보관하고 싶어할만한 잡지를 만들자는 생각이 창간호 편집위원들이 공유한 생각이었지요.


박진하 : 창간호에서 저는 집필진으로 참가했습니다. 당시 편집장이셨던 최성수 선생님의 추천으로 ‘우리 가게를 소개합니다’라는 코너에서 우리 부부가 운영하던 <성북동 디미방>을 소개하는 방식이었어요.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시작하는 식당 일은 낯설고 서툴기 짝이 없었지만 마치 이웃 친구처럼 다가오는 성북동천 식구들이 좋아서 2호부터는 편집진의 역할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장영철 : 성북문화재단에서 함께 근무한 오예주 님의 권유로 편집위원이 되어 창간호를 준비했습니다. 당시 편집위원회에서 제 역할은 성북문화재단과 성북구청의 문화행사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정도가 다였던 것 같아요. 다른 편집위원님들 분주히 준비하는 것 보면서 숟가락 하나 크게 얹고서 창간호를 시작했어요.


김기민 : 창간호 제작 과정에는 기고로만 참여했어요. 주민 아카데미 <성북동 마을학교> 운영과정을 소개하거나, 그 일환으로 진행됐던 강좌들의 결과물을 잡지에 싣는 과정에 부분적으로 참여했었는데요, 성북동천의 사업·활동과 잡지가 연결되는 지점들이 인상적이었고, 이후 단체 활동과 잡지 제작과정이 긴밀히 연결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있어서 그 때의 경험과 틀이 중요한 역할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차정미 : 2013년 첫 호에 최호진 선생님의 권두칼럼 「성북동 변화의 길 위에 서다」를 보면 ‘다양한 활동들과 외부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자본은 성북동길의 가로변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고 나오는데요. 마치 6년 후 지금의 성북동을 예견한 듯 특히 성북동길의 가로변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북동이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지 여전히 계속되는 고민이고 그 무게는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성수 : 성북동은 크게 두 번의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첫 번째는 1960~70년대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가 대대적으로 일어날 때였을 겁니다. 성북동은 원래 곳곳이 빈터였고, 집들도 지금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곳곳의 빈 터에 집들이 들어서면서 성북동의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여전히 성북동은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에, 가게도 몇 군데 없는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이었어요.

지난 6년이 아마도 성북동의 두 번째 변화의 시기였던 듯해요. 그 과정에 두 가지 일이 있었지요. 하나는 재개발 붐이었어요.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부동산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외지인이 사놓은 집이 늘어나고, 토박이들은 집을 투기세력에게 팔고 다시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일이 벌어졌지요. 이웃 간에 다툼이 생기고, 사람들은 점점 삭막해져갔어요. 자본이 주민을 갈라놓고 반목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 광풍이 지금은 좀 잠잠해진 것 같아 다행스럽기는 해요. 또 하나는 성북동이 역사문화 지구로 지정된 일이지요.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되자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늘어난 관광객들을 노리고 가게들도 많이 들어섰어요. 그래서 성북동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상가들과 주말이면 북적이는 탐방객들로 조용하던 성북동은 번잡한 동네로 바뀌게 되고 말았지요.

이 두 사건은 성북동을 고즈넉한 성곽 마을에서 무언가 볼거리가 있고, 먹을거리도 있고, 무엇보다도 돈이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바꾸어 놓았어요. 저는 성북동이, 비록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지켜야 할 가치와 삶이 살아있는 곳으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김철우 : 성북동의 변화는 지금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되고요. 앞으로 더 이상 건물주와 가게주인의 갈등이 없었으면 합니다. 또한 주민에게 더 많은 문화공간이 필요합니다.


박진하 :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다만 성북동 골목길을 지키고 있는 조그마한 점포 운영자들이 십년, 아니 백년을 이어갈 수 있게 해 노포(老鋪)1)*로 성장할 수 있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들이 또 하나의 성북동의 자랑이고 성북동을 찾는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1)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장영철 : 작은 가게들과 부지런한 손길로 가꿔진 마당과 화단이 있는 집들을 보면 변화 속에서도 성북동만의 매력을 애써 간직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성북동의 매력을 찾아 성북으로 오시는 분들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분들이 성북동을 성북동답게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어 성북동의 어제와 오늘이 겹겹이 이어지고 기록되도록 지켜주었으면 해요.


김기민 : 성북동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사람들이 ‘성북동’을 그릴 때 떠오르는 어떤 상이나 느낌이 있을 텐데요, 그것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성북동이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합의할 수 있겠지만 아마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솔직히 드러내고, 이곳에 발 딛고 있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바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 부단히 확인하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각자의 지향과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들이 실현되었을 때 내가 좋아했던 그 성북동의 모습과 풍경, 분위기와 같은 것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 살피고 토론할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성북동 사람들이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닐까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창간호·1호 ~ 12호까지 표지 이미지

차정미 : 가로수 벌목사건, 지역공동체 특집, 구의원 간담회, 주민참여 공공미술 등등 성북동천은 또한 지역현황과 이슈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앞으로 다루고 싶은 지역 이슈가 있다면?


최성수 : 저는 문학이 주업인 사람이니 무엇보다도 문학으로서의 성북동을 기억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성북동, 시인과 만나다’ 같은 행사가 정례화, 정기화되면 좋겠어요.

또 문학인, 예술인의 집이었던 곳에 작은 이름표 붙이기 같은 것도 좋겠지요. 그 길을 연결해 시의 길, 음악의 길 같은 골목 지도를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요. 특히 시와 성북동을 연결하는 공공미술 같은 것을 제작할 기회가 있다면(이미 공공미술가 최영환 씨와 몇 번 협업해 본 사례도 있긴 하지만), 성북동 문화 마을을 만드는 새로운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김철우 : 문화공간의 인터뷰와 기사, 다문화 가족의 소식도 다뤄보고 싶어요. 또 성북동에는 종교시설이 유독 많고, 다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종교단체의 기사도 괜찮을 것 같군요. 올해는 성북동에서도 주민자치회가 운영되는데 주민자치회 소식도 전했으면 합니다.


장영철 : 가로수 벌목사건 당일 잘려나간 플라타너스 밑둥을 바라보며, SNS를 통해 더 이상 가로수가 베어지지 않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모습이 변화 속에서 성북동을 성북동스럽게 남아있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되고 그 힘을 응원하고함께 하는 일들을 성북동천이 계속 실천했으면 합니다.


김기민 : 18년도에 시도했던 <동네비평: 성북동 공공미술> 공론장을 진행하면서 지역의 공공, 공적 자원을 사용하고 활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시민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시민들을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초대함으로써 동네 안에 좀 더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마련되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마을잡지를 발행하는 지역단체로서 성북동천이 이 이슈를 계속 놓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차정미 : 지난 기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동네빵집 두 곳을 대결구도로 소개한 샤뽀블랑 vs 오보록, 야생화 탐방기, 사라지기 쉬운 현수막 프로젝트 등 손에 다 못 꼽을 만큼 많은데요. 다시 보고싶은 기사가 있다면? 혹시 지난 기사 중에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기사가 있는지요?


최성수 : 저는 ‘골목길 탐방’이 가장 아쉬워요. 성북동의 특징은 골목과 비탈이거든요. 거미줄처럼 무수하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골목길은 성북동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골목 탐방기를 이어갔으면 해요. 애초 골목길 탐방을 기획할 때 가졌던 큰 꿈이 있었어요. 탐방기를 다 끝내면 그 탐방기를 모아 지도책으로 펴내고 싶어요. 가능하지 않을까요?


박진하 : 초기 골목 이야기는 편집위원 전부 참가하는 골목 기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또 그 동네에서 그 골목길의 지난 세월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어르신 한 분을 선정하여 그 댁을 찾아가 이야기를 경청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성북동의 모습을 체험하고 그를 공감케 하는 그런 장(場)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영철 : 주민인터뷰를 계속 이어갔으면 해요. 골목탐방도 그렇고요. 특히 주민인터뷰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를 더욱 마을 속 이야기로 이끌어주는 좋은 기사라고 생각돼요. 성북동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들여야 보면 성북동의 매력이 무엇이고 성북동이 무엇을 간직하고 지켜야 하는지 알 수 있어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제게 상당한 울림을 주기도 했고요.


김기민 : 창간호에 실렸던 시창작교실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였어요. 시창작교실이나 글쓰기 워크숍 같은 시간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보는 과정이 갖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여력이 된다면 성북동천이 주민들과 함께 그런 시간을 꾸준히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차정미 : 이제까지 잡지를 만들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한 가지만 이야기해주세요.


김철우 : 성북동 윗동네에 어르신 취재 중 동네 어르신끼리 싸우시고 삐치시고(너무 친한 사이니까) 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5호 <특집, 골목이야기3> 홍대부고 언덕 마을의 일상 - 인터뷰 현장

김기민 : 5호 <특집, 골목이야기3> 코너에 “홍대부고 언덕 마을의 일상”이라는 글을 기고하였는데요, 당시 그 동네에 살고 계시던 김철우 대표님께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잡지에 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함께 찾아뵈었어요. 그런데 동네 공터에 상을 차리고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한쪽에서 약주를 들고 계시던 어르신 이 당신 말씀을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역정을 내시며 밥상을 뒤엎으셨어요. 결국 먹던 밥과 국을 제가 뒤집어쓰게 되었는데 같이 계시던 어르신들이 당황하시며 여간 미안해하지 않으셨어요. 취기 오른 그 어르신을 다른 곳으로 모셔가고, 제게는 연신 미안하다며 챙겨주시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별로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지 않았어요. 그 정신없는 와중에 내가 이제 정말 이 동네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

니다.


장영철 : 성북동 재개발 3구역 골목길 탐방이 기억에 남아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당시 4살 작은딸과 함께 탐방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작은 딸이 잘 따라와 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맑았던 가을 어느 날, 사랑스러운 딸과 둘만의 첫 골목탐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죠.


차정미 : 6호 내용을 보면 유독 문화 분야의 기사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른 호랑 좀 다른데?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책 두께도 가장 얇고요. 편집후기를 봤더니 당분간 잡지 발행은 쉬게 될 것이라고 나오더군요. 이때 고비가 한번 왔었군요.


박진하 : 사실 편집 후기를 쓰면서 장난기가 발동된 것입니다. 서울시의 지원이 없으면 잡지 발행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응석을 피운 거죠. 좋은 일도 3년 정도 지속되면 권태기라는 것이 올 수 있습니다. 그때가 그렇게 된 시점입니다. 편집 위원들도 처음의 열정에 비해 조금은 시들해지기도 했고, 그 호의 기사를 집필하신 분들의 글도 비교적 짧았어요.


김기민 : 이 잡지를 계속 낼 수 있을까, 해야 할 일들을 놓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의 시기를 맞이했어요. 해마다 편집위원장을 돌아가면서 맡는데 당장 2016년 마을잡지 간행을 총괄할 편집위원장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죠. 6호를 마무리 짓는 시점에 이에 대한 논의를 다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한 해 활동을 마무리하며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했었죠. 그래서 아마 편집후기에 다음 해에는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당시 편집위원장 박진하 선생님께서 쓰셨던 것 같아요. 마을공동체사업 3년 일몰제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고요.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은 3년 일몰제가 적용되지 않은 덕분에 다음 해에도 연속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최성수 : 우선 잡지 편집위원이 지쳐서 타성에 젖을 시기였지요. 모두들 서로 책임을 맡기 힘들어할 때였고, 기획도 늘 그게 그것 같았고, 의미 있는 일인가에 대한 회의도 있었지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거주지를 시골로 옮기는 바람에 자주 참석도 못했고 해서 더 면목이 없었지요. 조직은 늘 사람이 우선이고, 새로운 사람이 바람을 불어넣어 주어야 생기가 일어나는데, 그런 면에서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차정미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가 그저 순탄하게만 온 건 아니었듯이 늘 어려움은 있기 마련인데요. 잡지 발행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김기민 : 성북동천 모임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은 만큼”이라는 기조를 갖고 참여해왔고, 함께 활동하는 회원님들도 이런 방식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어요.

공익·비영리 활동을 하다 보면 ‘왜’냐는 질문 앞에서 끊임없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경험하곤 합니다. 중요한 과정이고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마을에서의 활동은 어떤 사명감과 목적성, 분명한 목표의식만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요. 왜 하느냐보단 지금 하는 것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그 과정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즐겁다면 그냥 하게 되기도 하지요. 먹고 사는 일처럼 했다면 지금까지 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최성수 : 친밀감? (웃음) 서로 나이대도 다르고, 삶도 많이 다르지만, 그저 저녁에 만나서 편하게 밥 먹고, 술 마시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동네에 있다는 것만으로 성북동은 살만한 곳이지요. 그 친구들이 성북동천 사람들이니, 잡지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김철우 : 편집위원들의 친목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영철 : 사실 전 성북동에 살고 있지 않아서 성북동천의 편집위원님들과 친밀감을 갖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어요. 성북동에서 만난 인연을 급하게 엮으려고 하지 않았고, 지금도 얘기 나누는 만큼씩 인연을 쌓아가고 있어요. 이런 인연으로 잡지를 함께 발행하면서 맡은 역할을 꼭 지킬 것 이라는 믿음이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홍대부고 정류장 앞 도로 중앙분리대의  가로수

차정미 :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성수 :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잡지 체제도 바꿔보고 싶고, 편집위원들과 더 유대감도 강화하고 싶긴 한데, 느슨하게 느긋하게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은 사람들이니까요. 또 그래야 오래 가지요. 바쁘다고, 서두른다고 오래 가는 건 아니니까요.


김철우 : 편집위원들끼리 더욱 친교의 시간이 많았으면 합니다.


박진하 : 독자의 폭을 넓히고 싶어요. 우리 성북동에는 특히 대사관저가 많습니다. 그들 나라를 소개하고 그들의 삶과 문화를 확인하는 그런 취재들이 그들과 우리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영철 : 제가 좋아하는 성북동이 물리적 공간에서 감성의 영역으로 확대되도록 해준 성북동천과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늘 그렇듯 천천히 가깝게 흐르길 바래봅니다.


김기민 : 함께 하는 분들과 같이 할 수 있을 때까지, 같이 하고 싶을 때까지 고생스럽지 않게, 즐거운 마음으로 이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 남아있고 싶습니다. 이 과정이 갖는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끝]




차정미는 성북동천이 진행하고 있는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 운영담당자 겸 본지 편집위원으로, 2019년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성북동에서 살면서 마을활동을 조금씩 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완성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나에게 맞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은 무엇일까 계속 실험 중이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3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9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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